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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Sep 01. 2017

디모데전서 01:01-11 교회 안에 잘못된 교훈을 막

딤전 1:1-11

디모데전서 01:01-11 교회 안에 잘못된 교훈을 막으라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생긴 잘못된 가르침과 이것을 전하는 거짓 교사 그룹들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신을 소개하면서 문안하고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 이유를 제시하며 잘못된 교훈과 바른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의 정체성과 삶의 내용과 방향을 세워가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구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소망으로 표현하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어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로 말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보통 예수님을 구주로 많이 표현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께 쓰고 있고, 반대로 소망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주로 쓰는데 여기서는 예수님을 소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바울의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과 구원은 결국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 또한 바울은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명령’을 따라 사도가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자신의 사도됨에 대한 기원과 권위보다 오히려 자신의 사도됨의 정당성을 더 강조하기 위해 쓴 표현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사도가 되어 지금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여기서 또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에베소교회에 있는 디모데의 권위를 더 높여서 용기를 주기 위한 표현이면서 동시에 디모데가 가르치는 복음이 자신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확증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 마지막으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기원하는데 하나님과 예수로부터 오는 것을 표현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등한 하나님으로 고백함과 동시에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임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당대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로마의 황제나, 아데미로부터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아니라 구주이시며 소망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참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 그리고 회복된 관계 속에서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된 사도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한 자신은 사도로서 교회를 바로 세워가기 위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쓰고)있으며, 그것이 곧 자신의 삶의 내용 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울러서 바울 자신의 삶의 방향은 소망을 하나님 곧 그리스도에 두고서 그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바라면서 살아가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정체성과 삶의 내용과 방향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한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기인한 것입니까? 



3-4a절 교회 안에 있는 다른 교훈을 막고 헛된 것에 몰두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면서 디모데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목적이 다른 교훈을 막고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는 것들까지 막기 위함이라고 재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전도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에베소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워진 디모데에게 목회적인 훈수를 두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권면의 내용은 교회 안에 들어 와 있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는 것과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는 것을 금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힙니다. 


공동체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해결할 출구가 무엇인지 아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로 공동체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고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러한 문제들을 깨닫게 하고 감당케하신 뜻과,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해결해 갈 수 있을지 간구하며 우선 지혜를 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교훈이나 이단적 가르침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해석하거나 적용해 가는 일에 있어서 온전함을 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쓸데없는 논쟁에 빠지게 하고 삶의 현실과 동떨어지고 탁상공론하며 무지에서 비롯된 성경해석과 적용의 문제점들은 반드시 지도해 주는 이나 객관적으로 지식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한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지금 우리 가정과 공동체를 흔드는 왜곡된 지식과 신앙과 사상은 없을까요? 이를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분명한 기준을 잘 깨닫기 위해서 더욱 연단해야 할 것입니다. 



4b-7절 다른 교훈은 변론을 내고, 바른 교훈은 하나님의 경륜(계획, 일)을 이룹니다. 

다른 교훈과 신화와 족보(원조 논쟁?)에 몰두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한 이유를 밝힙니다. 이러한 것들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보다 오히려 변론(다툼)만 가중시킨다는 것입니다. 참된 교훈의 목적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고 온전한 사람이 되게해서 언행심사가 일치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확증한 것도 깨닫지 못하면서 오히려 선생이 되려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교훈이 목적은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교훈이라 함은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 아닌 사상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원래 목적들을 상실하고 말씀을 신화와 끝없는 족보 논쟁에 빠지게 해서 정작 복음의 능력안에 머물기 보다 쓸데 없는 논쟁들로 시간을 허비하고 사람들의 신앙을 회의적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아전인수격이나 자가당착이나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적용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 아예 그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오히려 말씀을 교묘하게 해석하여 어떻게든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거나 실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율법 등을 오해하여 사람을 살리기보다 오히려 더욱 올무가 되게하고 정작 중요한 법의 정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입니다. 또한 자신이 말하는 것과 확증하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누군가에게 선생이 되려는 자세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양육시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숙이 없다면 일차적으로 우리가 바른 교훈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요,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함이요, 깨달았다 하더라도 자신이 깨달은 대로 사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자가 되려고까지 하며 교만해 진 것입니다. 신앙의 연조가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성숙해지고 깊어지고 더 고상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반대로 더 옹졸해지고 고집스럽고 완고해지며, 넉넉하게 품지 못하고 그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면 그는 지금 바른 교훈을 따라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것이 아닌 다른 믿음의 길을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8-11절 율법과 바른 교훈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르게 합니다. 

율법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은 적법하게 쓰면 선한 것입니다. 이 율법은 불법한 자를 비롯하여 15가지 경우의 죄인들을 위함이고 마침내 율법은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르게 합니다. 


불법한 자를 비롯한 15가지의 목록에 해당 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부럽한 자,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 경건하지 아니한 자, 죄인, 거룩하지 아니한 자, 망령된 자, 아버지를 죽이는 자, 어머니를 죽이는 자, 살인하는 자, 음행하는 자, 남색하는 자, 인신 매매를 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거짓맹세하는 자,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 이러한 죄에 대한 목록은 우선은 에베소 교회안에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의 죄에 대한 언급이면서, 더 나아가 하나님을 떠나 불의한 죄인된 인간의 실존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왜, 무엇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기준이 되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우리에게 복음(예수 그리스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께 인도해 줍니다. 그래서 다른 서신에서 바울은 율법을 몽학선생(갈 3:24, 25)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아는 대로 살지도 않는, 그래서 온전하지 못한 죄인들이 오히려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고 선생이 되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의 실존에 대한 자각을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또 율법의 순기능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았던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우리를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대속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을 믿는 보배로운 소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 되게 해주신 그 영광의 복음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내용이며 방향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의 목적은 복음과 그리스도로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게 올무가 되게하고, 영광의 복음이 드러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을 드러내고, 공동체를 복음안에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분열케 하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돈을 요구하고 교만하여 패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의 목적과 방향이 복음에 온전하게 기인한 것인지 다시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할 수록 더욱 영광의 복음을 따르며 주님을 더욱 닮아가고 거룩한 교회로 세워지며 바른 교훈 위에 서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 기도

은혜와 긍휼과 평강의 구주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고 소망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의 이유로 주신 사명을 따라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해 주시고

또한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은혜 주심도 감사합니다. 

영적 분별력과 지혜 주셔서 

공동체의 상황과 문제를 직시할 수 있게 하옵시며

헛된 변론에 빠지지 않는 지혜도 주시고

날마다 주신 말씀을 따라서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열매 맺으며 살게 하옵소서. 

가르치려고만 하는 교만한 자가 되기보다 

먼저 겸손히 그 말씀대로 사는 자 되게 하옵시며

말씀에 대한 확증과 깨달음을 주시옵고

언행일치된 온전한 삶의 길로 행하게 하옵소서

이전에 죄인되었던  때를 기억하여

다시는 동일한 죄를 범하는 우를 범치 않게 하옵시며

우리에게 맡기신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라

날마다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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