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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

쉴만한 물가

20141115 - 손글씨


처음 몽당연필을 잡았던 기억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책받침을 넣은 공책에 희미한 연필을 진하게 하기 위해 연신 침을 뭍혔던 기억은 있다. 필통에 가지런히 칼로 연필을 갂아 담어주던 누나의 솜씨를 보고 어서 나도 그렇게 깍고 싶어 몰래 연필을 베다가 손가락을 베인 흔적은 지금도 왼손 검지 끝 부분에 남아 있다. 어떤 연필은 나무가 향이 좋을 뿐더러 깍을 때 부드럽게 깍이는게 있었고, 어떤 연필은 결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서 뭉뚱 떨어지거나, 너무 깊이 골이 패이는 것도 있었다.


연필이나 공책을 사기 위해서 필요한 돈이 없을 땐 가끔은 계란을 갖다 드리고 학용품을 바꾸기도 했다. 누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껏 계란을 좋은 걸로 어렵게 골라 갖다 주면 썩은 계란이 아닌지 일부러 짤짤 흔들어 멀쩡한 계란을 ‘굴알’(노른자가 터진 상한 것이란 말로 안다)로 만들도 학용품을 구하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운동회나 상을 받을 때 부상으로 주어지는 학용품이 너무도 귀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몽당연필이 되도록 쓰다가 몇센티 남지 않은 것을 작은 대나무(신의대라고도 했는데..)에 끼워서 사요하기도 했다. 그런 연필을 쓰는 것이 당연하고 절약하는 일이라 의당 생각하며 살았던 시절이다.


처음으로 샤프연필을 선물 받았던 것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누나가 사서 소포로 보내준 것이었다. 시골에서 결코 볼 수 없었던 그 샤프연필이 너무도 신기했다. 하지만 익숙해 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필체가 나빠진다고 샤프를 쓰지 말라던 선생님의 말씀도 생각난다. 그래서 일부러 샤프가 있음에도 일반 연필로 고집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 연필로 일기도 쓰고, 공부도 하고, 그러다 책상 위에서 불어 넘기는 연필 따먹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내겐 너무도 소중한 것이었기에 그렇게 공부하는 것을 가지고 내기를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은 일인데, 그래서 한편으로 더 욕심을 부린 일도 있었다.


생에 첫 번째 소유의 볼펜은 국민학교 6학년때 역시 누나에게 받은 볼펜이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차비 몇푼이 아까워 걷기도 하며 학교를 다녔던 누나는 그렇게 아낀 돈으로 동생들 볼펜을 선물해 준 것이다. 이후에 중학교에 올라가서 본격적으로 볼펜으로 글을 썼는데, 처음 중학교에 올라갈 때는 펜을 사용한 것으로 기억한다. 잉크를 찍어 쓰는 펜을 써서 영어 알파벳을 외우고, 4선 영어 노트에 기록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 때까지도 여전히 가장 예쁘게 써지는 글씨는 역시 연필로 쓰는 것이었다. 지금 그 시절 공책이나 일기장을 보면 잘 쓴 것도 아닌데 그 시절에는 잘 쓰는 줄 알았다. 여하간 몽당연필로부터 볼펜과 펜, 그리고 다양한 펜을 가지고 글씨를 예쁘게 쓰려고 했던 시절들이 있었던 것이다.


뒷집 아저씨가 누나에게 타자기를 가르쳐 주는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워 몰래 타자를 연습했던 것을 시작으로 내 손으로 쓴 글씨가 아니라 기계를 통해 글씨를 쓰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후에야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고, 컴퓨터로 나오는 활자에 신기해 하면서 점차 손글씨를 쓰는 일들이 줄어가기 시작했다. 자꾸만 기계를 통해 글씨는 쓰는 일들이 더 많아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글씨체를 여전히 잊지 안고 있다.


이제는 거의 연필이나 볼펜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 컴퓨터 자판이나 스마트폰의 패드를 터치해서 글을 쓰고, 그렇게 쓴 글이 컴퓨터의 예쁜 폰트로 포장이 되는 순간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몽당연필에서부터 시작해서 격변의 시기들을 살아오는 내내 참 많은 변화를 겪는 세대가 오늘 우리 세대인 듯 하다. 그러다 보니 글씨에는 그 사람의 특징이 담겨져 있는데 요즘은 그렇게 글쓰기가 없다보니 글씨로 성품을 짐작해 보는 일이 줄어든다. 말이든 글씨든 오해가 많겠지만, 그래도 종이 위에 쓰인 예쁜 손 글씨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품을 읽을 수 있다. 가끔은 손글씨를 쓴 편지를 폰으로 찍어 보내기도 하는데 받는 이들이 너무도 행복해 한다. 디지털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사람의 오감이 담긴 따뜻한 무언가를 원하는 세대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지키고 만들어 가야 할 디지로그(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로 이어령 교수가 만든 신조어)시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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