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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쉴만한 물가

20131206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오늘 우연히 듣던 라디오에서 읊어 주는 시(詩) 한편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계절이 시와 잘 어울리는 계절이라는 생각과, 만감이 교차하는 지금의 마음들을 함축된 시어(詩語)가 담아 줄 수 있다는 것과, 왜 사람들이 시를 짓고 노래하는가? 하는 생각들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시작되는 계절이 우리에겐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과 겹치다 보니 만추와 초동으로 마음이 스산한데 거기다가 송년과 신년을 맞이해야 하는 설렘과 기대가 교차되는 지점이 때로 추위로 얼어서 움츠러들기도 하고 새 희망의 설렘에 하늘을 향해 뜨거운 기운을 발산하기도 하는 듯하다. 자연을 노래하거나, 사람들과 시국을 논하거나 비상식적 현실들의 고뇌 가운데 몸부림치는 가슴에서 산고의 과정을 거친 시(詩)가 탄생한다. 몸으로 살아내고 비비고 찧고 채로 걸러진 함축과 절제의 언어들 가운데 저자의 환경과 마음과 꿈을 담기에 읽는 이들의 가슴에 감동과 공감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떨리는 손과 심장의 박동이 두근거리게 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 시인의 사후에 출판된 유고시집으로, 1941년에 19편이 완성되어 시집으로 펴내려던 것을 일제의 검열을 우려하여 이루지 못하고 1948년 정음사(正音社)에서 유작 30편을 모아 동일한 이름으로 간행한 시집이다. 처음 19편의 시는 모두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써졌다고 한다. 처음의 19편의 목록들을 보면 아마도 지금의 계절에 쓰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19편의 제목들 : 자화상, 새로운 길, 슬픈 족속, 소년, 병원, 무서운 시간, 눈 오는 지도,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 십자가, 눈 감고 간다, 돌아와 보는 밤, 간판 없는 거리, 바람이 불어, 또 다른 고향, 길, 별 헤는 밤, 서시.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계절이 깊어가고 끝 모를 압제 속에서 말 한마디 글 하나 시 한 수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는 그런 계절,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 별 헤는 마음으로 조국의 앞날을 가슴에 담았던 그 시어들. 해방 후에 그 시들이 읽혀질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을지 짐작이 된다. 지금 읽어도 그 떨림이 전해지는데 차가운 그 시절의 끝자락에서는 얼마나 더했을까.


지금도 하늘이 스산하다. 중국에서 불어온 미세먼지로 하루가 멀다 하고 시야를 부옇게 가린다. 바람에 묻어오는 기운과 냄새도 역겹다. 여전히 좌우의 사상으로 낙인을 찍고, 부패한 시국 바람의 냄새가 역겹다. 별을 보고 출퇴근을 하는 이들의 수고에 들려진 월급은 너무도 가벼운데 그마저도 통장에 들어 오기가 무섭게 빠져나가고, 기약 없는 복권 한 장에 희망을 노래하다 그마저도 긁힌 먼지처럼 스러져 간다. 지는 별처럼 그렇게 사라질 것 같아 두려워하면서도 함께한 처자식들을 바라보며 시린 손을 굳게 잡기도 한다. 문득 오래된 동창들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퇴근길 대폿집에서 동료의 어깨에 기대어 투정도 부려본다. 결국 아침이 오면 여전히 그대로 일 줄 알면서도 밤이 깊어질 때까진 가슴이 아린다.



이 계절이 더 깊어지고 다시 봄을 기다릴 즈음이 되면 뿌옇던 하늘이 맑게 개이고, 상쾌하고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고 별은 더 많이 반짝일 수 있길 기대하며,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한 그의 시들을 다시 한번 읽어 가슴에 심고 여전히 주어진 그 길들에 박차를 가해 보련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다 한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운이 쇠할 날이 올 테니까. 그리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올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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