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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Sep 19. 2017

예레미야 03:06-18  배역과 반역의 죄와 하나님의

렘 03:06-18

예레미야 03:06-18  배역과 반역의 죄와 하나님의 긍휼과 약속


북이스라엘의 배역한 죄로 말미암아 멸망한 것을 보고도 유다는 배우지 못하고 반역했음을 고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미 포로로 끌려간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돌아오라 하시며 긍휼을 베푸시고, 때가 되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여 새백성을 세우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6-11절 역사를 타산지석, 반면교사로 삼고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요시야 왕 때에 다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행음에도 돌아오기를 바랬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마침내 멸망했는데, 그것을 보고도 유다는 두려워하지 않고 동일하게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고, 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 오지도 않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앙회복을 위해 열심이었던 요시야왕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남유다의 많은 이들이 온전히 여호와께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행한 이들이 많았슴을 알 수 있습니다(10절). 여호와를 배역한(하나님께로 돌아서버린)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길 바랬으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이 모든 일들을 유다는 고스란히 보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722년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합니다(이혼서). 지금 예레미야가 활동한 시기는 그로부터 100여년이나 지난 시기입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멸망에도 유다는 두려워하지 않고 행음을 가벼이 여기며 북이스라엘과 동일한 전철을 밟아 약속의 땅을 더렵혔습니다. 그런 시간들의 이미 오래 된 상태에서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일들에 대하여서도 진심이 아니라 거짓으로 할 뿐이라고 이미 여호와께서는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우상숭배를 하다가 멸망한 북이스라엘이 그런 파국적인 운명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동일한 길을 간 유다보다 상대적으로 낫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11절). 북이스라엘이 의롭다는 것이 아니라  뻔히 역사를 보고도 배우지 않는 유다가 상대적으로 더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선 인생의 허무함과 무상함, 그리고 수많은 악인들의 말로를 역사적으로 보고, 우리에게 증언하는 말씀과 허다한 증인들을 보고도 우리가 배우고 돌이켜서 온전히 의의 길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 길은 필경 망하는 길입니다. 참으로 복과 지혜가 있는 자들은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우리의 삶의 내용과 방향을 주께서 인도하시는대로 배역과 반역(불출)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충실함으로 채워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보고도 진심으로 돌아오지 않고 거짓으로 채워진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오늘 듣게 하신 주의 말씀의 교훈들을 새기고 결단하는 일을 더이상 미루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믿음이 약하오니 진실한 마음으로 돌이켜 주께로 행하는 믿음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12-13절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합당한 반응은 자복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북으로 가서 선포하라 하십니다. 배역한 이스라엘이 돌아오면 더이상 노를 품지 않고 긍휼을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오직 죄를 자복하라는 것입니다. 그 죄는 여호와를 배반하고 제길로 간 죄, 이방인들에게 가서 우상을 숭배한 죄,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한 죄를 언급하십니다. 


앗수르에 멸망해 버린지 이미 100여년이 지났으나 여호와께서는 북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 ‘북을 향하여’가 의미하는 것은 북이스라엘과 앗수르(메소포타미아)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을 말하고, 배역한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그들을 향한 긍휼을 여전히 품고 계십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돌이킨다면 더이상 노를 품지도 않으시고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돌이켜야 할 죄는 우선 여호와께로부터 돌아서서 각기 제길로 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호와를 배반하고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각기 제(악인의 길) 길로 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에게로 가서,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여기며 종노릇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환난날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헛된 신을 따라 간 것입니다. 그래서 저악 들어야 할 여호와의 목소리 곧 생수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의 인도를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지금도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주님 아닌 것을 주님처럼 섬기면서 살고 있는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거나 우상과 더불어 섬기는 혼합주의적인 신앙에서도 돌이켜야 합니다.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들어야 할 여호와의 목소리 청종하는 것보다 다른 것을 더 즐거워하고 있는 삶의 모습에서 또한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이 간절한 호소에도 우리의 마음이 강퍅하여서 여호와의 긍휼하심과 오래참으심을 외면하는 패역하고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죄인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긍휼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4-18절 우리의 진정한 주인은 여호와 이시며, 마침내 주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돌이여 선한 일을 하는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호소합니다. 여호와께서 남편(바알; 주인, 임자)으로서 너희 중에서 택하여 데려오리라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세워서 지식과 명철로 양육하리라 하십니다. 그 때에 다시금 약속의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지게 되면 더이상 언약궤가 필요없는 관계로 회복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 때에는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모여서 더이상 악한 마음과 완악한 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라 하십니다. 마침내 유다와 이스라엘 족속이 동행하여 귀환하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예레미야가 활동하고 있는 남유다는 결국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고 멸망하게 되리라는 것이 전제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에게 대아하라신 메시지를 40년동인이나 전했음에도 결국 유다가 돌아오지 아니하고 멸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고통을 안고 이 말씀들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긍휼은 배역한 자식들(유다와 이스라엘)을 향하여 돌아오라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는 당신이 참된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이 남편(바알)은 임자와 주인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바알우상과 같은 단어입니다(동사:지배하다, 소유하다, 주인이 되다; 보통명사:주인, 소유주, 남편; 고유명사:가나안의 신 바알). 그래서 바알신이 아닌 여호와께서 진짜 남편이요 주인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와야 할 모습은 가증한 것을 버리고, 두려워 말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며,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맹세하는 삶입니다(이후에 계속 다뤄지는 내용입니다). 


