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20121214 - 새 술은 새 부대에
개혁은 새로운 제도나 인물이기보다는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글을 이전 칼럼에서 나눈 적이 있는데 오늘은 비슷하지만 다른 맥락으로 나눠보고자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은 개혁이나 변화를 꾀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의 출처는 예수님이 처음 사용하신 말씀이며 성경에 있는 말이다. 물론 당시에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된 격언이나 속담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도 하고 또 듣는 이들이 오해하는 경우도 있어서 불편한 일이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해라는 것이 ‘묵은 술'이 자칫 노년층이나 오래된 무엇을 말한다고 서운하게 생각하여 늙으면 다 없어지라는 얘기냐며 지난 대선에서도 한 후보가 이런 류의 말로 곤혹을 치른 일도 보았다.
이 말에 비난을 받는 것은 ‘묵은 술'이 아니라 술을 담는 ‘낡은 부대'이다. ‘부대'라고 표현된 것은 당시에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용기이기에 ‘부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낡은 부대’에 해단되는 것은 당시의 종교인들이 형식주의 또는 외식주의의 폐단에 빠져 있거나 종교의 본질을 왜곡하고 자신들도 지키지 못할 윤리들을 가르치면서 종교적 권력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그런 기만적 삶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낡은 가죽 부대’가 문제가 되는 것은 ‘굳어버림'이었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수구적인 자세를 최고로 여기며 부패와 부정에 대한 정화 능력을 상실해 버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반면 새 가죽부대는 발효가 되는 술을 담았을 때 유연성 있게 늘었다 줄었다 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데, 오래된 부대는 굳어서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새 술을 담으면 발효되면서 터져버려 술이랑 부대가 다 버려지기 때문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혜성처럼 나타난 한 후보가 기존 정당정치에 신물 난 국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데는 이러한 기대가 표출되어 다른 부대를 기대한 결과였다. 결국 묵은 술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보편적으로 술 특히나 포도주는 오래된 것이 더 좋다 하지 않던가.
이번 대선이 진보와 보수의 대결 양상이 짙게 배인다. 그러나 서로를 보면서 진보는 보수를 수구로 보고 있고, 보수는 진보를 급진적 좌파로 매도하고 있다. 서로의 약점을 부각한 네거티브인데 문제는 이런 선동을 하는 사람이나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무조건 새 부대가 좋고, 낡은 가죽 부대가 나쁜 것이 아니다. 서로에겐 적절한 쓰임이 있는데 문제는 내용물의 필요를 따라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변화가 필요한 것은 모두 다 동의하고 새 술을 찾고 있는데 어떤 술이 적절한지도 문제이지만 어디에 담느냐 하는 것도 길게 볼 관건이다. 부디 지금 이 나라에 가장 절실한 요구가 무엇인지, 국민의 삶과 미래를 담을 부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지혜로운 분별력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하는데 이번 한 주간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국민의 소중하고 현명한 선택을 애타고 간절한 마음을 졸이며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