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04:01-15
로마서 04:01-15 새 인류_믿음의 법(원리)과 아브라함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믿음으로 된 것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으며, 그가 의롭다고 여겨진 때가 무할례시이기 때문에 무할례자가 할례자가 동등하게 취급된다는 점을 증거합니다. 후사가 되는 것은 율법(의 기능)이 아니라 믿음(의 법의 기능)으로 된 것이며 율법은 진노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 한 줄 묵상 : 아브라함도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
# 3:21-26에서 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자들에게 나타난다(믿음의 법)고 했을 때 나타나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해서 3:27-31에서 짧게 설명한 후에 이제 본문 4:1`15에서는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자랑과 이방인과 율법의 기능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아브라함의 예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메시아 통해서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의 예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을까요? 그냥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의 예는 신약의 12사도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굳이 아브라함을 예로 드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이스라엘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을 율법을 신실하게 지킨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메시아로 말미암아 새 백성을 만들 때 가장 적절한 인물이 아브라함이라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을 우리의 조상으로 말하면서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의 조상도 된다고 확대하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이스라엘이의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민족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새 이스라엘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한 예로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 자랑의 문제, 이방인의 문제, 그리고 율법의 기능에 대한 문제에 답하고 있습니다.
<03:21-11:36 논지> 새 인류
ㅇ 03:21-08:39 새 사람
- 03:21-04:25 칭의(주장3:21-26/ Q&A3:27-4:15/ 정리4:16-25)
- 05:01-08:39 성화(논지5:1-21/ Q&A6-7장/ 정리8:1-39)
ㅇ 09:01-11:36 새 이스라엘(도입9:1-5/ Q&A:9:6-11:32/ 정리11:33-36)
<03:21-04:25 논지> 칭의
ㅇ 03:21-26 [주장] : 믿음의 법(원리)으로 의롭게 된다
- 03:21-22 예수로 말미암는 방법
- 03:23-26 방법에 대한 설명(23-24 사람의 입장에서, 25-26 하나님의 입장에서 설명)
ㅇ 03:27-04:15 [Q&A] 3 가지
- 03:27-28 = 04:01-08 자랑할 수 있는가?
- 03:29-30 = 04:09-12 이방인이 포함 되는가?
- 03:31 = 04:13-15 율법의 기능은 무엇인가?
ㅇ 04:16-25 [정리] : 믿음의 법(원리)으로 의롭게 된다
1-8절 믿음의 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에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3:27-28에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서 다시 설명을 이어갑니다.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은 행위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것을 의로 여긴 것이라 말합니다. 일한 것 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에 그것은 값없이 받은 은혜인 것입니다. 다윗도 죄사함을 받은 것에 대한 복을 찬양한 것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시편 31:1-2).
*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대표적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3절에서 아브라함이 믿은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바울사도는 여기서 분명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의로 여겨진 바 되었다고 말합니다(아브라함이 오실 예수를 믿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창세기에는 여러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고 의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약을 이루는 당사자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징하는 횃불이 지나가면서 하나님이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신 것입니다. 이를 바로 메시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의는 후에 메시아로 말미암은 의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
믿음의 법은 하나님의 의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자를 의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역사가 메시아 예수의 사건이 있기 훨씬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은 후에 다시 설명되지만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하나님이 의롭다 함을 허락하는 방법은 모두 동일하게 믿음의 법을 통해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은 스스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 곧 의가 나타나야만 그 은혜로 하나님을 믿는 의의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은혜로, 값없이 용서받고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우리는 더욱 겸손히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 3:20이전과 3:21이후는 구약과 신약의 구분이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후 또는 예수를 믿기 전과 후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의 상태와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의롭게 된 후로 그래서 옛 인류와 새 인류, 하나님을 믿기 전과 후의 구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래서 구약에도 믿음의 법으로 하나님을 믿어 의롭게 된 이들이 있고 신약에도 믿음의 법으로 의롭게 된 이들이 있는 것으로 신구약 모두 동일하게 믿음의 법으로 구원을 얻고 의롭게 되는 곧 하나님을 믿는 새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9-12절 믿음의 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복(음)은 할례자(유대인)와 무할례자(이방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 시기가 무할례시에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를 얻게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할례자 뿐 아니라 무할례자 모두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은 모두 믿음의 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시기는 할례를 받기 전입니다. 이로서 아브라함처럼 무할례시의 이방인들이라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자취를 따른다면 그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후에 아브라함은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로서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음을 할례자와 무할례자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서 증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언약을 믿고 따라 살아간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믿게 된 것들도 예수 사건의 효력이 아브라함에게도 적용되므로 말미암아 그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을 신앙할 수 있게 된 것은 예수 사건을 통해서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새 백성, 새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영화롭게도 않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으로,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자취를 따라 즐거이 살아가는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이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이제는 혈통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난 성도가 새 이스라엘, 새 백성, 새 피조물,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의 법으로 난 자면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13-15절 믿음의 법은 율법을 더욱 굳게 세우게 됩니다.
이제 믿음의 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율법은 불필요하고 폐하여 지는 것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 대한 언약은 율법의 기능을 통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믿음(의 법의 기능)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통해 상속자가 세워지는 것이라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고 맙니다. 율법은 다만 진노를 이루게 하고 죄를 드러내게 하는 것입니다.
*
앞에서도 설명했 듯이 당대 율법에 대한 유대인들의 이해가 공로주의나 언약적 신율주의를 모두다 포함하는 ‘살리는 율법주의’ 개념을 갖고 있어서 유대인들은 율법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을 의롭게 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사도는 율법이 우리를 살리고 의롭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율법이 후손들(상속자 곧 이스라엘 자손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후손, 상속자, 새 이스라엘은 믿음의 법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도 율법이 아직 없는 상태에서 믿음의 원리로 된 것이 이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이스라엘을 만드는 기능이 아니라면 무슨 기능을 하는가? 그것은 진노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1:18~3:20에서 행위 보응의 원리로서 율법이 가진 성격과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한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로마서 7장에서 다시 다뤄집니다.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죄를 깨닫게하고 사망에 이르게 해서 새 생명을 이루게 하는 그분을 기다리고 고대하며 예수를 가리키는 기능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율법은 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법은 율법의 기능이 제대로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
행위 보응의 원리가 잘 드러난 율법을 통해서 우리의 죄가 드러나게 되고 결국 우리에게는 믿음의 법을 통해 의를 얻을 수 있는 복음 곧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기에 율법을 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불어 말씀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뜻과 우리를 향하신 마음들을 알아가기에 더욱 우리 스스로 온전하게 살아갈 힘이 없고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하나님만을 신앙하며 믿음의 자취를 따라 살아가는 새백성의 길을 가게 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앞에 서야 하는 이유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천국의 상속자로, 후손으로 새 이스라엘로, 의인으로서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 기도
우리를 상속자로 새 이스라엘로 세워주신 하나님
믿음의 법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의 곧 사랑과 은혜와 자비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이 복음을 알고 믿고 따르게 하여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외인이었던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삼아주심도 감사드립니다.
허다한 믿음 증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도 믿음으로 감사하며 순종하며 살기원합니다.
주신 말씀의 인도를 따라
새 사람, 새 백성, 새 피조물, 새 인류,
새 이스라엘의 삶을 믿음으로 잘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