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글쓰기 학교

김기현목사님의 <내 안의 야곱 DNA>를 읽고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서평03

야곱의 글쓰기 학교
김기현목사님의 <내 안의 야곱 DNA>를 읽고

_평도(平道)라종렬


“중원씨와 같이 있었던 1년, 그게 내 삶의 전부야”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인 <쉬리>에서 이방희가 남한의 비밀요원인 유중원에게 핸드폰으로 남긴 음성 메시지 내용이다. 평생을 살인병기로 길러져 남쪽으로 파송된 후에 신분을 속이고 비밀요원과 접촉해 정보를 입수하다가 결국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그녀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죽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중에 유일하게 한 인간으로 살았던 시간은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그 1년이었음을 고백하는 메시지다. 스스로 험악한 세월을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야곱의 인생에 있어서도 비열하고 야비하며 온갖 사기와 야망 가득한 인간이 아닌 제대로 된 인생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은 라헬을 얻기 위해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지낸 7년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책이 좋아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글을 쓰게 되었으며, 글을 쓰다보니 책을 쓰게 되었다는 저자를 <글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저자의 책과 강의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도전 뿐 아니라 글쓰기의 틀을 배우고, 책읽기와 글쓰기를 병행하여 읽고 쓰는 일이 목회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글쓰는 목회가 하나님의 창조(Author) 사역에 동역 작가(author)로 동참하는 일이라는 자부심도 갖게해 주셨다.


저자는 야곱의 이야기가 자신과 우리의 이야기요, 그의 자화상은 결국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떠나 죄의 종노릇하며, 엉겅퀴를 내는 땅을 경작하며 깨어진 관계 속에서 험난한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생이라고 소개한다.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사람, 구약의 전형적인 인간상을 가진 사람, 속물적 이중성을 갖고, 속임과 야망으로 뭉친 위선적인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오늘 현대인들의 자화상과 같기에 결국 야곱은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그런 야곱의 인생을 읽는 키워드를 ‘야망’, ‘수단’, ‘은혜’로 풀어낸다. 열심과 욕심, 열망과 욕망이 뒤섞인 야망으로 가득찬 야곱은 결국 자신의 야망 때문에 갈등을 만들어 냈고, 부모의 곁을 떠나야 했으며, 다시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자신보다 더 야비한 외삼촌 라반을 통해 혹독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아닌 야망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얻으려고 했기에 그는 결국 하나님의 때를 너무도 멀리 돌아 더 오래 기다리며 더 험악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 야곱의 가치없는 인생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래서 야곱은 마침내 축복을 갈망하던 자에서 축복을 베푸는 자로, 축복에 목매던 자가 모든 사람을 축복해 주는 자로, 주위를 소란케 했던 자가 평화롭게 하는 자로, 자기 자신과 불화를 빚는 이중성과 마침내 화해하는 자로 변화 내지 성숙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야곱의 야망과 수단으로 말미암아 굴곡진 인생 여정을 시간 순서로 그리고 대조되는 라임과 역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방관자와 의인의 익숙한 시각이 아닌 한 발짝 물러서서 전체를 보기도 하고,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야곱의 험난한 일생에 세밀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운명과 의지, 시간과 방향, 축복과 기복, 벧엘, 일상과 신앙, 심판과 훈련, 지혜와 술수, 원수의 얼굴과 하나님의 얼굴, 세상 안과 밖,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대조, 비교, 연결, 재고해 보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삶이 점철되었다는 것을 고백하게 하고, 그런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고 있다.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사랑 하든, 사랑 받든 그 사랑이 한 사람의 험난한 인생 여정에서 더 성숙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회복되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또 다른 이를 살리며 살려내게 한다. 험악한 세월을 복기하며 야곱은 그렇게 자신이 사랑하거나 사랑 받거나 용서하거나 용서받은 순간들의 자신을 살리고 온전케 했음을 깨달았으리라. 그래서 야곱의 인생에 있어 많은 변곡점이 있었지만 라헬을 사랑한 그 시간, 얍복강에서 밤새 씨름하다 환도뼈를 맞고서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던 시간, 에서의 용서를 경험한 시간, 죽었던 아들 요셉을 다시 만난 그 시간들이 자신의 삶을 복기하고 전환하며 성숙해지는 사랑과 은혜로 첨삭지도를 받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비록 우리가 야곱을 닮았으나 계속 야곱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결국 묵상하고 닮아가고 만나야 할 분은, 야망 가득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며 축복을 갈구한 야곱이 아니라 그런 야곱을 택하고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벧엘과 브니엘에서 만나야 한다. 그래서 지렁이 같은 야곱같은 사람도 사랑해주신 하나님도 만나야 하고, 그런 야곱같은 존재로 버림받아 마침내 우리를 대속하사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신 예수님도 만나야 하고,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길을 예비하고 인도하고 마침내 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바로왕의 땅으로 가게하고 지나간 날을 돌이켜 험난한 인생이 결국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하는 그 성령님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야곱 DNA가 아니라 하나님의 DNA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글쓰기 학교같은 첨삭 지도를 받는다면 우리 삶의 모든 날들은 지금보다 더 성숙한 가치로 점철되지 않을까? 그런 세밀한 첨삭 지도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받고 누리는 그 시간들이 결국 우리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면 그런 삶이 우리의 모든 날을 채워가고 있음을 믿는다. 주님과 함께 한 그 날들이 우리 삶의 전부이며, 모든 날임을 온전히 고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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