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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20. 2017

민수기 33:01-49 광야학교의 역사 교과서

민 33:01-49 

민수기 33:01-49 광야학교의 역사 교과서


모세는 애굽을 떠나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의 노정을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기록하고 40(2)여개의 지명을 통해 40여년의 광야 여정을 진을 친 지명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월절과 홍해 도하와 엘림, 르비딤 사건, 호르산에서 아론의 죽음에 대해서는 추가로 언급하며 소개합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한 세대와 인생 전체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40일 40년 400년과 같은 일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인생 여정에 가득찬 고난을 담은 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광야 노정을 기록하며 진을 친 지명의 숫자가 40여개 입니다. 이렇게 40이라는 숫자를 통해서 지난 여정이 고난의 여정, 불순종의 여정 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신실하게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것을 역설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사명을 마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42개이 지명은 결국 거의 1년에 한 차례 이상 진을 옮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향을 향한 나그네(순례) 인생임을 잊지 않고 안주하지 않도록 또한 너무 불안해 하지 않기 위한 배려로 볼 수 있습니다. 


1-4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인도를 따라 대오를 갖추고 애굽을 떠난 노정을 여호와의 명령대로 기록합니다. 애굽을 떠나 라암셋을 떠난 날은 유월절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 때 행하신 큰 권능은 애굽의 장자를 장사하여 거짓 신들을 벌 주신 사건이라고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종되었던 이스라엘을 군대(대오와 진을 친다는 군사적 용어등을 통해서)로 세워주셨습니다. 애굽의 흑암의 권세에서 종노릇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도록 지난 40여년의 불순종과 은혜의 여정을 기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처음 애굽을 떠나던 날, 그리고 그보다 더 먼저 애굽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큰 권능은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이 거짓 신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이신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양의 피를 통해 죽음이 유월하게 한 희생사건에 대해서도 상기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이 거저 이뤄진 것이 아니라 대가가 지불 된 것임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그리고 처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구주로 믿으며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백성 되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값없이 받은 구원은 이 땅에 그 무엇으로도 그 값을 치룰 수 없기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대속 하셔서 우린 거저 얻게 된 구원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래서 예수님 짜리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서 보배로운 소유,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까지 주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은혜로 시작한 여정이며 자격없는 우리에게 값없이 베푸신 놀라운 은혜가 새 생명, 새 삶, 새 인생, 새 백성, 새 인류, 새 나라를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평생 감사할 은혜를 이미 입은 것이니 이후의 여정은 감사로 점철해 가야 할 여정임에 틀림없습니다. 



5-15절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통해 광야 여정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라암셋을 떠난 여정에서 숙곳, 에담, 믹돌, 그리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서 에담 광야의 마라,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그루가 있던 엘림, 홍해가, 신광야, 돕가, 알루스, 물이 없어 불평했던 르비딤과 시내광야까지 이르렀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좌우로는 산이 가로막고 뒤로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올 때 이스라엘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봉착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방이 막힌 그 때에 모세는 잠잠히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보라 했을 때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바다 속으로 길을 내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지중해 연안을 지나는 길로 버티고 있는 블레셋을 두려워할 이스라엘을 광야로 이끄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척박한 땅, 예측 불허의 땅, 물과 양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쉬이 지날 수 없는 광야임에도 하나님은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그루의 그늘이 있는 엘림으로 인도하사 해갈하게 하신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르비딤에서 또다시 물이 없어 불평할 때에도 모세를 통해서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신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방법과 은혜로 이스라엘을 살리시고 이끄시고 채우시고 입히시며 인도하신 분이 여호와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난 삶의 여정에서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마다 염려하고 근심하며 어찌할 줄 몰라하며 불평하였습니다. 믿음의 자녀라 하면서도 하나님의 더딘 응답과 때로 침묵하는 것 같은 순간에는 더더욱 볼멘소리를 내면서 불신앙적 언행심사로 주님을 아프게 하며 조급해 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우리가 계산하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채우시고 해결하시고 이끄신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정작 감사해야할 주님을 생각하기 보다는 주신 선물에 눈이 멀어 금새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돌이켜 보니 주님의 인도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주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을 넘고, 주님의 역사는 우리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16-37절 여호와께서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변함없이 구름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함께하셨습니다. 

