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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13. 2017

한옥목수와 양옥목수

쉴만한 물가 - 193호

20160813 - 한옥목수와 양옥목수


전센은 어릴적에 일직 부모님을 여의셨다. 의지할 친지가 마땅히 없었는지라 늘 남의 집 살이로 연명하던 그가 어느 목수를 따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한옥을 짓는 기술들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엄동설한에서부터 삼복더위 할 것 없이 집을 짓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면서 어깨너머로 기술들을 배워갔다. 글이야 한글을 겨우 깨우친 정도이니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이라도 늘어가기가 쉽진 않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던터라 오래도록 따라다니면서 조금씩 익혀갔다. 그래서 마침내 기술도 늘어가고 웬만한 것은 특별한 설계도를 보지 않고서도 집을 짓는 일들이 가능한 목수가 되셨다. 


그런데 한옥 짓는 기술을 거의 대부분 다 익혀 갈 즈음에 하필이면 그런 집을 짓는 일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기껏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나 사찰등을 짓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옥을 짓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즈음 가족들이 생겨난 처지라 한옥기술만 고집할 수 없었고 나무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면 뭐든 가리지 않고 다니면서 근근히 일을 하는 처지였다. 


손센은 소위 말하는 양옥을 짓는 목수이셨다. 타향에서 집 짓는 막일을 다니시다가 기술을 배우신 듯 하다. 마침 그 즈음에 초가 지붕에서 스레트 지붕으로 전환한 집들이 노후되어, 변형된 양옥을 지어야 하는 시절이었던 터라 그런 기술일지라도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불려 다녔다. 거기다가 마을의 이장까지 하시면서 관급공사도 대부분 시멘트나 양옥 스타일로 일하는 목수가 필요했기에 손센은 이래저래 할일도 많고 일하면서 기술도 늘어갔기에 그만큼 돈도 많이 벌었다. 일손이 부족할 때쯤이면 한옥기술이지만 그래도 기술이 있는 전센을 불러 함께 일을 했다. 전센은 한옥 대목수이면서도 양옥을 짓는 기술들에 대해서는 손센이 앞섰기에 기꺼이 부목수로 따라다니면서 일을 했다. 더군다나 글을 잘 모르기에 설계도가 필요한 양옥 공사에는 손센이 그나마 나았기에 그렇게 도움을 받으면서 일을 하셨던 것이다. 


두 분의 손길이 간 집들로 마을과 인근 마을까지 집 개량이 다 되어갈 즈음에는 멀리 타지까지도 공사를 하러 다니시곤 했다. 한 번씩 멀리 다녀오실 때마다 두 목수의 재산들이 늘어간다는 이야기들을 간간히 들었다. 집도, 땅도 자동차도 늘어가고 자재들이 쌓여 있는 것들도 보면 늘 무슨 일인지 하고 계시는 두 분은 시골에서는 그래도 그런데로 먹고 살만한 집이라는 얘길 들었다. 


두 분 목수에게는 똑같이 딸 셋에 독자가 있었다. 연령대도 비슷한 아이들인데 워낙 어렵게들 사시고 손들이 귀한 집들이어서 자식들 또한 귀하게 키우셨다. 목수 일 해서 키운 가산이 제법 있기에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호위호식하게 키우실 수 있다.  한옥 목수이신 전센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서울로 가서 직장샐활을 했다. 한참 잘 나간다 하더니 어느새 낙향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렇게 한 번 실패한 경험은 좀처럼 자릴 잡기 힘들어했고 아울러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았다고 했다. 양옥 목수인 손센 아들은 좀 일찍  어린나이에 장가를 갔다. 결혼보다 동거를 먼저 했고 타지생활보다도 일찍 집으로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아버지 일을 도우며 살았다. 그런데 한옥을 짓는 전센 아들은 정식으로 아버지의 기술을 전수 받고 경영과 설계와 건축등의 일들을 그래도 배운 가빵끈이 있어서 제법 사업을 확장해 갔다. 거기다가 황토방과 한옥 짓는 붐이 시골마다 일어나면서 한옥 목수의 일이 훨씬 많아졌기에 아들의 경영과 아버지의 기술이 합작한 사업은 크게 번창하여 군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부자가 되었단 소문이 돌았다. 


손센 아들은 아버지의 양옥 기술을 전수 받지 않고 시골에서 그냥 소일 하는 것으로 살았다. 양옥 건축업도 별로 없었기에 특용작물 재배와 가공하는 일들을 돕고 관광지 민박 사업 등으로 큰 문제 없이 그렇게 살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전센 아들이 아버지의 가산을 탕진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무리한 사업들을 확장하다가 사기도 당하고 돈을 잘못 쓰기도 하면서 아버지가 쌓은 재산들을 다 넘기게 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이 안타까워했는데 최근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에게 배운 기술들을 조금씩 풀어서 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그동안 고생하며 경험한 일들을 통해서 부모님의 나은 여생을 편히 사실 수 있도록 효도하는 아들이 되길 바랬다.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두 목수의 파란만장한 삶과 아들들의 이야기를 가까운 데서 고스란히 보고 들으며 한 시대를 살아가는 내내 시대의 조류를 따라 한 사람과 가정의 상황들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좋은 기술을 갖고도 시류를 따라 좋았다가 나빴다 할 수도 있으며 그것이 자식들까지 잘 이어져 가는 일 또한 맘처럼 잘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잘 사는 일이나 잘난 것들 그리고 자녀의 일들의 잘되고 못되는 일들 앞에서 쉬이 일희일비하거나 교만하지 아니하고 늘 겸손히 살아가는 자세가 지혜로운 인생이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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