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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Sep 11. 2017

디모데전서 06:11-21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바

딤전 06:11-21

디모데전서 06:11-21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바울사도는 이제 유언같은 서신을 마무리 하면서 다시 한 번 디모데를 향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명하고, 선한 증인이 될 것을 명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면서 참생명의 길을 제시한 후 끝까지 자신이 부탁한 것을 지키도록 권하고 축복하며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11-12절 하나님의 사람은 피하고 따르며, 싸우고 취할 선한 싸움이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면서 거짓교사들과 다른 교훈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들을 피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따라야 할 것(의, 경건, 믿음, 사랑, 인내, 온유)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라고 합니다. 디모데는 이것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증언을 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사도가 디모데를 향해 부른 ‘하나님의 사람’은 디모데를 향한 격려와 독려, 그리고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상기해야 함을 담은 호칭으로 보입니다. 이로서 디모데는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내용과 방향을 기억하도록 한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과 다른 디모데는 하나님의 참된 일꾼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교훈과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을 피해야 합니다. 미혹과 유혹은 그것을 피하는 것이 맞습니다. 누구도 이러한 것들을 접하고 보게 되면 금새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운 가르침과 달콤함에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보지 않고 맛보지 않고 품지 않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이 품어야 할 것은 거짓교사들이 행한 모습(6:4-5)과는 반대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품이면서 우리가 닮아가고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쉽게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해산의 수고만큼 오랜 시간동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주의 말씀으로 빚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 갈 수 있기에 이것을 갖추기 위해서 힘쓰는 일은 ‘선한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을 싸우는데는 우리 힘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영생을 취하라고 합니다. 영생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의, 경건, 믿음, 사랑, 인내, 온유)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짓된 가르침이나 미혹들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를 목회하는 디모데는 이러한 싸움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고, 목회하는 교회에서 이와같은 삶을 사는 것을 통해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사람된 우리들이 피하고 따르며 싸우고 취할 것도 같은 것입니다. 거짓된 교훈들을 피하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온전케 하심을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일상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늘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나의 모습이, 그리고 허락하신 가정과 교회공동체, 그리고 일터와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인것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늘 기억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멈추지 않고 달려가길 기도합니다. 



13-15a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온전하게 명령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만물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왕) 되신 예수님 앞에서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흠없고 책망받을 것 없는 자 되도록 이 명령들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만물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영생)을 통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빌라도 앞에서도 선한 증언을 통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신 예수님 곧 다른 힘과 폭력과 무력을 통해서가 아닌 선한 싸움으로 왕되신 하나님의 사명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증언하신 예수님 앞에서 또한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주이시며, 세상 가운데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기에 바울은 그 앞에서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명령은 엄중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이 반드시 따라야 할 명령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약속하신 때가 이르면 주님은 다시 오셔서 우리를 선악간에 살아온 삶의 여정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온전함에 이르도록 주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길이 영생의 길이고, 거룩한 길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리사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게하신 하나님, 우리의 삶의 모본을 보이사 선한 싸움을 싸우는 길로 행하게 하신 예수님,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며 마침내 우리가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이 없는 모습(또는 디모데에게 주어진 명령이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음)으로 온전함으로 살아,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 날에 약속대로 온전케 하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선한 증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오랜 인내로 경주해 가길 원합니다. 



15b-16절 하나님은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려야 합니다. 


바울사도가 제시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복의 근원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복은 하나님과 함께함의 복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체가 우리에겐 복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유일한 주(왕)이십니다. 이를 유일한 주권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일하신 주권자이시기에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들도 우상이며 가짜이고 헛된 것입니다. 또한 모든 세상에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아닌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의 주이시며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 하시며,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영이시며 우리와는 다른 신비로우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방식은 우리와 다르며 우리의 지식과 이해를 뛰어넘어서 그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사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신 것만 알 뿐이니 하나님은 우리의 앎에 갖히시는 분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제한하거나 다 설명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더욱 겸손히 주님을 알아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모든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주님께만 돌리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인간이 첫번째 반응은 경외와 경배와 찬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되심과 주권 그리고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삶은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감당하며 다시 오실 때까지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여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녹녹치 않은 고난의 여정이기에 주께서 주신 힘으로 오랜 인내로 경주해 가랴 하고, 바울 사도는 그렇게 달려갈 길을 끝까지 잘 가서 디모데에게도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재림의 시기에 대한 불필요한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계획에 달린 일이니 다만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며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도 이와 같을 줄 믿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알아가는 만큼 믿으며, 이 여정을 감당할 수 있길 원합니다. 