시내 광야를 떠나 기브롯핫다아와, 하세롯, 릿마, 림몬베레스, 립나, 릿사, 그헬라다, 세벨 산, 하라다, 막헤롯, 다핫, 데라, 밋가, 하스모나, 모세롯, 브네야아간, 홀하깃갓, 욧바다, 아브로나, 에시온게벨, 신광야(가데스), 그리고 호르산까지 진을 치고 떠나길 반복하며 이동했습니다. 


똑같은 광야, 예측할 수 없는 땅과 지루한 일상의 반복같은 여정이었지만 불과 구름기둥은 여전히 성막을 중심으로 있었으며, 만나와 메추라기는 변함없이 매일 내려 먹을 수 있었으며,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하지 못하도록 했고, 옷이 해어지지도 않게 해 주셨으며, 각종 위험으로부터도 지키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때로 이스라엘은 불과 구름기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여호와의 함께하심과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과, 지나온 여정과 약속의 땅을 향한 목적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의 먹을 양식과 숙식을 위한 고민으로 주님을 망각했던 시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습관처럼 광야여정에서 진을 치고 이동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자칫 부정적인 생각도 들고 불펴으로 가득할 수도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평범한 것 같고, 지루한 일상같고, 하나님으로부터 잊혀진 것 같은 여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들 가운데서 임재하사 함께하시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과 마음까지도 헤아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 기억할 수 없는 장소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지나온 여정의 순간순간까지 세밀하게 기억하시고 그 가운데 가슴깊이 아로새기고 후손 대대로 기억해야 할 은헤의 여정이 있음을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들도 가끔은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어 질 때, 내가 하는 일들이 무의미해 보이고, 초라해 보이고, 가치없이 느껴지고, 원하는대로 바라는 대로 기대한 대로 일들이 진행되지 않을 때, 만나는 사람들, 가정과 학교와 직장의 반복되는 일들 곳에서 우리는 종종 임마누엘(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코람데오(하나님의 면전에 있음을)를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늘 주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앙망하지는 더더욱 못했지만 하나님은 단 한순간도 우리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시며, 때로 우리가 힘들어 할 때는 우리를 업어서 그 길을 걸어오셨던 것입니다. 



38-49절 여호와께서는 지명마다 담긴 사연 속에서도 신실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출애굽한 지 40년 5월 초하루에 아론은 호르산에서 123세에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도 여호와의 명령을 따른 것입니다. 가나안 남방의 아랏 왕은 이스라엘이 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호르산을 떠나 살모나, 부논, 오봇, 이예아바림, 디본갓, 알몬디블라다임, 아바림 산, 그리고 요단 강 가 모압평지(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까지)에 이릅니다. 


아론은 사명을 다하고 죽었습니다. 비롯 실수를 범하였어도 하나님의 부르심과 모세의 조력자로서 그리고 대제사장으로서의 사명들을 잘 감당하고 마침내 40년이 지난 그 끝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중재하며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마친 것입니다. 가나안 땅 남방의 사람들도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애굽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오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합니다. 이스라엘의 여정이 가나안 사람들에게도 들려진 것입니다. 이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서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고민할 것이 아니라 여호와에 대한 불신앙의 죄악에서 돌이켜야 했습니다. 아직 그들의 진멸되기 전이기에 그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진 시간들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오래 참으심입니다. 오래도록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론이 떠나고 난 이후에도 7지역의 지명이 언급되고 마침내 모압평지까지 이르게 됩니다. 한 두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가 40년 광야 여정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지명마다 담긴 사연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로 점철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기까지 도우시고 함께하시고 예비하시며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지난 여정을 살펴 보아도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를 도와 주셨던 많은 이들도 있었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이도 있었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사를 해야 할 때도 있었고, 학교와 직장을 진학하거나 옮겨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신앙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들, 부족한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납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신실했던 일들보다 어긋나고 불순종하고 상처받고 또 주고, 미움과 다툼과 시기와 질투로 아파했던 시간들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곡절이 있던 골짜기마다 주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분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 기도

우리를 구원하사 천국백성 삼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셔서 천국백성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예수님 짜리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무엇으로도 치룰 수 없는 보배로운 소유가 되었으니

거룩한 백성으로 제사장 나라로

부끄럽지 않게 살게 하옵소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들로 이끄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평범한 일상에서도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늘 주님의 면전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늘 기억하지 못하지만

주님은 신실하심을 믿으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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