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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01. 2017

민수기 23:13-26 광야학교의 신탁 2

민 23:13-26 


민수기 23:13-26 광야학교의 신탁 2


# 8월의 첫 날을 발람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으로 문을 엽니다. 이 한 달도 광야학교에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을 더 온전히 알아가고 그 사랑을 누리며 나누며 살아가는 복된 여정이길 먼저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첫번째 발람의 신탁을 들은 발락은 이번에 다른 곳으로 가서 스스로 단을 쌓고 신탁을 구한다. 다시금 발람에게 임한 신탁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또 앞으로 이끌어 가실 것인지 말씀하신다. 이에 발락은 신탁을 막으려 하지만 발람은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 발람의 책 구조(22-24장)

 A. 발람과 하나님의 대면(22:2~35) - 이스라엘의 현 주소

    a. 22:2-6  도입

    b. 22:7-14  발람과 하나님의 첫 번째 대면

    c. 22:15-20  발람과 하나님의 두 번째 대면

    d. 22:21-35  발람과 하나님의 세 번째 대면

       ① 나귀와 천사 1(22-23절) 

         ② 나귀와 천사 2(24-25절) 

         ③ 나귀와 천사 3(26-35절)

 B. # 발람의 신탁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a. 22:36-40  도입

    b. 22:41-23:12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첫 번째 축복

    c. 23:13-26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두 번째 축복

    d. 23:27-24:13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세 번째 축복

    e. 24:14-25 발람의 마지막 신탁(추가적인 신탁) 마지막 세 번의 예언

         ① 예언 1 - 왕정 초기 (14-19절)

         ② 예언 2 - 다윗왕 이후 (20-22절)

         ③ 예언 3 - 메시아의 날 (23-24)


* 발람의 책을 통해 보여주는 메시지 

    광야여정 - 가나안 - 예수님의 광야시험 - 우리(교회)의 광야학교로 연결하며 읽기  

광야 옛 세대들의 비극적인 종말의 와중에서도 언약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섭리와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것이 초점입니다. 또한 발람을 통해서는 광야 옛 세대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고(22:1-35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한 이스라엘, 그리고 그들의 운명, 아울러 이제 가나안에 가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탁을 통해서 향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짐을 통해서 언약을 성취해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22:36~24:25).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번성케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세 번의 신탁에 각각 나타난 동일한 요소들

  ① 높은 데로 데려감 - 바못 바알(22:41); 비스가산(23:14); 브올산(23:28)

  ② 7개의 제단을 쌓고 희생제사를 드림(23:1-2, 14, 29-30) 뇌물을 주고 축복받으려는 목적 

       레위기 제사와 다른 고대근동의 술사의 제사

  ③ 말씀을 받음(23:3-5, 15-16, 24:2 세 번째는 비전을 봄)

  ④ 이스라엘에 대하여 축복의 신탁(23:7-10, 18-24, 24:5-9)

  ⑤ 발락왕의 부정적 반응(23:11, 25; 24:10-11)

  ⑥ 발람의 대답(23:12, 16; 24:12-13)



13-15절 마음에 품은 것이 결국 행동과 보는 것을 지배합니다. 

이스라엘 진영 전체를 봐서 발람이 겁을 먹고 제대로 저주하지 못했을거라 생각한 발락은 이번에는 일부만 보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저주해 줄 것을 요청하고 비스가 꼭대기에서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린다. 발람은 그런 발락에게 신탁을 위해 이동한다. 


이미 이스라엘에 역사하셨던 여호와의 소문을 들었을 때 그는 경외보다 두려움 속에서 저주할 것을 택한 상태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탐욕에 눌려 기어이 바람을 청하여 데리고 왔다. 하지만 첫 번 째 들었던 신탁이 황당하게도 자신이 저주하고 싶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황비백산하여 이번에는 발람은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그곳은 이스라엘의 진영이 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서 발람이 이들의 진영의 크기를 보고서 제대로 저주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계산된 행동이었다. 첫번째는 발람의 지도하에 단을 쌓고 제물을 드렸는데 두번째는 다른 지시사항 없이 발락이 단을 쌓고 드린 것처럼 진행된다. 발람은 소극적이고 발락은 적극적으로 혈안이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에 발람은 신탁을 듣는 동안 발락은 그의 번제물 곁에 서 있으라 한다. 


우리의 열심과 언행 그리고 예배까지 결국 우리 마음에 품은 것을 외부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서 있는 자리가 탐욕과 저주 그리고 자신의 이기를 위한 자리라면 그가 표현하는 외적 요소들은 역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이고 불순종의 자리입니다. 혹 지금 탐욕에 점철된 인생 아닌가요? 



