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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Feb 13. 2021

누가복음 13:22-35 하나님나라 잔치로 초대하시는

누가복음 13:22-35  

누가복음 13:22-35 하나님나라 잔치로 초대하시는 예수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라. 오직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중에도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며 초청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이 잔치에 참여하는 이가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초청한 선지자들을 죽이기까지 하는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안타까운 탄식과 심판에 대한 예고도 있습니다. 찬치에 참여하는 자의 선후는 정해져 있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달라집니다. 


# 22-30절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 자가 하나님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지속되면서 하나님나라 복음의 가르침이 현실에서 부딪히며 많은 이들이 떠나게 됩니다. 이에 어떤 사람이 구원 받는 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예수님께 질문 하게 됩니다. 이에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시면서 구원의 문은 열려 있지만 모두가 그 문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주의 말씀을 가르치기까지 한 자라 할 지라도 행악하는 자들은 구원 받지 못하고, 심지어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구원 받지 못하는 이가 있는 반면 이방인일지라도 구원받는 이가 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문을 좁은 문이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하나님나라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세상의 흐름을 역류하는 다른 삶을 사는 길이기에 많은 이들이 그 길로 온전히 행하지 못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거나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서 단지 필요한 부분만 챙기는 이기적인 종교인으로 살아갑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해진 상황을 만나면 애굽을 동경하고 불평했던 그림이 실제적으로 반복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굳이 불편한 제자의 삶을 살지도 않고 주인을 바꾸지도 않고 여전히 자신과 물질과 하나님 아닌 것을 주로 모시며 살아갑니다. 내가 사는 삶의 모습은 좁은 길, 좁은 문을 지향하는 지 많은 이들이 찾는 넓은 문과 길인지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을 아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선을 행하는 증거와 열매가 있을 때에라야 비로소 천국잔치에 참여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고 아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며, 그 말씀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가르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칫 지식과 가르침을 전하고 듣는 자는 자신이 마치 그런 말씀의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주님이 보시기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은 온전하신 분이셨습니다. 다시 말해 아는 것과 말하는 것과,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된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길 곧 주님이 먼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시며 죽기까지 순종했던 그 길을 따라 우리도 주의 말씀을 순종하는 거룩한 길로 행하는 자가 될 때 선을 행하는 자로 인정을 받아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의 분리나, 구원에 대한 조건이 하나님과 인간에게 있다거나, 행위 구원론에 대한 논쟁을 차지하고 믿는다면 당연히 그에 맞는 합당한 열매가 있을 때에 그것이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과, 그보다 먼저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도 우리 주님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온전한 믿음의 길에 대한 분별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로 출애굽도 해 주시면서 광야의 여정에서도 필요를 채우시며 거룩한 길로 행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에 소속되는 것만으로 교회 문턱을 밟는 것으로 천국백성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방인일지라도 천국백성이 될 자들도 있습니다. 먼저 된 자라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한 두 번의 결단과 헌신과 순종으로 다 이루었다 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 신앙의 여정이 끝나는 날까지는 거룩한 백성의 길을 말씀에 순종하는 선을 행하는 길을 끝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고 교회의 소속된 교인이라도 다 천국백성이 아님을 안다면 나는 지금 무엇으로 천국백성임을 확신할 수 있는지 돌아봅니다. 


# 31-35절 예수님은 좁은 길로 행하는 일을 멈춤없이 묵묵히 행하신 분이십니다. 

거짓 왕이었던 헤롯은 참된 왕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참된 왕이신(메시아) 주님은 그런 헤롯과 함께 예수님을 배척하고 결국 죽이는 예루살렘 곧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될 것을 선언하십니다. 

주님은 예루살렘 곧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택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그 길로 온전히 행할 것을 가르치고 초청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을 제대로 듣지 않고 수용하지 않고 심지어 원치 않고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런 선지자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오래도록 이들을 초청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에 부응하지 못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은 끝이 있고 결국 천국 문을 닫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에 메시아 되신 참된 왕 예수님을 거절하고 죽인 예루살렘(너희 집) 곧 이스라엘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혈통적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오직 예수를 주 곧 메시아로 인정하고 영접하고 순종하는 자만 구원(주를 본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우리에게도 천국복음을 전해주고 가르쳐 주는 많은 이들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만난 모든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신 사인을 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모든 만남과 경험과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읽어낼 수 있어야 했습니다. 만일 이러한 사인을 접하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고 듣고 읽어내지도 못할 뿐더러 오히려 그들을 배척하고 무시하고 무관심한다면 이 또한 이스라엘이 범한 실수의 전철을 밟는 행위와 같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계시는 주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우리 모두에게 주셔서 그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 거룩한 백성, 왕같은 제사장으로, 제사장 나라로 살아가게 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나라의 메시아 되신 주님을 알고 믿고 순종하는 온전한 삶이어야 구원을 얻으며 그의 나라 잔치에 참여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성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읽고 배우고 묵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마치 외줄을 타고 가는 것처럼 위험한 신앙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정에는 외부의 공격과 위협도 있고, 미혹과 유혹도 있습니다. 피하고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을 잘 극복하고 분별하고 사명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지금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이 십자가의 길인 것을 아시고도 하나님의  때를 따라 묵묵히 정진해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그 길을 따르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 여정이 결국 주님은 온전한 성전이심을 보여주셨고 오늘 우리로 주님의 몸된 성전으로 하나님나라 잔치에 참여한 자로 살게해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와 사명의 길을 바라보며 오늘도 이 험한 세상을 주를 바라보며 주를 따라 살아가기 원합니다. 


# 거둠의 기도

주님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좁은 문으로 들아가기를 힘쓰며,

오직 우리 주 예수님만이 

그리스도(메시아)이심을 고백하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온전히 주를 따라 행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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