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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02. 2021

누가복음 01:26-56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누가복음 01:26-56

누가복음 01:26-56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한 여인에게 은혜와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은혜만으로도 벅찬데 메시아를 잉태케 된다는 사실은 정혼한 처녀로서도 힘들고 신앙적으로도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여인의 주인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이임에도 불구하고 인격적으로, 자상하게 여인의 충격과 의문에 답해 주십니다. 그리고 여인은 그 놀라운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 26-28절 우리는 주님이 함께하시는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천사를 통해라 마리아에게 선포된 사실은 먼저 은혜를 받고 입은 자이며, 주께서 함께하시는 자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잉태하기도 전에 그는 지음 받았고, 택함 받았으며 그의 나라의 선민으로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실존이 불임에서 잉태로 이어졌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명을 얻은 자로 은혜로 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무상에서 유상으로, 약속의 외인에서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새 이스라엘로 보배로운 소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도 주님을 영접하게 되면 생명 품은 우리도 그렇게 세상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구원하신 주님의 뜻인줄 믿습니다. 

한편 주께서 함께하심이 만사형통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욕망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는 의미로서의 만사 형통인데 인간의 입장에서는 때로 이 일로 으로 말미암아 입을 은혜는 파혼과 목숨을 잃을 각오를 수반해야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감내하면서도, 그리고 감내한 후에도 여전히 은혜 가운데 있음을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라야 제대로 은혜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주님이 함께 하심을 입은 우리의 삶이 만사형통이 아니라 때로 모든 세상의 것을 내려놓고 포기해야하는 결단과 위험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은혜, 고난 없는 은혜, 자기부인 없는 은혜는 껍데기 복음일 뿐입니다. 


# 29-33절 예수님은 큰 왕의 아들이십니다. 

잉태하게 될 아이의 이름은 예수(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 자)이며,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실 것이며, 그래서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름 부음을 받으실 만왕의 왕이시란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으며,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실 분이 오신 소식이 곧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왕되신 구원자 예수를 영접하고 즐거이 순종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나라의 보배로운 소유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고, 함께 제사장 나라로 살아가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짓된 세상의 왕이 아닌 참된 주인이신 우리 주님의 통치와 다스림과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이시며, 주 되시는 왕이십니다. 그래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는 이 사실을 믿으며 영접하고 그래서 즐거이 주의 말씀을 순종하며 오직 주만 섬기며 주를 따르며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것이 거룩한 주님께서 우리를 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하신 첫번째 목적이고, 이어서 제사장 나라로 살아가며 복이 되신 주님의 자녀로 우리도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것 또한 우리를 구원하신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인 삼고 일희일비하고 있는 거짓된 것들을 버리고 큰 왕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님을 따라 무궁한 그 나라에 온전히 거하며 복있는 자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 34-38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습니다. 

처녀가 잉태한다는 수용하기 힘든 사실을 되묻자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자상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덮으면 가능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미 친족 엘리사벳이 불임에 늙었음에도 아들을 베어 6개월이나 되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슴을, 능치 못함이 없음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이에 마리아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불임에 잉태를 가능케 하시고, 능력으로 다스리시는 우리 주님이 계시니 지금 암울한 현실에 여전한 소망이 우리 주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우리의 한계가 벼랑끝에 다다를 수록 빛은 더욱 빛나고 소망되신 주님은 더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니 약속하신 그 말씀의 능력을 믿으며 날마다 그 말씀의 통치에 순종하며 나아가기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 39-45절 성령의 충만은 곧 말씀의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하게 되면 주님을 알게 되고, 영적 분별력을 갖게 되어 경배와 사랑과 축복의 대상을 알게 됩니다. 마리아가 두려움이 변하여 찬양케 됨은 오직 주의 도우심과 긍휼하심과 기억하심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천사를 통해 성령이 임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음을 전해 듣고, 특별히 엘리사벳이 나이 많아 잉태하였다는 사실을 듣고서, 말씀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질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빨리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본문에 그 이유가 나와 있지 않지만 성령이 임하여 잉태한 충격적인 일들을 이해할 만한 이가 이미 동일한 경험을 가진 엘리사벳이라는 사실을 확신한 것으로 보여진다)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의심이 없는 것은 아니며, 확신한 일에 거하기 위해서 때로 믿음대로 된 줄 믿으며 확인하고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 이상의 분명한 증거와 확신을 경험케 합니다. 주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기 위한 의구심과 의심은 오히려 믿는 바를 더욱 확실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체 하는 일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고 질문하면서 정말 그런가 하며 나아가는 것은 믿음의 성숙을 가져오게 합니다. 겸손히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며 주께 묻기를 두려워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복중의 아이가 ‘주’되시며, ‘복’있는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줄 믿으며’, 축복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였으며, 성령으로 충만한 이의 찬양을 받으며, 성령에 이끌리고, 성령으로 사역하며 성령충만하며 또다른 보혜사를 보내신 예수님을 성령충만한 엘리사벳은 분별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알게하며 영접하고 믿어 순종케 하는 일입니다. 결국 이렇게 주님을 알고 믿으며 사는 길은 오직 성령 충만의 길 밖에 없습니다. 다른 감정적이며 비이성적이며 비인격적인 모습으로 성령의 충만을 오해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주를 더 온전히 알고 믿고 행하는 일에 하나가 되기 위하여 더욱 성령의 충만함을 구합니다. 


# 46-56절 주님은 우리의 찬양과 기쁨의 근원이십니다. 

주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대로 마리아를 잉태케하고, 엘리사벳의 태의 문을 여신 하나님을 알고서 마리아는 하나님 구주를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두려워하는 마리아에게 함께하심과 감싸주심의 약속을 따라 인도하신 주님은 이제 마리아가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을 통해서 약속대로 성취하시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능하시고 거룩하시며, 긍휼하심과 능하신 주를 신뢰하면서 자신을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신 주를 찬양합니다. 

주 앞에 누가 힘, 거룩, 긍휼을 자랑하리요. 교만하고 권세있는 자를 흩으시고 내리치시며 부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시는 분이십니다. 반면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는 역설적인 분이십니다. 비천하고 주린 우리 영혼을 기억하고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셨으니 마땅히 주를 찬양함이 합당한 반응일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도우시고 긍휼이 여기시고 기억하시는 주님이 계시니 이 한 해도 성령충만하여 주님을 알아가고 영적 분별력을 갖고 주를 찬양하며, 부지런히 소외된 이들을 문안하며 축복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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