16-18절 깨어 자세히 듣지 않으면 주의 음성을 듣고도 깨닫지 못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발람에게 주시며 발락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이에 자신의 제물 곁에 있는 발락에게 일어나서 자세히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발락을 향한 말씀이긴 하지만 실상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발람이 더 먼저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이제 발람에게 여호와의 대면은 다섯번째입니다. 그렇게 계속 보고 듣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마음에 있는 탐욕은 결국 그 모든 것들을 듣고 전하고 있지만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향한 태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경험하고 전하는 도구로 쓰임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태도 또한 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국 발락이 아닌 발람 자신이 바뀌어야 했고,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스라엘도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접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시을 경험하고도, 그렇게 우리 삶에 세밀하게 역사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듣고도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고 믿음이 자라가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깨어 일어나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듣고 깨달으면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가 는 것이 새로 태어나고 생명을 품은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19-20절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거짓말도하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으십니다.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실행하시고 축복을 돌이키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발락과 발람을 비롯하여)과 달리 거짓말도 후회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발람에게 처음부터 일관되게 전하시고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일들, 그리고 지난 수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여호와의 행적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하시고 행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선포하신 바는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루시며, 축복에 대한 약속도 반드시 돌이키지 않으시고 행하셨습니다. 다만 그런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믿음의 눈으로 승화하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늘 동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오히려 사람들과 같이 기만하고 속이려 했던 이스라엘이 그리고 지금 발람이 가장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통해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심을 온전히 이루셨기에 오늘도 신실하신 주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룰 줄 믿고, 약속하신 복을 반드시 채우실 줄 믿기에 오늘도 그 약속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리에 변함없니 나아갑니다. 



21-24절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자는 무엇으로도 해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허물과 반역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함께 하셨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역사로 이스라엘을 지키시니 그 어떤 점술과 복술로도 그들을 해할 수 없고 눕게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체로는 힘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허물 많고 심지어 하나님은 반역하기까지 했습니다. 야곱처럼 살았고, 광야에서도 반역을 일삼던 무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 백성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셔서 변함없는 긍휼로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이들을 다른 복술과 점술로 해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나 다른 무엇으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큰 사랑 앞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는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의 이름을 높이는 일입니다. 순종과 여호와의 거룩을 나타내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우리를 어제나 오늘도 그리고 영원토록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우리는 이미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으로 지으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전에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이와 같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조그마한 어려움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닥칠 때 불평과 불만과 반역으로 행하는 일은 참담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신실하심 앞에 위로를 얻고, 혹여 불순종의 자리에 있거든 깊은 경고의 음성으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그 어떤 상황과 문제와 사람들의 일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25-26절 하나님은 생사화복의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발람의 신탁에 대해 발락은 그의 말을 막고 저주도 축복도 말라합니다. 하지만 발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전할 수 밖에 없다고 이전에 말했던 것을 상기시킵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잘못된 행동 중 하나는 자신들을 향한 참된 조언과 진리를 말하지 못하도록 아예 입을 막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객관적 조언과 판단을 금하고 오직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한 독재적 발상입니다. 이미 언로를 막는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표출하는 것일 뿐입니다. 선지서에서도 이처럼 선지자들의 예언을 못하게 막는 일들이 지도자와 소위 제사장이라 하는 이들이 자행했던 역사도 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지도자로서 소통과 언로를 막는 일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전하는 데는 기득권자들과 자신이 주인되려는 이들로부터 이러한 저항과 핍박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객관적으로 살피는 일을 하지 않기에 자신이 기준이되고 주인이 되어서 오해와 왜곡된 언행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바른 길을 가는 이들을 향하여서 삐뚫어 졌다고 되려 큰소리 칩니다. 


지금 우리를 바로 보게하고 온전한 길로 행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앞에 서는 일을 방해하는 내 외적인 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안에 이기적이고 자기부인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없는지, 그리고 외부적으로 우리를 오해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고 찬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분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막을 수 없습니다. 



*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에 선한 것을 품게 하옵시고

주의 말씀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날마다 신실하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약속의 말씀을 희망으로 품고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 사랑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안이 허물과 반역을 제하고

거룩과 순종으로 점철하게 하옵소서

주님과의 소통, 믿음의 자녀들과의 소통을 멈추지 말고

함께 위로하며 격려하며 거룩하신 주의 말씀으로

잘 빚어져 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변함없이 이 광야 여정을 경주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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