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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14. 2021

누가복음 05:27-39 새 백성, 새 삶, 새 시대를

누가복음 05:27-39 

누가복음 05:27-39 새 백성, 새 삶, 새 시대를 여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세리 레위를 부르시고 많은 죄인과 병자들에게 새 백성의 삶을 열어 주시고, 금식할 때와 잔치를 누릴 때가 언제인지 알려 주시며, 비유를 통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 27-32절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세관에 있는 레위를 부르시자 그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어 레위가 자신의 집에 베푼 큰 잔치에 세리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면서 예수님께 묻자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제자들은 새 나라 곧 하나님나라의 새 백성을 상징합니다. 오래도록 혈연 통해 잘못된 선민 사상에 있어서 유대인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던 이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참 이스라엘 곧 하나님나라의 새 백성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자칭 의인이라 하고 유대인이면 모두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아니라 결코 거룩한 백성의 반열에 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세리와 죄인들과 저주받은 병든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을 하나님의 새 백성으로 세우고 계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은 모두 저주받아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사랑과 자비와 환대와 용서로 새 백성을 세우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초청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레위의 반응이 예수님을 비방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대조됩니다. 상종할 수 없는 이들 그래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이들로 낙인 찍힌 세리들, 저주받은 이들로 정죄된 죄인들, 부정한 사람들이기에 접촉하지 말아야 할 이들로 소외된 병자들, 이렇게 유대인들에 의해 혐오 배제 배척된 이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비방합니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생각하는 하나님나라와 예수님께서 환대와 사랑과 용서로 세워가시는 나라와는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배제되고 정제된 이들이 예수님의 초청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르는 모습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스스로 설 수 없는 소외되고 낙인되고 배제되고 죄인된 우리를 불러 돌이켜 회개하고 거룩한 길로, 거룩한 백성으로, 거룩한 나라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지금 이 부름에 응답한 우리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도 큰 잔치로 보답한 것입니다. 마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토색한 것을 갑절로 갚고 나누었던 것처럼 세리였던 레위도 모든 것을 버리고 따름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받은 회개가 무엇인지, 제자의 삶 곧 새 백성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러 오시지 않았다면 약속의 외인이었던 우리는 결코 주와 함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거룩한 백성이 된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이전의 삶 곧 낙인과 배제와 혐오와 정죄와 배척의 삶에서 돌이켜 우리가 받은 용서와 화해와 자비와 환대를 이웃에게 나누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나를 사랑하사 주백성 삼으셨듯이 우리가 품은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에게도 이 사랑과 자비의 역사가 흘러가고 역사할 수 있길 구합니다.  

 

# 33-35절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날마다 풍성한 잔치를 누리게 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번에는 요한의 제자와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신다(혹은 다른 공관복음에서는 먹기를 탐한다고)고 따집니다. 이에 예수님은 혼인 잔치를 비유하시면서 지금은 신랑이 함께 있는 잔치이기에 먹고 마시지만 신랑을 빼앗길 그 날에는 금식해야 한다고 구분해서 말씀하십니다. 

흉악의 결박을 푸는 금식, 그래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행하는 금식이 아니라 잘못된 욕망을 끊고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부인하고 온전히 의뢰하는 금식이 주님이 원하시는 금식의 목적입니다. 곧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간구하고, 그 통치에 자신을 쳐 복종시키기 위한 금식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래의 금식의 취지와 정신이 오랜 시간동안 전통으로 굳혀지면서 형식적이며 과시적인 의식으로 왜곡됩니다. 심지어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게 하려는 식으로까지 와전됩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을 위한 금식의 목적을 상실하다 보니 정작 금식의 목적을 성취하고 계신 예수님께서 임마누엘하셔서 불임에서 잉태하고, 고아가 부모를 만나고, 과부가 신랑을 맞이하고, 나그네가 본향을 얻고, 이방인이 거룩한 백성되게 하는 놀라운 잔치가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축복을 깨닫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용서하시고 사랑과 자비로 참된 해방과 평화의 나라를 열고 계심에도 거기에 동참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 은혜를 누리러 가는 길을 막고 그 길에 있는 이들을 비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지몽매함이 간교함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잔치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빼앗고 팔아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게까지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날에는 다시 금식해야 한다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이 다시금 이루어 지길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임마누엘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지금 우리는 날마다 우리 주님과 함께한 잔치에 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으로 더불어 먹고 마시며 풍성한 용서와 사랑과 은혜로 자유와 평화의 삶을 살고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기쁨과 주님이 주신 평안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앗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이 잔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도 어리석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전철을 밟게 됩니다. 여전히 우리에겐 많은 어려움도 위험도 염려도 그래서 고난이 산재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정에서 목자되시는 우리 주님이 함께하시니 부족함 없이 이 잔치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줄 믿고 오늘도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 36-39절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여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또 지금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관점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새 옷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의 비유를 통해서 새 옷을 입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하고, 묵은 것이 아니라 새 것을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나라 곧 메시아에 대한 관점이 예수님에 대한 반응과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갈리게 합니다. 힘과 폭력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 사랑으로 세워지는 나라, 혐오와 배제와 정죄가 아니라 자비와 용서와 사랑으로 세워지는 나라, 높은 곳에 있는 세상의 권력자이 아니라 낮고 천한 곳으로 오신 예수님의 희생과 섬김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주님이 세우시는 새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 곧 구시대적이며 구태 의연한 삶의 양식과 문화와 사상과 신앙으로는 새 나라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 새 옷,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새 옷, 새 포도주, 새 시대, 새 삶, 새 백성, 새 나라, 새 예루살렘, 새 피조물, 새 사람, 새 찬송 등은 모두 최근에 새로 만든 신제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아니라 관점의 차이입니다.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옛 사람에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전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과 세계관에서의 전환 곧 죄인된 삶에서 의인이 되고, 부정한 이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는 삶 곧 구원받은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 상관없이 살아가는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모두다 새 것의 삶의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그 뜻을 따라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것이 새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새 시대 곧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에서와 같이 이땅에서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그 통치아래 곧 그 나라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새 시대 새 백성에게 맞는 새 옷이며, 먹고 마셔야 할 새 포도주이며, 불러야 할 삶의 찬송과 예배이며,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새 것으로 먹이시고, 새 날을 주시며, 새 삶을 열어가도록 새 피조물되게하고 새 백성되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새 노래, 새 삶의 열매들이 매일의 삶에 알차게 영글어가고 누려지길 소망하니다. 그 삶을 온전히 이뤄가기 위해서 더 주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그 말씀의 통치에 빚어지고, 인도받기를 즐거이 감당해 나아가는 새 백성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것이 이 삶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신 우리 주님의 은혜에 합당한 삶의 반응인 줄 믿습니다. 


# 거둠의 기도

죄인된 우리를 불러

거룩한 나라 백성으로 새롭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시대와 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시며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통치에

온전히 순종하며 합당한 열매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열심인

거룩한 백성의 길로

즐거이 순종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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