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生生한 글쓰기

박미라님의 <치유하는 글쓰기>를 읽고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서평02

생생生生한 글쓰기
박미라님의 <치유하는 글쓰기>를 읽고

평도(平道)라종렬


체할 때 손을 따고 혈을 트고 숨구멍을 열어주면 토설하거나 트림을 하거나 아래로 배출되어 치료가 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토설吐說).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지 못해 병이 났다가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 가서 마음껏 외쳤더니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도 있다(발설發說). 그런데 그렇게 열어 주고 들어 주는 이가 없어서 토해내듯 글로 썼더니 응어리지고 맺힌 내면의 치유가 되더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심지어 단 한 문장이라도 서툰 글솜씨로도, 아무렇게나 끄적인 낙서로도 치유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쓰면 그 자체만으로 영향이 있다고까지 한다.

<치유하는 글쓰기>


평범하게 글을 써오다가 자신이 경험한 인생 여정에서 어느새 ‘치유하는 글쓰기’ 안내자가 되어 본인의 글도 쓰고 동시에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저자는 글쓰기의 치유력에 대한 노하우를 이 책에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다. 토설吐說한 그의 글에서 발설發說한 내용을 통해 독자와 허다한 이들이 또다른 치유를 경험하고 역시나 글쓰기의 치유를 위한 전도자들이 되었으리라.


글쓰기를 통해 치유를 경험한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과 ‘치유하는 글쓰기’ 모임을 진행 하면서 만난 이들의 사례를 통해 더 많은 증거들을 담아 치유의 능력을 증언하며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왜 글쓰기가 치유가 되는지 그 힘과,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총 3과에 걸쳐 다루고 있다.


1과에서는 글쓰기를 통한 치유의 힘에 대해 다룬다. 이 땅에 아무 이유없이 태어난 것이 없듯 모든 글에도 그런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담겨진 이야기들을 발설發說하고 자신이 정말 하고픈 말을 쓰면서, 그리고 그 글을 직면하면서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쓴 글들을 함께 나누었을 때 독자에게도 그리고 그것을 공감해주고 피드백 특히 칭찬해 주는 이들의 말을 통해서 다시 글쓴이에게 2차적인 치유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런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부정적인 사례들도 일부 소개하고 있다.


2과에서는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 온 몸身으로 쓰라고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단순히 정리하고 토설하는 수준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그렇게 자신의 생각과 말을 들어줄 대상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제시한다. 제일먼저 죽도록 미운 누군가로부터 시작해서 자기 자신에게도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과 사건들을 향해서도 그렇게 정리하고 말하듯 또 따지듯 쓰되, 일기나 편지처럼 써보라는 것이다. 또 자신과 인터뷰하는 것 같은 형식도 소개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에 보낸 사인(신의 뜻이나 교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가치들을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3과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글쓰기의 방법에 대해 심장心臟으로 쓰라고 말한다. 머리로 말고 손으로 쓰되 그렇게 손이 가는 대로 쓰라 한다. 어떤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글이기에 굳이 문법이나 형식 그리고 여타 고려해야 할 문제들에 개의치 말라는 얘기다. 그리고 가슴에 있는 그대로 쓰라고도 한다.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말하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는 것이다.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글을 쓰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명상에 대한 몇가지 팁도 제공한다. 그렇게 매순간을 끄적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저자의 글을 통해 결국 글쓰기가 주는 치유의 힘은 우선 통(通)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혼자서 쓰는 일기같은 글쓰기만으로도 치유의 효과가 있지만 결국 온전한 치유는 함께하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공감(共感)하는 것을 통해 공생(共생)하고, 또 공존(共存)을 통해 공사(共事, 共思), 공영(共榮)해 갈 수 있게 되리라. 결국 글쓰기는 쓰는 사람도 그리고 독자도 함께 치유되고, 함께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적자생존도 맞고 기자(記者)자도, 필자(筆者)도, 서자(書者)도 그리고 저자(著者)도 생존하는게 맞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가 있을까? 그러니 글쓰기는 치유되고 살기 위한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렇게 살아난 이들 곧 치유를 경험한 이들은 또 다른 이들을 살리고 세워가는 것이 순리요 사명이 아닐까?. 그렇게 생생生生한 글쓰기 곧 자신을 살리고, 또 다른 이들을 살려내는 글쓰기에 동행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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