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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Feb 12. 2021

누가복음 13:10-21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회복하시는

누가복음 13:10-21 

누가복음 13:10-21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회복하시는 예수님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통치는 겨자씨와 누룩처럼 미미하지만 자라서 온 우주와 모든 백성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나라는 소망없는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놀라운 열매를 맺는 능력을 갖게 하는 나라입니다. 


# 10-17절 예수님은 날에 갇히지 않고 삶을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18년동안 사탄에 매여 꼬부라진 여인을 치료하였으나 회당장은 이를 보고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라고 분내는데, 예수님은 외식하는 이들을 향해 안식일이라도 사탄에 매인자를 해방 시키는 일이 합당한 일임을 선포하자 반대하는 이들은 부끄러워하나 무리는 그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합니다. 

안식일의 제정은 창조의 목적이기도 하면서(창2:2-3)  출애굽 곧 해방을 기억하고 기념하는(신 5:12-15) 근거로 세워집니다. 결국 안식일은 하나님의 새창조와 새백성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그 목적이 성취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안식일을 성취하신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주일을 예배하며 매일의 삶이 안식 가운데 거하는 은혜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일을 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18년동안(앞에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18명의 숫자와도 연결됩니다. 이 여인이 아픈 이유가 다른 이들보다 죄가 더 많기 때문이 아님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탄에 매인 여인을 치료하여 구원하셨는데 회당장은 이를 빌미로 사람들을 향하여 안식일에는 이런 일을 하지 말라 합니다. 그는 안식의 참된 의미를 망각한채 장로의 유전과 문자에 얽매인 신앙으로 오히려 안식을 성취하러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의 안식에 들어가지도 못할 뿐더러 들어가려는 자들도 막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오늘 주일을 예배하며 은혜를 되새기는 가운데 매일의 삶도 어디서든 안식가운데 있는 자녀임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일을 소홀히 여기는 빌미로 오용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일주일 가운데 주일 하루를 타협하거나 부정하게 보낸다면 나머지 6일의 삶에 있어서 주님은 그 우선순위에 밀려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통해서 참된 안식을 주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이 날을 지켜 가는 것은 때로 습관이 나를 지켜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회당장은 자신이 알고 있는 신앙의 틀 안에 예수님을 제한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안식일 제정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 처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날과 시간에 제한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늘 안식을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며, 우리에게 주어진 규정들을 점검하여 전통에 매이거나 오용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풀고,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부끄러운 줄도 알며 영광을 돌릴 줄도 아는 지혜와 처신을 기대합니다. 


# 18-21절 예수님은 긍휼로 하나님나라 온전히 세워가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으로 비유하십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겨자씨와 누룩이 미미한 존재에서 많은 새를 거느리고, 많은 양을 변화시킬 수 있는 특징을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확장될 것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문화적 배경을 통한 이해인데, 이는 겨자씨와 누룩을 채소밭에 심거나 가루 서말을 부풀리는 데 넣는 것이 일반적이지 안은 특별한 경우라는 것에 착안하여 하나님나라 통치의 특징을 부각하고 앞선 문맥에서 열여덟해 동안 꼬부라진 여인을 안식일에 해방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를 부각하는 해석입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왕되심과도 연결되며 통치와도 연결됩니다. 변방 갈릴리에서 시작된 주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복음의 역사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워가고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종노릇하는 데에서 해방되어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져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며, 먼저 된 이들을 통해서 또다시 사망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건지는 사명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것은 처음에는 어떤 변화가 미미한 것 같지만 회개한 방향이 달라지고 변화와 성장이 지속되어 열매맺어 가는 일까지 나아가게 되면 ‘공중’의 새와 ‘전부’ 부풀게 하듯이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온 우주가운데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작은 일 하나하나에 하나님나라 곧 우리 주님의 통치하심과 인도하심 곧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행하는 겨자씨 누룩같은 일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중의 새와 서말 가루를 부풀게 하듯이 모든 삶의 영역과 온 땅에 그 영광이 가득할 날이 오리라 믿으며 순종하며 나아갑니다. 

오늘 내 삶에 겨자씨와 누룩처럼 심어진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삶이 작은 점하나 찍는 일처럼 미미하다 할지라도 그러한 작은 순종이 날마다 지속되어 간다면 마침내 주의 뜻 온전히 이루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나라에 순종하는 이 여정을 멈출 수 없습니다. 

*

문화적 해석 : 겨자씨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흔한 식물이라는 것입니다. 꼭 우리나라 미나리처럼 따로 재배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식물인데 이를 특별히 채소밭에 한 알만 심는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특히 겨자씨가 군집 식물인데 한알만 심어서는 또한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겨자는 나무가 아니라 식물인데 그렇게 큰 나무로 성장할  가능성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상식적인 심기와 성장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변화된 것을 통해 이 겨자씨 한알 같은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로 옮겨서 큰 나무로 키워서 많은 새들을 깃들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미약한 우리들을 택하여 세우시고 사랑하신다는 점을 부각하는 것입니다. 

누룩도 마찬가지입니다. 당대 누룩은 기존의 빵을 발효해서 만들 것이라 발효능력이 크지 않아서 가루 서말이나 되는 양을 부풀게 하기에는 턱없이 효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룩을 가루 서 말에 넣어서 전부 부풀게 한다는 것입니다. 보편적이지 않은 일이며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앞선 겨자씨처럼 누룩 또한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그런 우리들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서 그의 나라의 백성으로 택하여 세우시고 온전케 하사 하나님나라를 세워가신다는 것이며, 우리를 통해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사 많은 이들을 주께로 인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신다는 교훈입니다.(장재일님의 <밥하면서 보는 복음서의 유대적 배경>에서 참고함)

이와같은 해석은 갑자기 하나님나라의 확장에 초점을 맞추는 어색한 이야기가 하나님의 긍휼의 관점으로 이해하면 소외된 자들을 치유하고 회복하고 온전한 하나님나라를 세워가시는 예수님의 사역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며 주께서 열매맺게하시고 변화시키는 능력 주심을 기억하며 하나님나라를 누리며 증거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 거둠의 기도

주님의 통치하심에 순종하므로 

참된 안식을 누릴 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주의 통치하심을 수용하고, 

우리가 밟는 모든 땅에도 

부족하고 연약하여 소망없는 

우리를 택하여 소망과 능력을 덧입게 하시고

마침내 주의 증인으로 

주의 나라 세워가도록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놀라운 주의 은혜의 증인으로

온전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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