스스로 여호와께로 돌아올 수 없기에 냠편되시는 여호와께서 직접 택하여 데려오겠다고 하십니다. ‘성읍중 하나와 족속 중 둘’은 소수의 사람이나 일부의 사람만을 의미하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택하여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새롭게 세워질 백성들은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목자들(지도자, 왕들)을 통해서 지식과 명철 곧 여호와를 바르게 알고(지식), 말씀에 순종하는 명철에 의존하여 여호롸를 온전히 믿을 수 있도록하고 푸른풀밭으로 인도해 배불리 먹이고 안전하게 보호할 것(양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일차적으로 포로에서 귀환한 이들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택함을 받아 시온으로 돌아오지만 이들은 여호와께서 세우신 목자들을 통해 번성하고 수가 많아질 것(번성)입니다. 이들에게는 이전에 성전에 있던 언약궤가 필요 없게 될 것을 강조합니다(다섯가지 부정 동사(말하지않고, 생각지않고, 기억지않고, 찾지않고, 만들지 않음)를 통해서 강조합니다). 이제 여호와의 법을 사람들의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렘31:33). 실제로 언약궤는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무너질 때에 함께 소실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제 여호와의 임재는 언약궤가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확대됩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들이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회복의 대열에 이방 민족들도 동참하게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제 새롭게 양육된 백성들은 이전의 배역하고 반역한 악한 마음과 완악함으로 행동한 이스라엘처럼 살지 아니하고 선한 일에 열심인 백성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다시한번 포로로 북(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앗수르, 바벨론) 으로부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동행하여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되리라 약속해 주십니다. 


지금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백성됨은 주님의 택하심과 양육하심의 은혜과 공로때문입니다. 우리는 불순종했고, 다른 신을 섬기고, 여호와 목소리 청종에 게을렀으며, 주님을 찾지도 않고 각기 제길로 가는 자로서 아무런 희망도 없는 가증한 것들의 종노릇으로 살아가던 이들이었지만 그런 우리를 주님이 택하셔서 지금 거룩한 백성 되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내주하시는 임마누엘 주님과 함께하게 하시고, 우리를 지식과 명철로 양육하여서 번성케하시고, 날마다 주님과 소통하고 주의 인도를 따라서  악한 마음과 완악함으로 살지 않고 온유와 겸손 그리고 사랑으로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 우리의 심비에 새겨진 말씀, 진리와 계시의 영으로 내주하시는 성령님, 유일한 중보자 되시며 임마누엘하시는 주님과 함께 오늘 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통치)를 (배역과 반역 곧 돌아섬과 불충실이 아니라)순종하며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새사람, 새백성, 새이스라엘, 새인류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입니다. 



* 기도

노를 한없이 품지 않으시고 

긍휼에 풍성하시고 우리를 택하시고 양육하시며

소망가운데 살게 하여 주신 하나님 아버지

역사와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 깨닫지 못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행음을 가벼이여기며 두려워하지 않은 죄도 또한 용서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여호와께로 돌이켜 충성되게 하옵시며

주님을 배반하고 각기 제길로 간데서 돌이키고

주님 아닌 것들을 섬겼던 것을 다 버리고

날마다 주의 음성 청종하기를 즐겨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택하여 주심을 감사하오며

지식과 명철로 양육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과 순종케 하심을 따라

악한 마음과 완악한 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부드러운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날마다 주의 통치와 인도에 순종하여

거룩한 백성의 길로 온전히 행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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