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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25. 2021

누가복음 08:40-56 치료와 회복의 주이신 예수님

누가복음 08:40-56  

누가복음 08:40-56 치료와 회복의 주이신 예수님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들은 누구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며 환영한 많은 이들이 있지만 구원을 경험한 이는 죽어가던 두 여인이었습니다. 거라사인의 땅에서 다시 돌아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던 많은 이들 가운데 죽어가고 있는 열두 살된 외동딸을 둔 야이로와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 믿음으로 치료와 생명을 얻는 구원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샌드위치 구조로 된 오늘 말씀은 숫자적 공통점과 치유 그리고 믿음에 대한 언급과 회복에 대한 점들에 더해 기적 자체만 바라는 믿음보다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병행되는 믿음이라야 건강한 믿음이라는 사실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 전체,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지실 수 있습니다. 

12년을 하혈로 고생하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예수님과 접촉을 시도해서 즉시 하혈을 멈추는 치유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무리 가운데서도 민감하게 능력이 빠져 나간 것을 깨닫고 여인을 찾아 공개적으로 치유되었음을 선언하시고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음을 말씀하시고 평안히 가라 합니다. 

12살부터 혹은 12년 동안의 하혈은 그녀를 삶의 모든 관계를 단절시켜 마을에서 살지 못하고 가족과도 떨어져 소외된 외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고통에 있었습니다. 물론 치료를 위해 겪었을 수치와 비용 소모도 고스란히 겪어야 했습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외면과 절망과 비참함 이상의 것들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복음에 대한 소식은 절망의 끝에서 내려진 생명수같은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군중들앞에 나아 왔으며, 부정에 대한 전가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지신 것입니다. 

그런 여인을 즉시 치료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증명하십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구원을 경험하며 온전한 평안을 맛보게 됩니다. 12년 동안 어떤 의사도 그 누구도 줄 수 없었던 치유와 평안입니다. 오직 주님께만 얻을 수 있는 그 평안 곧 하나님나라를 경험케 된 것입니다.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의 민감함이 우리에게 더 소망이 됩니다. 수많은 군중들에 떠밀려 어떤 상황이 전개 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혼돈과 더불어 그 많은 무리들의 사정들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세밀하게 치료해 가시는 예수님의 자비하심이 여인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치유하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고 주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능력을 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와 같이 우리의 전인적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

회당장 야이로는 죽어가던 12살 딸이 주님이 오시는 과정에서 죽자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주님이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기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시며 그 집에 이르러 말씀으로 명하시고 잠자는 자가 일어나는 것처럼 소녀를 깨워 일으킵니다. 주님은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했을 때에 무리를 비롯한 제자들까지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이 아이를 깨어 일으켜 먹이셨습니다. 이어서 놀라는 부모에게 경고하는 것은 우선 이러한 기적을 믿음 없이 바라보면 변질 내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알리는 일을 삼가하라 하십니다. 서두에서 말한것처럼 이는 기적만 바라는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왜곡된 신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과 능력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으시는 주님의 역사 앞에서 더욱 우리가 겸손히 주님을 알아가야 할 것이며, 주께서 행하신 기적을 바라 볼 때 기적 그 자체보다 그것을 통해 말씀하시는 뜻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매일매일 기적같은 날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그런 은혜를 제대로 고백하지 않고 있고, 우리의 욕망을 따라 주님이 기적을 일으켜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실망하고 좌절하면서 주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한계에 봉착하여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고 맙니다. 

삶의 끝자리, 우리 능력의 한계와 불가항력적인 현실과 사방이 우겨쌈을 당한 상황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기도해야 할 방향은 뚫린 하늘에 계신 우리 주님입니다. 그런 주님을 바라보고 의뢰하며 나아갈 때 길이 열리고, 한계를 넘고, 불가능한 현실을 뛰어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롭고 산 길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치료와 회복의 주이신 우리 주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 줄 믿습니다

*

거라사 광인이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면 12년 동안 하혈한 여인이나, 12살 되어 죽어가는 딸도 마찬가지 희망이 없는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실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우리가 살 수 있는 소망의 길, 그리고 변함없이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주님이 이 모든 일을 아시고,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이가 바로 주님의 천국 가족입니다. 

“예수님이 버림받고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 곁에 선뜻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길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길의 사람은 제도와 관습, 사람들의 기대 속에 갇힐 수 없습니다. 그분은 늘 벗어납니다. 그러기에 불온해 보입니다. 잘 닦인 길을 걷는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 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길이 된 사람의 운명은 평탄할 수 없습니다.”(김기석님의 <걷기 위한 길, 걸어야 할 길> 중에서)


# 거둠의 기도

주님 많이 아픕니다. 

세상도 교회도 모두모두

전염병의 창궐 앞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여정에도 주님이 함께하시며

주님도 함께 아파하시며

선하신 뜻과 계획이 있는 줄 믿습니다. 

봐야 할 것, 들어야 할 것,

그리고 깨닫고 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고 듣고 깨닫고 살기 원합니다. 

12년 세월의 1/10밖에 되지 않는 12개월이지만

불가항력적 현실 속에서

더욱 주님을 바라보며

주께 의뢰하고

주어진 현실을 감당해 갈

힘과 능력도 구합니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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