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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Dec 07. 2016

엽기적인 그녀

쉴만한 물가

20141207 - 엽기적인 그녀


그녀가 태어난 것은 8월 작열하는 태양이 조금 수그러들 때 쯤인 것으로 기억한다. 땅 위만큼 아직도 땅 속에 열기가  여전하던 날 그렇게 그곳에 흙을 이불 삼아 누었다. 가슴속에서 품고 있던 간질거리던 떡잎은 흙에서 전해오는 양분의 지원에 어느새 딱딱한 껍질을 뚫고 흙 이불을 뚫고 기지개를 켰다. 일주일이 채 못된 시간이 지나고서 잎이 더 나오는 동안 하늘은 점점 더 푸르고 높아져만 갔다. 머리 위로 물결처럼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이 가끔 바람과 함께 지나쳐 가면 콧잔등에 있던 이슬들이 금세 말라갔다. 멀리 들녘에 자라던 벼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갈 즈음 그녀는 오히려 꽃처럼 활짝 풀어낸 머리가 연녹색에서 점점 더 녹색이 진해져 갔다. 


조석으로 기온차가 높아지면서 안개가 낀 날이 많아질 때쯤, 허한 가슴을 채워가려 해도 풀어진 머리로 새는 양분을 누군가의 손길에 황금빛으로 물든 볏짚 끄나풀로 그녀는 허리를 동이게 된다. 그때부터 속이 채워져 갔다. 어느새 옆에 있던 다른 이들도 이모양 저 모양으로 한껏 속을 채워간다. 어느새 찬바람이 더 싸늘해질 즈음 여기저기서 소문이 들린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머지않아 눈이 올 때쯤 각자 바다내음 물씬 풍기는 그 물에 잠겨질 때가 올 거라고…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땐 사람들이 동료들을 쑤욱쑤욱 뽑아서 차로 옮겨 실어주었고 그녀도 그 손길에 이끌려 동료들과 함께 실렸다. 쟁여진 틈 사이로 두 달 동안 살았던 곳을 작별하고 어디론가로 실려갔다. 생전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처음으로 접하고 놀라기도 잠시 어느 넉넉한 사람의 손에 이끌려 갔다. 생채기 난 이파리들이 떨어져 나가고 몸이 두 동강이가 난 후에 찬 물을 뒤집어쓰고 난 후 정말 하얗게 눈처럼 내리는 소금 비를 맞고서 하룻밤을 잤다. 그 기운에 잠시 정신을 잃고서 다시 또 찬물에 정신이 들어 보니 소금이 몸에 배어 있다. 


그녀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도 그렇게 소금에 절여진 채 잠시 포개져 있었다. 옆을 보니 붉은색 반죽이 보인다. 반죽 속에서 팔도의 방언 소리가 들린다. 바다에서 올라온 이들도 있고, 멀리 산에서, 그리고 강에서 들에서 나무에서 살던 이들이 다 한꺼번에 반죽되어 있었다. 이내 그 반죽이 그녀의 몸에 골고루 분처럼 칠해지고 나자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그렇게 담겨진 후에 머지않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래도록 익혀진 모양대로 그렇게 모든 것을 마감케 되리라 한다. 깨알만 한 씨에서 짧은 시간 놀라운 성형과 변화로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되는 엽기적인 그녀의 이름은 ‘김치'다. 


오래전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인생을 뜨게 한 영화의 제목도 ‘엽기적인 그녀'였다. 보편적인 여인은 아니었지만 전지현이라는 배우에게 가장 적합한 듯한 역할이었고 그 내용도 풋풋한 사랑이야기였기에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되었다. 스토리도 연기도 제법 좋았던 그런 영화로 기억된다. 여하간 어떤 사람이 세간에 회자될 때에 좋은 기억이든 좋은 기대감을 갖게 하든 좋은 감정을 가지든 다 나름의 이유와 의미들이 있다. 그래도 이왕이면 시간이 지날수록 잘 익은 김치처럼 좋은 맛으로 회자되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김치같이 엽기적인 그녀가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트레이너였던 사람과도 연관이 있고, 속이 채워지기 전에 누군가 허리를 동여 주어서 속을 채우긴 채운다고 했지만 미처 속이 다 차기도 전에 세상으로 나와서, 나이 값도 못하고, 자신이 주어진 자리에서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팔도에서 모인 주위의 가신들의 알력과 분칠 속에 소금에 절여지듯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너무도 분명하게 갈려지는 그녀. 어느새 숨겨왔던 과거의 일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양념이 몸에 배이고 잘 익어가기도 전에 꺼낸 이상한 김치처럼 추접한 일들로 인해 사람들에게 씹히며 불쾌함을 자아내고 있는 사람. 


엽기적인 그녀의 행각이 해피앤딩으로 끝나면 좋겠는데 지금으로서는 너무도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고 안타깝다 못해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속이 덜 찼어도 양념이라도 좋았다면, 그래서 잘 버무려 지거나, 잘 익혀지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하필 전에 쓰던 장독에서 나는 냄새가 새 김치에까지 배어서 맛은커녕 풍기는 냄새마저 악취가 나기 시작한다. 구더기라도 나올 모양이다. 다음 해까지 두구 두고 먹어야 될 이 김치를 어찌하면 좋을까? 김치를 버려야 할지 장독을 깨뜨려야 할지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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