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20121019 - 광해와 홍길동
승자 중심의 역사 기술에 반해 요즘 유물이나 역사 자료의 짧은 구절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추적하여 민초들의 숨겨진 역사와 재평가되는 역사물들이 많아지고 있다. 숨겨진 역사를 들춰 그것을 재편집하고 오늘의 상황과 연결 지어 재창조해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연출가들의 창의력이 돋보이며 이런 류의 책과 드라마와 영화 등이 답답한 우리의 맘에 그나마 동류의 역사인식에 공감자가 있어 위안을 받게 한다.
폭군으로 인식되는 광해가 인조반정에 의해서 군으로 폐위되어 우리 모두에게 그는 그저 못난 왕이었다. 하지만 그가 펼친 대동법 정책이 왕권강화와 여타의 목적이 있어 달리 해석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땅을 가진 자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이 정책이 당시 동서남북으로 나뉜 권력 쟁취의 당쟁 속에서 시행되어졌다는 사실이 재고의 여지를 남긴다. 끊임없는 암살의 위협 속에서 백성의 안위는 눈곱만치도 없는 권세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폐위를 작당하는 틈에서 이러한 광해의 대동법은 그들에겐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수백 년 역사 동안 이어온 이 뿌리 깊은 지배와 착취의 역사에 반기를 들었다가 결국 희생당한 어느 분이 오버랲 되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권력의 시녀였던 언론의 농간에 그를 얼마나 폄하했었는가?
우리는 지금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 국가에 살고 있는데 돌아가는 모양새들은 아직도 군주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더더욱 지난 정권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진실도 정의도 국민의 뜻도 아닌, 정권과 당의 이익만 대변할 뿐 정작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모습들이 너무도 뻔뻔하게 보이는데도 여전히 그들은 거만한 모습들로 연일 언론에 노출된다. 어느새 버젓이 잘못이 드러남에도 이제는 그래서 어쩌라고 식으로 오히려 들이대는 적반하장의 모습에 통탄함을 금할 길이 없다. 정권이 결정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이런 권력투쟁에 애꿎은 국민은 정쟁에 휘말려 한편에선 패가 나뉘고, 또 한편에선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 그런 일을 생각도 못한 사람들이 늘어간다.
광해 옆에서 그의 모든 일을 지켜봤던 도승지 허균은 홍길동전을 통해서 혼탁한 정쟁 속에서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그렸을까? 그도 정쟁 속에 결국 희생되고 말았으나 그의 아바타 길동이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여전히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마음과 새로운 세상을 갈망한 이들의 맘을 꿈꾸게 한다. 모든 것을 역사에 맞기지 말고 역사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어리석은 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어린 백성을 깨우고자 했던 많은 이들이 있기에 지금도 여전히 이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조용히 깨워가야 한다. 권력에 눈먼 이들이 보지 못하는 역사를 보게 해야 하고, 먹고살기 힘들어 배울 여력이 없어 못 보는 이들의 눈도, 세뇌되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전쟁세대가 알지 못하는 진실도, 역사보다 현실에 얽매인 전후세대들에게도 많은 것도 아닌 근현대사의 숨겨진 역사만이라도 …. 그래서 이 시대 홍길동은 한 사람이 아니라 깨어있는 민중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