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25. 2017

민수기 20:01-13 광야학교의 임역원 징계 1

민 20:01-13 

민수기 20:01-13 광야학교의 임역원 징계 1


미리암의 죽음과 회중들이 물이 없어 불평이 다시 제기 되었을 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모세와 아론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중징계가 내려진다. 

*

20장에는 미리암과 아론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모세와 아론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를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광야 1세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광야에서 다 죽고 세대가 바뀌게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민수기 전체적으로는 1-25장이 1세대, 그리고 26-36장에서는 신세대에 대한 말씀이다. 


1절 일평생 변함없는 믿음을 갖는 일이 귀한 것이지만 쉽진 않다. 

첫째 달에 신광야에 이르러 가데스에 머물 때 미리암이 죽고 장사된다. 

여기서 말하는 첫째 달은 3년째 되는 해인지 아론이 죽은 40년째인지 논란이 있다. 비교적 초기에 죽은 것이라면 20장 내에서 38년의 간극이 공존하는 것이고, 40년째에 죽었다면 19장과 20장 사이에는 38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전자의 경우처럼 미리암이 초기에 죽은 것(문둥병이 치료된 이후 얼마 안되서 80세 정도에 죽은 것으로 보는 견해를 따라)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결국 고라의 반역 이후 40여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불평과 불순종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성숙하지 않고 여전히 완악한 모습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홍해를 건넜을 때 미리암은 찬양을 인도하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찬양했었다. 그보다 더 이전에 모세의 어린 시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광야에서 미리암은 긍정적인 모습보다는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고 불신앙적인 모습에 편승해 버리는 안타까운 모습이 나오고 여기서 이렇게 죽었다고 나온다. 아론과 함께 모세의 가장 측근에서 동역해야 할 위치에 있으나 미리암은 그러한 위치의 중역을 잘 감당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의 그 믿음이 후에까지 이어지거나 성숙해가지 못한 것이다. 어려울 때의 신앙보다 힘과 권력이 많아질 때 본래의 신앙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처음의 신앙이 오래도록 성숙해 가면서 온전한 신앙을 유지하고 지키고 마무리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대부분 굴곡진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와 동행과 순종의 일상만이 퇴보와 미혹의 걸림돌을 극복하고 온전한 믿음을 지킬 수 있으리라. 왕년의 뜨거운 열정을 자랑하지 말라 교만으로 이어지기 쉽다. 날마다 겸손히 무릎꿇지 않는다면 언제고 그 알량한 믿음이 바닥나고 말것이다. 


2-5절 성숙해 지지 않는다면 퇴보되거나 마침내 이전보다 못한 자가 된다.

회중들이 물이 없다고 모세와 아론에게 와서 다투며 항의한다. 이전에 죽는 것이 더 좋을 뻔 했다고, 왜 자기들을 광야에서 짐승들과 같이 죽게 하냐고, 왜 애굽에서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한 것이냐고, 여긴 파종도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물도 없다고 길길이 불평불만을 쏟아 내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하나님은 구름과 불기둥으로 낮의 해와 밤의 추운 기온에서도 이스라엘을 지켜주셨고, 목마를 때 물을 주셨으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셨다. 죽음이 아니라 삶을 억압이 아니라 자유를 주었고, 변함없이 지금도 인도하고 있으며, 그들이 파종도 하지 않고 농사도 하지 않았어도 필요한 양식과 고기를 주셨다. 그런데 오늘 잠시 물이 없다고 모세와 다투면서까지 불평을 쏟아내고 있다. 믿음이 없으니 있는 것을 없다하고, 눈이 어두우니 보고도 못봤다하고, 귀가 어두우니 듣고도 못들었다하고, 영적 감각이 없으니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도 없다 한다. 이미 있는 것, 가진 것, 누린 것, 소유한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부인하고 여전히 없다고 합니다. 지금 회중들에겐 하나님이 해 주신 것과, 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이다. 

