쉴만한 물가 - 164호
20150718 - 소수의견과 극비수사
1978년도 부산에서 실제 있었던 유괴사건을 극화한 <극비수사>와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를 반대하며 저항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자녀를 죽인 경찰을 죽여서 피고가 된 철거민의 재판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극화한 <소수의견>. 둘 다 지난 6월 일주일 사이에 동시에 개봉된 영화들이다. 둘 다 경찰과 검찰이 연관된 영화여서 민감한 이야기다 보니 아무래도 불편한 사람들이 있나 보다. 내용도 이미 지난 이야기이지만 당사자들에겐 불편한 부분이 있을 터이고, 아직 여전히 진행 중인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비롯해서 법대로 행하기보다 기득권을 가진 이의 이권을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현실은 법치국가의 어두운 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에 역시나 불편할 것이다. 떳떳하다면 불편할 일도 없을 텐데...
유괴된 아이를 찾기 위해서 부모는 역술인에게까지 찾아가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이의 생사만이라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모두가 죽었다고 할 때 한 역술인은 살아 있다고 했다. 사건을 담당한 한 형사와 이 둘이 자신의 역술에 대한 확신과 소신을 가진 자와, 수사관으로서의 소신을 갖고 임하는 이 사이의 갈등도 없진 않았지만 서로의 진심을 믿어주면서 사건을 해결해 가는데, 문제는 정말 아이를 찾기 위한 수사와 범인을 잡기 위한 수사를 하는 이들로 미묘하게 처신하는 모습들이 극 중에 나오는 무리들 사이에서 서로 갈려진다. 이것은 결국 수사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와 이러한 사건을 토대로 자신의 입신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모습으로 귀결된다. 영화는 적나라하게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세상이 알아주는 것으로 말하지만 실상 이 사회는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인간이 살아남고 대우받고 입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돈도 배경도 없는 이들이 법 앞에서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는 있지만 이들이 법을 모르기에 법을 아는 이들이 도와주어야 공정한 재판이라 할 수 있다. 하여 국선 변호사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법조계의 학연 지연 혈연으로 거미줄처럼 얽힌 상황에서 이러한 제도는 유명무실하고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여기서도 정말 소신을 가지고 변호를 하는 이와, 상부에서 정해준 레퍼토리를 따라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형을 확신하고 시작하는 검사와의 싸움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다. 사람이 죽어나가 억울한 일이 생겨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판관이 공정하지 못하면 재판에 임하는 이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도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근자에 동호회 축구경기의 심판을 본 적이 있다. 기실 축구 선수로만 경기에 임했을 뿐 심판을 본 적은 별로 없는데 엉겁결에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심판의 자리가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경기의 흐름도 선수 상호 간의 관계도 심판의 결정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오프사이드를 부심과 사인이 맞지 않아 잘못 불었을 때 향후 동일한 상황에서 멈칫거리거나 판결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왔다. 또 한 번은 수비수에게 정강이를 걷어 차인 장면을 보고도 가벼운 상황이라 여겼는데 차인 사람이 그만 다른 사람에게 보복성 반칙을 하고 말았고, 그 사람이 또다시 아예 보복성 반칙을 하는 바람에 경기가 과열되고 말았다. 공정한 심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임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여 심판에 대한 매수설이나 홈 어드벤티지 같은 이야기들이 결코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이 심판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관행과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고 있는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 겉에서 알 수 없는 내부의 많은 문제들도 없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영화나 경험자들의 이야기들을 보면 그 틈에서 공의와 정의를 소신껏 실현하는 일은 결국 자신의 직을 걸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서 소신을 가지고 정의를 실현하는 이들이 있어 그나마 억울함을 풀어가는 이들이 있고 이 사회가 유지되어 가는 것 같다.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꾸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하며 사는 이들이 있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기득권자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 보인다. 하여 국민을 위한 정책과 법 집행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책과 법을 집행하는 모습이 너무 대놓고 행하는 형국이다. 부디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소신 있는 심판으로서의 관료나 법조인이나 경찰들이 더 인정받고 대우받고 많아지길 소망해 본다. 그것이 오래 더불어 함께 사는 길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