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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06. 2021

누가복음 02:39-52 때와 사명을 아신 예수님

누가복음 02:39-52

누가복음 02:39-52 때와 사명을 아신 예수님


예수님은 어린 시절에도 인자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아셨고 부모에게도 한결같이 순종하며 지혜롭게 자라가셨습니다. 

# 41-42절 예수님은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십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이유는 율법에 명한대로 할례와 정결예식을 치루기 위함이었습니다(막2:21-24). 이 '모든 일'을 마치고 귀향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참된 위로자가 되시기 위해서 율법을 따라 온전한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 마침내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이루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먼저 가신 그 길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주님이 먼저 가신 그 순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율법 곧 말씀에 대한 이해와 깊은 묵상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그냥 읽거나 쓰고 아는 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그 의미를 깨닫고, 말씀이 그런가 하고 상고하면서 역사와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연결되고 실현되고 적용될 것인지를 부지런히 묵상해 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그냥 갖고 있다고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어야 하고 먹어야 하고 몸으로 살아 증거되고 증명되어야 하는 책이며 동시에 우리를 살리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우리를 살리는 일이고 세우는 일이며 언행심사가 일치되어 온전케 된다는 것입니다. 

# 47, 52절 예수님은 지혜가 충만하시고, 자라면서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 가시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히10:8). 주님도 순종을 배우며 지혜가 자라가셨다면 오늘 우리도 마땅히 기도하며 이 배움의 길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영광의 길을 우리도 가야 한다는 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삶의 방향과 목적과 내용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가야 하는 것과 그 기간이 짧지 않기에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오늘 공동체와 여러 분야에서의 갈등 요인 중에 하나는 배움을 멈춘 무지에서 비롯된 경우들이 많습니다. 지식의 폭이 크지 않기에 지혜가 부족하고, 앎의 깊이가 얕아서 다른 이들을 품지 못하고, 이해의 정도가 작아서 폭넓게 보지 못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부족하기에 풍성한 성숙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보고 듣고 배우고 읽고 묵상하고 경험하고 채워가는 일에 열심을 낼 뿐 아니라 혼자가 아닌 함께 읽고 배우고 나누며 위로하며 격려하며 나아갈 때 개인과 공동체의 성숙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 49-51절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아셨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아셨고, 주의 말씀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기다려야 할 때와 기도해야 할 때, 들어야 할 때와 물어야 할 때, 순종해야 할 때, 머물러야 할 때와 가야 할 때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때에 맞게 처신하기 위해 하나님과 부모님과의 관계에도 충실하셨습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본분과 사명의 자리에 바로 서 있습니까?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온전하게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고 아는 것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고, 동시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전하는 도(道) 곧 진리가 바로 복음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 삶의 내용과 방향을 주님을 통해서 바르게 깨닫고 그 길로 행하는 그리스도인은 득도인이면서 전도인이며 이 길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해야 할 때이며 삶의 방향과 목적이 무엇인지 주 안에서 알고 또 구하며 매일의 삶이 한걸음씩 주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나아갈 수 있길 원합니다.  

# 43-48 예수님의 부모는 주님의 부재를 3일이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모든 예식과 절기는 하나님과의 동행이 궁극적 목적임을 잊은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있을 거라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안일한 생각에 주님의 부재를 깨닫지 못합니다. 지혜가 충만하셔서 있어야 할 곳을 아신 주님과 달리 부모님은 무지했습니다. 문제는 주님의 부재가 아니라 우리의 부재가 아닐까요? 주님의 부재를 불평하기 전에 주님과의 동행에 무지하고 무시하고 무심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 거둠의 기도
말씀에 순종하는 주의 길을 따라 

날마다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며 

지혜롭고 사랑 받는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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