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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21. 2021

누가복음 07:36-50 사랑과 용서의 주 예수님

누가복음 07:36-50  

누가복음 07:36-50 사랑과 용서의 주 예수님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부정한 죄인인 여인이 하는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에 실망하고 예수님을 폄하합니다. 예수님은 시몬과 여인의 차이가 무엇인지 용서의 사랑을 받은 이후의 반응과 변화를 통해 보여주십니다. 주님을 바로 알아야 죄용서에 대한 은혜를 바로 알고 그에 합당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받은 죄인이며 그런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우리 주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 36-38절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이십니다. 

한 바리새인의 청에 기꺼이 함께 응해 주신 예수님에게 동네에 죄인이라 낙인찍힌 한 여인이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며 향유를 붓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여정 내내 따라다니며 사사건건 시비와 부정적인 시선과 시기 질투로 정죄하며 비난하고 모의하던 무리중에 한 부류가 바리새인입니다. 그런 바리새인 시몬의 요청에 응하셨습니다. 모두가 미워하나 말하지 못하는 바리새인이며, 이미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잘못된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위선적인 삶에 대해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 기꺼이 응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모두가 아는 부정한 죄인인 여인의 행동에 대하여 오히려 그녀를 칭찬하고 급기야 대제사장처럼 죄사함과 구원에 대해 선포하십니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7:34)라고 비난하던 사람의 집에 들어가셔서 외형적인 모습만으로 오판한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유대인들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인지 가르침을 주시는 사건입니다. 

죄인의 요청에 응해 주시고 함께하시며, 부정한 여인의 행동에 감동하시고, 그들을 가르치시고 온전케하시고 세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 예수님을 부르고 예수님께 묻고 예수님께 하는 나의 모습들은 과연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숨길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주님 앞에서 애써 가리며 위선적인 접근을 하다 정작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없는지, 나의 연약함과 죄를 깨닫고 용서받은 은혜에 감격하며 나의 가장 소중한 옥합을 기꺼이 깨뜨려 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단순한 호기심과 모든 것을 통채로 드리는 모습 중에 전자가 가깝다면 우리는 아직 온전히 주님을 알고 만나고 믿는다 할 수 없습니다. 전심으로, 전력하고, 나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주께 드리고 주를 위해서 살고 주께 의뢰하는 것이라야만 제대로 알고 믿는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는 데서, 양다리를 걸치는 신앙에서 계산하고 의심하고 미적거리는 신앙에서 돌이켜 한 마음으로, 온전함으로, 믿고 통채로 의뢰하며 주의 인도와 통치를 받는 믿음의 사람이고 싶습니다. 


# 39-47절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한 합당한 반응은 사랑과 용서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궁금증에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지만 정작 자신이 알고 있던 선입견으로 인해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집으로 초대할 때까지만 해도 궁금증에 모셨지만 정작 동네에서 모두가 다 죄인으로 알고 있는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지는데도 불구하고 정결법에 구애받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에 저으기 실망하면서 ‘선지자’(39절)라면 알터인데 하다가 급기야 좋은 이야기 하는 ‘선생’(40절)정도로 폄하합니다. 시몬이 이렇게 예수님을 바로 알기 못했기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실존도 몰랐으며 그로 인해 그 죄의 심각성도, 죄의 용서에 대한 은혜도 당연히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죄에 대해서도 모르고 우리가 죄의 진노아래 놓인 실존적 존재라는 심각성도 모르고, 사망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그저 우상처럼 우리가 필요한 것을 주는 도움이나 협력자 내지는 자동판매기같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말씀 앞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뵈옵고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망가운데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볼 수 없으며 복음도 구원도 신앙도 믿음도 모두 껍데기에 불과한 신앙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오늘도 주님앞에 나아가는 이유,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 그리고 살아가는 삶의 이유들을 다시한번 점검합니다. 

*

향유를 부은 여인은 주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의 심각한 죄의 사슬에서 놓임 받은 것이 무엇인지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죄용서에 대한 은혜를 경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동네에서 죄인으로 소문난 부정한 여인이었기에 그는 소외된 자였습니다. 그 가운데 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하는 존재로서 자신이 죄 아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을 향하여 감사의 표현으로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주님은 공개적으로 향유부은 여인의 죄가 사해졌음을 공표하면서 여인이 다시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마치 구약의 제사장들이 정결예식 통과심의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가 소외된 자(고아 과부 나그네 이방인, 그리고 가난한 자와 여타 타인의 도움없이 살아갈 수 없는 죄아래 놓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인간)였음을 인식하는 것은 주님을 만난 후에야 깨닫게 되고, 그제서야 주님의 구원하심이, 대속하심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은혜에 많은 감사(사랑)를 주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 48-50절 예수님은 죄사함과 구원과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시는 주님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고, 그런 주님을 바로 아는 것과 우리들이 죄아래 놓인 인간의 실존을 깨닫는 것이 대속의 은혜를 바로 알고 그에 합당한 반응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분이심과 그분의 우리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온전히 고백하는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날마다 주님의 인도와 통치를 따라 주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평안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사해 주신 주님,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 나의 믿음의 주이신 주님, 나의 구원이신 주님, 나에게 평안을 주신 주님께 오늘도 감사로, 동행으로, 용서로, 믿음으로, 자유함으로, 두려움 없이 살아가길 빕니다. 


# 거둠의 기도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이 땅에 오신 주님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며

죄인된 우리와 함께하사

친히 우리를 건져 주시니 감사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떨치고

두마음과 양다리 걸친 생각들을 버리고

받은 은혜와 사랑에

모든 주권을 이양하고

나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부터

모든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대로

주께 받은 사랑대로

그렇게 받은 만큼 더 사랑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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