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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과 김

쉴만한 물가

20131129 - 토란과 김


광양 사람들만 알 법한 토란과 김에 관련된 해학 가득한 이야기가 있다.


바닷가 처녀와 산골 총각이 결혼을 했댄다. 혼례 이후에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사이인데 서로 산골과 바닷가 깡촌 처녀 총각이 만났으니 어려운 관계가 더 어렵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산골 총각의 부친께서 바닷가 사돈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래도 사돈인지라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바닷가 사돈은 좋은 음식을 대접한다고 김(金)으로 끓인 김국을 대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김국이 김이 잘 나지 않으면서도 상당히 뜨거운 국이라고 한다. 그런데 생전 처음 김국을 먹게 된 산골 사돈은 그 김국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런데 그 국을 입에 머금고 나서야 이게 뜨거운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어려운 사돈 앞에 음식을 뱉을 수도 없고, 그냥 삼키자니 너무 뜨거웠지만 눈물을 머금고 그 국을 간신히 넘겨야 했댄다.


산골로 돌아간 사돈은 이렇다 할 말도 없이 대접해 준 국으로 곤욕을 치른 것이 못내 맘에 걸렸다. 급기야 그 마음이 분이 차게 되고 어떻게 하면 이 수모를 되갚을 지 고민했댄다. 그러던 차에 바닷가에 살던 사돈이 산골 사돈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토란을 캘 때가 되어서 갓 캐낸 토란을 들깨를 갈아 넣어 끓인 토란국을 대접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토란국도 김이 잘 나지 않으면서도 여간 뜨겁고 또 잘 식지도 않는다고 한다.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대접해준 토란국을 처음 본 바닷가 사돈은 또 함께 앉은 겸상에서 덥석 토란국의 토란과 국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런데 이것이 국물도 여간 뜨겁지만, 함께 뜨거워진 토란은 더 뜨겁고 또 금새 식는 것도 아니어서 입에 넣은 국을 사돈 앞에 뱉어내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간신히 그 토란을 급히 눈이 충혈될 정도로 삼켰는데, 식도를 내려가면서 간이 녹을 정도로 토란이 식기까지 혼줄이 날만큼 뜨거워 했단다. 겸상에 앉은 사돈은 미안한 마음 반 통쾌함(?) 반이었다나....


이솝 우화의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복수나 앙갚음이 해학적이다. 그래서 그런 일들이 끝없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당대에 멈추길 바라는 마음들이 이야기들 가운데 담겨 있다. 사실 미움에 대한 앙갚음으로 시작되어서 감당하기 힘든 관계의 파괴나 예측하지 못한 결과들로 나타나는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렇기에 복수든 앙갚음이든 그것을 해학으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한 켠이 일정 선에서 멈춰 주든지 품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이러한 일들이 사람의 목숨까지도 위협할 정도로 극단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가?


현 정권과 이전 정권이 공통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들이 있다. 앙갚음의 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전 정권에서는 모든 것을 지난 정권 탓이라고 하더니, 이번 정권은 다시는 그런 자칭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 시절이 오지 않도록 온갖 일들을 다 들춰내서 말도 안되는 일들로 누명을 씌우고 재갈을 물리고 말살 하려 하고 담을 쌓으려 하고 제거하려 한다. 사돈관계를 넘어서도 공생의 이유가 충분한데 이건 아예 다름과 소수 야당의 소리 뿐 아니라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은 듯 싶다.


서로 살아야 한다. 진심을 알고 진실하다면 어느새 알게 되고, 그렇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도 때가 되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것이 역사였고,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그 안에 비밀도 왜곡도 오해도 있으나 그러한 것들을 풀고 부족함을 서로 인정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 그것이 그동안 선배들이 그토록 피흘려 세운 민주국가와 이 나라를 여전히 거친 이 땅에 살아남을 뿐 아니라 더 나은 나라로 세워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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