17-19절 부한 자들은 재물이 아닌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 세대 가운데 부한 자들에게 명하여 가르칠 것을 디모데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소망은 하나님께 두고,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눔을 기뻐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합니다. 이러한 삶이 결국 장래에 자신을 위해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이들에 대한 권면(6:9-10)에 이어서 이미 부한 자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치라고 권면합니다. 우선 교만하지 말라 합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부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지 자신들이 잘나고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를 오해하고 많이 가지면 마치 믿음이 좋고 바르게 잘 사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그것을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합니다. 재물은 영원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모으려고 해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모으고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이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 생각하며 소망을 두지 말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모든 만물의 주되신 하나님, 이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하나님 아닌 돈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요. 셋째로는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면서 너그러운 자가 되라합니다. 그것이 장래에 자신을 위해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하게 하신 것을 은사로 이해하는 것도 적절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부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물질을 허락하신 것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선, 선한 사업 = 선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기에 선한 사업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그래서 하나님은 많이 부어준 자가 그것을 흘려 보내서 나누시길 원합니다. 그렇게 나누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되고 너그러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이 가진 만큼 마음도 씀씀이도 넉넉한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많이 가진다고 부자가 아니라 많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정말로 나누는 자가 부자입니다. 결국 그러한 삶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으로서 참된 생명을 몸소 살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되신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이미 복있는 자로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 무형의 소유를 우리는 이미 넉넉하게 받았습니다. 먼저는 그 안에서 자족할 줄 아는 믿음도 중요합니다. 어떤 이들은 많이 소유한 이들이 있습니다. 마치 은사와 같이 보편적이지 않은 특수한 경우입니다. 그것을 모으는 일에 있어서도 정직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많이 가질 수 있게 하신 것은 선한 일을 행하게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주위를 둘러보아 넉넉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생명을 온전히 믿는자요, 세상의 물질을 주로 섬기지 않는 자의 모습이요, 삶의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자요, 물질의 종이 아니라 잘 다스리는 자요, 부한 중에라도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넉넉한 나눔을 실천하지 못하고 망설인다면 아직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는 무지한 고민중에 있는 불신자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많이 가진 자는 깊이 고민하면서 어디까지 나누고 살아야 하는지, 왜 자신에게 이와 같은 부를 허락하셨는지 매일 묻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새 그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참된 생명을 가진 자로서 삶에서 진행되는 나눔 곧 선한 일과 사업이 매일 열매 맺길 원합니다. 



20-21절 거짓된 교훈을 피하고 바른 교훈과 믿음을 지키라.

마지막으로 바울사도는 다모데에게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변론들을 피하고 자신이 명한 것들(바른 가르침을 전파하고, 거짓된 가르침을 막고, 일꾼을 세워서 함께 도역해라)을 잘 지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들이 믿음에서 벗어났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축복합니다. 


다른 교훈을 따르는 일을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다른 교훈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전한 바른 교훈 즉 복음과 함께 고난의 여정을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 길을 가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길을 벗어나서 헛된 것을 섬기며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모데는 먼저 자신이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고, 이러한 문제들에 노출된 교회를 잘 목회하면서 교육목회와 공동지도력을 통해서 진리와 경건의 삶을 사는 교회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선민 창조의 목회를 통해서 말씀위에 든든하게 세워가야 했습니다. 이 일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일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간구합니다. 

진리 수호, 거짓 가르침 차단, 경건의 본을 보이며 자신을 먼저 하나님 앞에 드리고, 바른 가르침을 잘 배우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선민창조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일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운데 잘 감당하도록 오늘 우리에게도 명하고 있습니다. 


*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도자는 먼저 말씀을 바로 알고 또한 아는대로 살고, 그런 삶의 모범을 통해서 성도들을 잘 가르치고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고, 성도들이 세상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을지 잘 가르쳐 주면서 동역자들과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 거짓된 가르침, 맘몬, 세상적 기복, 번영등의 무지한 사상들이 진리로 가장하면서 버젓이 교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단보다 더 문제는 정통교회에 있으면서 이단적 사상과 가르침과 신앙을 가진 이들입니다. 지도자들도 다시 말씀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바른 교훈들을 배우기 위해 그 말씀을 상고해야 하며, 부지런히 깨달을 말씀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성도들 스스로 또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자로 자라도록 도와야 하며, 모든 탐욕으로 인한 분주함을 내려 놓고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다스림을 말씀을 통해서 받고 살아가도록 힘써 가르치고 동역하는 일이 오늘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교육목회의 회복, 공동지도력을 확보하여 왜곡된 전통과 안일하고 허술하고 가벼운 신학에 고착되어버린 교회를 개혁하고 다시 말씀의 공동체, 생명의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로, 사랑의 공동체로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 기도

모든 만물의 주되시며 

찬양과 영광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하시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로 주님의 증인으로 온전히 살게 하옵소서. 

모든 만물의 생명의 주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가신 그길을 따르며

주의 명령을 따라 가게 하옵소서. 

약속을 기다리며 인내로 경주하게 하시옵고

주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많이 가진 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선한 일을 위해 넉넉하게 나눌 수 있는 믿음과

참된 생명을 취하는 자로 부족함없게 하옵소서

헛된 지식을 피하고 참된 지식을 따라 살아

믿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을 기억하고

겸손히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오늘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맡겨주신 몸된 교회를 

말씀과 생명과 거룩과 사랑의 공동체로

잘 세워갈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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