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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Sep 20. 2017

예레미야 03:19-04:04 이스라엘아 내게로 돌아오

렘 03:19-04:04 

예레미야 03:19-04:04 이스라엘아 내게로 돌아오라


하나님께서 긍휼과 회복에 대한 약속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특별하게 택하여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호와를 떠나 스스로 길을 굽게 했습니다. 다시금 돌아오라는 여호와의 초청에 예레미야는 고백적인 참회의 시편을 통해 동참을 호소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돌아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무엇보다 마음의 할례를 행할 것을 명하십니다. 


19-20절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께서 자녀 삼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속이고 떠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자녀삼으셨고 아름다운 기업인 약속의 땅(귀한 땅)을 주셨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해서 자신을 떠나지 않길 원하셨는데 이스라엘은 아내가 남편을 속이고 떠남같이 확실하게 여호와를 속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각별히 사랑하셨는데 이스라엘은 그 사랑을 배반하고 본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여인처럼 특별한 지위를 주신 여호와를 배반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특별한 지위 곧 자녀됨의 영광을 허락하셨고, ‘아름다운 기업’인 귀한 땅까지 주셨습니다. 즉 약속의 땅에 대한 상속재산을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은 음욕에 빠진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미쳐서 인생의 반려자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것처럼 여호와를 배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남다른 자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쳐 버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으로 말미암아 양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로 곧 왕같은 제사장으로 택하신 교회입니다. 우리를 대속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면서 약속의 땅을 오늘 선 자리에서 살아가는 일이 우선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속이고 떠날 분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순종하고 돌아가야 할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특권을 놓치지 말고 충성할 수 있길 원합니다. 



21-25절 우리의 범죄와 불순종에도 여호와께로 돌아갈 수 있는 근거는 주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특권을 놓치고 여호와를 속인 이스라엘은 결국 우상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애곡하며 간구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호와를 떠난 이스라엘은 스스로 자신들이 살아야 할 길을 굽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배역한 자식들을 불러 돌아오라하고 그들의 배역함을 여호와께서 직접 고치리라 하십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우리’라는 용어를 12회나 사용하면서 이스라엘이 지금 함께 참회하며 기도해야 할 내용을 참회의 시편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자녀이면서 여호와를 속인 결과는 결국 헐벗은 산위에서 애곡하는 인생, 아무런 소망이 없는 인생으로 전락합니다. 스스로 택한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지 않으시기에 인생 길이 괴로워 지는 것이고(굽어진 길), 결코 잊어서는 안될 여호와를 망각해 버린 것입니다. 여호와를 떠난 인간은 스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대변하면서 배역한 이스라엘이 돌아오라고 초청하면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고치시리라 약속하십니다. 구원은 이스라엘이 먼저 회개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특벽한 초대에 의해서 열리게 됩니다. 


이어서 예레미야는 독백처럼 이스라엘 공동체가 함께 드려야 할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라는 단어의 사용(12회)은 우리가 주께로오고,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의 구원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고, 우리가 청년때부터 우리 조상의 산업을 삼킴(곧 우상을 숭배한 역사가 오래됨), 우리는 수치중에 눞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덥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우리 조상들의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범죄 곧 바알숭배의 파국적 결과를 바로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산당의 바알제의가 우상숭배의 범죄행위였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불순종이었음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을 예레미야가 먼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이미 용서해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돌아온다면 긍정적으로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예레미야는 앞 날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헐벗은 산(우상숭배), 그곳에서의 애곡, 스스로 길을 굽게하고 여호와를 망각한 이들은 스스로 여호와께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오직 구주 여호와께서 불러주시고 택해 주시고 순종할 능력까지 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고,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기에 범죄하여 불순종하고 스스로 여호와께 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서도 우리를 건지시고 고치시고 싸매시며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굽어진 것은 역시 마찬가지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의 부재와 망각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주되심,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 진리의 성령님께서 이를 깨닫고 믿고 순종하게 하심이 함께 이루어져야 우리는 우상의 유혹과 미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4:1-2 회개는 기도와 예배의 회복뿐만 아니라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아오려거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하시면서 세 가지 실제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합니다. 여호와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흔들리지 아니하며,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나라들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고 자랑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을 선택하여 그분께로 돌아가는 결단이며, 과거의 잘못된 ‘가증한 것들’을 지워버리고, 삶에서 실질적으로 그분의 통치를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이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이방민족들에게도 그분의 축복이 허락됩니다. 이스라엘의 회개는 두 가지, 첫째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바알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분명하게 선택하고 여호와께 구원을 찾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은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가증한 것(풍요제의의 우상들)을 오나전히 던져버리고, 흔들림없이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의 내용은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맹세해야 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통치에 순종하면서 신실하게 처신하면서 하나님이 규정해 놓으신 질서(정의와 공의)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나라들도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하게 됩니다. 즉 이스라엘의 참된 회개가 이방민족들에게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나의 주권자임을 인정한다면 이는 기도와 예배의 자리에서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삶에 적용되고 열매맺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제의적인 고백과 예배는 시작일 뿐 제의의 열매는 결국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루고 순종하고 예배하고 간구하는 일을 통해서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삶의 변화없는 예배와 기도, 예배와 기도 없는 삶의 변화 모두 문제가 됩니다. 전자는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고, 후자는 혹여 이기적인 모습으로 얼마든지 전락해 버릴 수 있습니다. 



3-4절 묵은 땅을 갈고 마음의 할례를 행하여야 여호와께 속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을 향하여 농경사회의 표상을 사용하여 새출발을 위한 경고를 전합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합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마음 가죽을 베고 여호와께 속하라 합니다. 


새출발을 위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악한 행실을 계속하면 유다와 예루살렘은 그분의 꺼지지 않는 진노의 불길에 멸망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근본적이고도 힘겨운 방향전환입니다. 삶에 있어서 기존의 생각과 자세를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생각과 자세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마치 묵은 땅을 개간하는 것처럼, 잡초와 돌을 제거하고 굳은 흙을 부수어 주어야 개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희생을 두려워한다면 가시덤불에 씨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은 단순한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 가죽을 벗겨야 합니다. 히브리적 사고에 의하면 ‘마음’은 감성의 자리가 아니라 생각과 의지와 결정을 주관하는 기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은 단순히 예배와 추상적인 돌이킴이 아니라 완고한 마음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출발해야 합니다. 회개는 과거의 갱신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단절을 전제한 새로운 출발이어야 합니다. 이 권면의 말씀은 긴급함과 절박성이 강조됩니다. 하나님의 분노의 불길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은 더이상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악한 생실에서 써나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 기도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고 천국백성 삼아 주시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아래 거룩함으로 살게 하여 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을 속이고 떠난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을 떠나 애곡하며 스스로 길윽 굽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해주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돌아오라 초청하시는 부름에 응답하여

우리 주 하나님께 구원이 있으니

우리의 범죄와 불순종의 자리에서 온전히 돌이키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명하셨듯이

가증한 것들을 버리고  흔들리지 아니하며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살아서

열방이 복을 얻게 하옵소서. 

묵은 땅을 기경하듯 완전히 새롭게 행하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여 시험에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오직 마음의 할례를 받아 온전히 돌이키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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