광야 여정의 경험이, 우리 인생 여정의 많은 일들을 경험해 가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느다면, 우리의 믿음이 자랄리는 만무하다. 주님과의 소통이 없다면 우리 믿음은 성장이 아니라 정체 내지는 퇴보다. 신앙의 정체는 곧 죽음을 향해 내리치달을 뿐이다. 하나님과의 소통과 관계가 깨어지면서는 눈과 귀가 멀어지게 되고 모든 것이 불평과 불만 그리고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매일 세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보는 눈을 뜨고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길 원한다. 


6-8절 여호와께서는 택한 백성의 어리석음에도 변함없이 기회를 주신 분이다. 

모세와 아론이 다시 회막문에 엎드렸을 때 여호와께서는 물을 구하는 백성에게 물을 주는 방법을 전한다. 지팡이를 가지고 회중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면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짐승을 먹이리라 한 것이다. 

회중의 무지몽매함과 배은망덕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직 포기하지 아니하고 이들의 갈급함을 채워주시기 위해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라도 여호와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고 이스라엘이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 믿고, 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은 신뢰하는 것이 결국엔 사는 길임을 깨닫기 원하셨다. 모세와 아론은 그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을 향하여 명령만 한다면 그 반석이 생명의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짐승을 먹이시겠다고 하셨다. 

아직은 모세와 아론에게 하나님은 변함없이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하셨다. 어리석은 회중들을 인도하는 일에 이들의 믿음을 사용하시고, 권위를 위임하신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상기하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 여호와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게 된다. 모세와 아론의 손에 잡혀진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한 것임을 상기하게 한다. 위임된 권위로 반석에게 물을 내라 명할 때 천지만물의 주재이신 여호와의 권위에 반석이 순종하여 물을 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모세와 아론은 순종만 한다면 나머지는 여호와께서 행하시겠다는 것이다. 회중의 부족함에도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일하시며 여전한 긍휼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주님의 오래참으심 앞에 감읍할 뿐이다. 


9-13절 성숙한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통해 여호와의 거룩함을 드러낸다. 

모세는 명령대로 지팡이를 잡고 회중을 반석앞에 모은다. 우리가 물을 내랴 하고 반석을 지팡이로 두번 치자 물이 많이 솟아 나온다 이로 회중과 짐승들이 해갈 한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자신을 불신하고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행동이라고 말씀하시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신다. 이 반석의 물을 브리바 물이라 한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모든 순간에 여호와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길 원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이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나 불순종에 대해서는 단호하시다. 여호와께서는 명령하라 했지만 모세는 어떤 이유에서건 반석을 두 번 씩이나 분명히 치면서 마치 자신들이 물을 내라 하는 것처럼 행동하여 여호와의 영광과 거룩함 곧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임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모세와 아론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모세와 아론이지만 백성의 패역함 앞에서 나오는 불평과 불만으로 인한 분노가 어느새 하나님의 거룩을 가리는 행동으로 치닫고 만 것이다. 여호와의 거룩함과 영광은 여호와의 말씀(뜻)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모세와 아론이 비교적 가벼운 실수정도로 볼 수 있는 이 불순종에 대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징계가 중하다고 여길 수 있으나 모세와 아론의 위치는 그 영향력에 있어서 개인과 가문과 지파를 넘어 국가적이다. 그러니 그만큼 책임이 과중하고, 이들의 사소한 실수는 심각하게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소한 것 같은 일들에 대해서 과중하리만치 엄격하게 처리하고 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은 더 철저한 믿음안에서 온전하게 순종하여 여호와의 거룩함을 드러냈어야 했다. 

혈기와 분노는 모든 관계를 파괴한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분내는 것을 자제하고 온유와 겸솒으로 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진대, 나의 욕심과 조급함이 결국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과 상황 속에서도 주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는다면 기꺼이 선포하고 순종하고 발을 내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게 되고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영광을 보게 된다. 


* 기도

오래 참으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

성숙을 멈춰버린 우리의 믿음없음을 용서하여 주소서.

첫 사랑이 식어진 것에 대하여도 용서하여 주소서.

많은 사랑과 은혜에 대해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자라기보다 불평과 불만이 더 자란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주신 권세와 권위를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날마다 주님을 알아가는 일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의 날로 성숙하여 온전한 신앙 갖게 하옵소서. 

매거진의 이전글 민수기 19:11-22 광야학교의 정결 예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