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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Sep 02. 2017

디모데전서 01:12-20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딤전 01:12-20

디모데전서 01:12-20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바울 자신을 구원하시고 일꾼 삼으신 하나님의 긍휼을 증거 하면서 에베소교회를 섬기고 있는 디모데가 자신이 가르친 교훈을 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갈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12-14절 주의 은혜와 믿음과 사랑이 우리를 능하게 하시고 직분을 맡기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는데 하나님의 긍휼 곧 주의 은혜와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신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구주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 곧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믿음과 사랑이 전에 예수를 비방하고 박해하고 폭행했던 바울을 택하여 복음의 일꾼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자격없는 이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역사를 그리스도께서 이루사 바울에게 직분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앞에 다만 감사하고 충성하는 일이 함당한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정체성과 삶의 내용과 방향을 전환하고 새롭게하고 온전케 합니다. 


바울 못지 않은 우리 또한 주님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 결코 설 수 없는 자였습니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던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은혜, 긍휼, 자비, 사랑)로 인함입니다(롬 3:21-24). 그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이 지금 우리의 삶의 내용이며, 맡겨주신 직분을 충성되이 감당 하여 영광 돌리는 것이 우리 삶의 방향입니다. 



15-17절 죄인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주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바울은 자신의 예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신 것을 재확인하면서,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이 긍휼을 입은 까닭은 자신과 같은 이들 누구라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마침내 영생을 얻게 하실 수 있다는 본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돌리고 있습니다. 


다른 교훈을 전하는 이들은 이러한 바울의 예에 대해서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의 전한 다른 교훈은 이와 같은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른 교훈 곧 영광의 복음은 바울과 같은 죄인일지라도 구원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을 보면 결국 영광의 복음의 은혜와 능력이 무엇인지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구원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영광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 한 사람만 잘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서 우리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긍휼하심 곧 영광의 복음이 전파되고 증거되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나라의 백성되게 하사 하나님나라 세우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곧 사명에 대해서도 눈을 뜨는 것이 성숙한 자세이며 우리가 채워가야 할 삶의 내용입니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달라고 하는 이들에게 지금 나를 보면 알수 있지 않느냐고 말할만한 간증과 믿음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18-20절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워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오래참으심(16절)으로 말미암는 복음을 따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바른 교훈을 전했습니다. 이 교훈을 따라 디모데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믿음과 양심을 버리고 출교를 당하기도 했는데(후메내오와 알렉산더), 이렇게 한 의도는 그들이 이러한 훈계를 통해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에베소교회에서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이들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주장 중에 후메내오(딤후 2:17) 같은 경우에는 이미 부활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도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양심을 버린 행위였고,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된 모습입니다. 양심은 선한 일을 도모하게 하는 것이며, 믿음 곧 바른 복음을 따른 삶은 변함없이 선을 이루며 공동체의 하나됨을 힘쓰고 살리는 일을 하면서 1:5에서 말한 것처럼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사람으로 자신과 공동체를 세워가는 사람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들을 징계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치리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징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훈계와 회개와 돌이켜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오랜 인내를 요하는 싸움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싸움에 있어서는 당연히 희생과 수고가 따릅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죄인된 우리들을 향하여 오래 참으셨기에 마침내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선한 싸움은 마침내 바울과 같은 이도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도 마침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역사로 채워주신 주님의 기적을 기대하면서 오래참음으로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고 사랑 받은 대로 사랑하며 맡겨 준 직분에 충성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기도

자격없는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사

하나님의 일꾼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

이전에 주님을 알지 못하고 범죄하였으며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입고 난 이후에도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지 못했으며

또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뜻에 

무관심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를 주님의 증인으로 세우사

축복의 통로로서 또 다른 이들을 세우시려는 사명을 기억하여

오래참으시는 주님의 본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을 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되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고 바른 교훈위에 서고

징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고 공동체를 온전하게 세우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임을 기억하고 행하게 하옵소서. 

이미 우리가 받은 풍성한 긍휼이 

일평생 주의 뜻을 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주님의 일꾼으로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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