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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25. 2017

민수기 20:14-29 광야학교의 임역원 징계 2

민 20:14-29 

민수기 20:14-29 광야학교의 임역원 징계 2


모세는 에돔왕에게 사신을 보내 행로를 열어줄 것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하고 오히려 군사를 일으킨 에돔을 돌이켜 비켜간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호르산에서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될 엘르아살의 위임식을 행하고 아론은 호르산 꼭대기에서 죽는다. 

*

20장에는 미리암과 아론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모세와 아론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를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광야 1세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광야에서 다 죽고 세대가 바뀌게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민수기 전체적으로는 1-25장이 1세대, 그리고 26-36장에서는 신세대에 대한 말씀이다. 


14-17절 우리 삶의 여정은 세상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여호와의 선언 이후에 모세는 이스라엘의 진군에 대하여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사인 없이 단독으로 진행합니다.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 대로를 열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지나간 하나님의 인도로 여정이 진행된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도 여기서는 세상 왕에게 길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명을 완수 한 이후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의 보상이 아니고, 우리가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계획하신 것이라면 묵묵히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서둘러 여정을 진행하려다가 그만 하나님의 사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외교술을 통해 진행한 것입니다. 지난 40여년동안 경험하고 보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전철을 밟고 말았습니다. 섰다 하나 넘어질까 두려워하는 자세는 잠시만 그 긴장을 늦춰도 넘어지기 쉽습니다. 왕의 백성이면서 왕의 큰 길로 행하는 것을 여호와가 아닌 세상 왕에게 구하는 일은 여호와가 하나님 되심에 대한 불신과 도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모습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이미 익숙하고, 알고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실이 아니면 금새 그것은 자고하고 교만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오판인 것입니다. 범사에 주를 인정하고 그의 길로만 행하는 일은 우리 신양 여정의 끝까지 기억하고 순종해야 할 모습입니다. 지금 주님께 주권을 이양하지 않고 여전히 내 맘대로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자만하며 행하고 있는 일이나, 아예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행하는 일이 있다면 다시 돌이켜 주님 앞으로 나아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이 빠른 길은 아니어도 바른 길이며 온전한 길입니다. 


18-21절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은 여정에서 만나는 위협은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모세의 사신으로부터 제안을 들은 에돔 왕은 왕의 대로를 불허합니다. 오히려 칼을 들고 나가서 대적하겠다고 합니다. 그의 판단은 모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심지어 군사를 일으켜서 막으러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에돔 왕의 강력한 저항에 결국 왕의 대로로 진행하지 못하고 돌이키게 됩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하나님되심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방(비록 형제국이긴 하지만) 왕도 그의 백성을 무시하고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적들의 위협앞에 힘없이 굴복하고 도망하기 바쁩니다. 만왕이 왕 되시는 여호와의 백성이 한낱 에돔 왕의 위협에 뒷 꽁무니는 빼고 도망갑니다. 하나님은 존귀히 여기는 자를 존귀히 여기고 그에게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허락하시는 길에도 고난의 여정이지만 허락지 않은 길은 이와 같이 대적과 칼의 위협이 도사리고 그것들을 맞닥뜨릴 때 아무런 대책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아님에도 탄탄대로라면 하나님이 유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임에도 위험과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기 위한 계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협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염려할 것 없습니다. 예비하신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 인도를 따른다면 주님이 함께하신다면 그 자체가 형통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은 여정에서 만나는 경고를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로 알고 즉시 돌이켜 주님의 인도를 구하는 영적 분별력과 지혜를 갖고 행하길 원합니다. 지금 신앙여정에 갈바를 알지 못해 기도중이십니까? 주님의 뜻을 구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광야여정을 구름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의 길과 진리요 생명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허락하신 주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행하길 원하시는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찾아 가는 삶의 자세를 늘 연습하고 배우고 익혀가야 합니다. 


22-29절 우리의 생은 사명이 다하는 날까지입니다. 

가데스에서 에돔 땅 변경 호르산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께서는 아론의 제사장직을 엘르아살에게 위임하도록 합니다. 더불어 아론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함께 통보합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엘르아살에게 아론의 옷을 입히자 아론은 호르산 꼭대기에서 죽습니다. 이에 온 회중들이 아론을 위해 30일을 애곡합니다. 

애굽에서부터 모세를 도와 출애굽 역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목격하고, 한때 금송아지 제작을 지휘하여 하나님의 큰 진노앞에 섰으나 긍휼의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대제사장이 되어서 성막의 제조와 더불어 광야 여정이 이스라엘의 거룩을 지키고 감당하며 가르쳐 온 조력자로 아론은 살았습니다. 모세를 향하여서 불평도 했고 한두번 실수도 했지만 형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모세의 권위에 말없이 순종하는 여정이었습니다. 끝으로 므리바의 사건에서 모세와 더불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한 일이 결국 그의 사명의 한계에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오래도록 교회에 봉사하고 여러가지 놀라운 일들을 해내고 완수한 이들이 말년에 가서 넘어지는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때로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일을 잠시 맡고, 주님의 일을 이뤄가는 조력자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은혜요, 하나님의 크신 배려이기에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부르신 그 사명이 다하는 날이 우리 생을 마감하는 날임을 알고 적어도 아직 살아 있거든 내게 여전히 주님이 주신 사명이 있음을 알고 맡겨 준 그 일을 끝까지 겸손히 잘 감당하기 위해서 늘 깨어 주 앞에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허락하시는대로 묵묵히 성실히 감당하길 원합니다. 


* 기도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귀한 사역에 일꾼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광야 여정의 모든 길을 주의 말씀을 따라

진군과 멈춤과 기다림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이해할 수 없는 위협이 다가 올 때

피할 길과 감당할 길을 잘 분별하여 처신하게 하옵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다 마치는 날까지

신실하게 달려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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