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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Dec 07. 2016

눈이 오는 날

쉴만한 물가

20121207 - 눈이 오는 날


어릴 적 눈은 꿈입니다. 추운 줄도 모르고 뛰쳐나갔습니다. 멀리 산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내려오는 눈을 한껏 입을 벌려서 받아먹기도 하면서 이 눈이 솜사탕이었으면 했고 솜사탕은 어떤 맛일까 궁금도 했으며, 강아지마냥 천지를 뛰어다니면서 즐거워했습니다. 눈은 그렇게 어린이에겐 꿈을 꾸게 했습니다.  아득하게 높은 하늘 어디에 이렇게 예쁜 눈을 내릴까?  쌓인 눈을 뭉쳐가며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그렇게 꿈을 꾸는 시간이었습니다. 눈과 함께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꿈...


청소년에게 눈은 바라봄입니다. 수업하다가 갑작스레 쏟아지는 눈을 보면 설레는 마음이 아득해졌습니다. 친구들과 환호성도 지르고 머릿속으로는 빠르게 오늘은 일찍 수업이 끝나면 좋겠다는 계산도 들고, 귀가 길에 차는 제대로 움직일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어느새 개구쟁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성친구가 있었다면 더없이 설렜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맞는 눈은 더 이상 하늘나라 선녀님이 뿌려준 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했습니다. 


청년에게 눈은 약속입니다. 첫눈 오면 만나기로 약속한 일을 기억하고, 종일 학교나 직장에서 맘을 동동거리며 몸은 여기 있지만 맘은 버얼써 약속 장소에서 사랑하는 이와 눈처럼 풍성한 이야기 나누고 있었습니다. 군에 있는 이들에겐 눈은 곤역입니다. 눈을 치워도 치워도 다시 쌓여가는 눈을 보면서 굵어진 팔뚝만큼 피곤은 쌓여 갔습니다. 훈련이라도 있을 때면 눈을 떠서 물을 대신하는 일도 있었지요. 군인 말고는 청년은 눈이 하염없이 와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갇혀도 좋으련만 하는 맘으로 내리는 눈을 기대합니다. 


장년에게 눈은 양식입니다. 눈이 와도 잠시 설렐 뿐 차량 운행을 염려하기도 하고, 늙으신 노부모를 생각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행여 다치지나 않을까 생각하면서 부양할 가족들 생각이 앞섭니다. 농경사회에선 눈이 오면 더 이상 수확하는 일을 할 수 없기에 가을까지 모아둔 양식을 먹고 지내는 길 밖에 없으니 눈은 자연스레 양식 걱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내리는 눈처럼 그렇게 양식이 많이 쌓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이땐 더 간절해집니다. 


노년에게 눈은 세월입니다. 쌓인 눈만큼 많은 시절들이 지나갔음을 그렇게 눈처럼 머리도 하얗게 되었음을 회고하면서 지난 세월을 돌이키게 합니다. 아쉬움도 미안함도 고마움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이젠 먼먼 옛날이야기로 그렇게 어딘가에 흩날려 가버렸음을 상기하게 합니다. 먼저 간 이의 무덤에 쌓인 눈을 생각하고, 오는 눈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백발도 그렇게 무성히 자라 이젠 그만 되었다는 세월을 연상케 합니다. 



잠시라도 온통 새하얗게 덮인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우리 모두가 미움도 다름도 덮고서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눈 때문에 고생할 사람들을 생각하면서도 잠시나마 모든 것을 멈추게 하므로 그동안 지나쳐왔던 일들을 잠시 돌아보게 하는 것도 눈이 주는 상념의 한 끝자락에 있습니다. 가까운 날 눈처럼 하얀 종이에 도장을 찍어 온 세상을 새하얗게 뒤덮는 것처럼 많이 많이 참여해서 모두가 하나 되어 다시 일어나 도약하는 건강한 새나라 세워 가길 또한 기대해 봅니다. 


https://youtu.be/mfY4I0rJ6hI - 눈이 오는 날 - 노래두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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