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3:01-14 다윗의 광야 3 _ 야웨의 신

사무엘상 23:01-14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사무엘상 23:01-14 다윗의 광야 3 _ 야웨의 신탁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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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이 그일라를 치자

다윗은 야웨의 신탁을 따라 그들을 구원하였고,

하나님은 다윗을 잡으러 온 사울과 그일라 사람들로부터

피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 그일라에서 십광야로 그리고 마온 광야로 다윗은 지금 계속 도망자의 신세로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가는 곳마다 신의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이들로 더욱 어려움이 극에 달하는 시기입니다. 이를 통해 다윗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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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블레셋과 그일라, 아비아달과 다윗의 흥망성쇠 주권은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일라 거민의 소식을 듣고서 여호와께 묻고 난 이후에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쳐서 그일라를 구했습니다. 사울이 그일라 성에 다윗이 갇혔다고 생각하여 포위하러 왔을 때 하나님은 사울이 치러 올 것과 그일라 백성들의 배신의 위험에 대해서도 다윗으로 하여금 알게 하셔서 피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윗이 그일라을 구원하였으나 그들이 배신할 것을 알고 다윗을 피신시켰고, 사울의 포위 속에서도 하나님은 다윗에게 피할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며 사람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묻고 순종하는 이를 지키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상황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일관성을 계속 취하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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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상황과 사람들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합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추수할 곡식을 약탈하려 할 때 블레셋을 칠 것인지에 대하여 여호와의 신탁을 구합니다. 블레셋을 치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 따르는 이들이 두려워하자 다윗은 다시 한 번 더 여호와께 거듭 묻고 승리를 확신하고 싸워 크게 이겨 그일라 거민을 구원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뜻을 곧바로 부하들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더 확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여 행동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열린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사람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하들은 눈에 보이는 다윗이 있어도 두려워 했지만 다윗은 눈에 보이는 블레셋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더 신뢰하며 담대히 행동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판단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 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뜻을 더 신뢰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자가 성숙한 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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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절 상황이 유리하게 진행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일라에 온다는 것을 알고 사울은 그것이 여호와게서 다윗을 자신에게 붙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기다 그일라 성의 문과 문빗장이 오히려 다윗을 가두어서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합니다. 먼저 묻고 행동하는 다윗과 달리 먼저 행동하고 그것을 여호와의 뜻이라 자의적으로 해석해 가는 사울에게 상황의 변화를 읽고 분별하는 지혜는 이미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유리하게 변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 먼저 묻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탐욕에 눈멀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욕망의 포로로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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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4절 사람의 생명과 신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다윗을 통해 구원을 받은 그일라가 배신하여 다윗을 사울에게 넘길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을 통해 듣고서도 다윗은 그곳을 말없이 떠납니다. 이미 자신을 따르는 자들도 사백에서 육백으로 늘어났기에 얼마든지 이들에게 보복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은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다윗을 도운 이들을 무참히 도륙했던 사울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보복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할 때에 낙심되는 일이 있더라도 실망치 않고 나아가는 일이 진정 주님을 신뢰하는 자의 행보입니다. 그런 다윗이 많은 이들을 거느리고 황무지에 거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키시기에 누구도 그를 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안에 스멀거리는 욕망의 소리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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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일라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태도를 다시 점검하게 됩니다. 다윗의 호위에도 불구하고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을 배신하고 사울에게 넘겨 줄 것이라 합니다. 목숨 걸고 구원해준 그일라 사람들이 오히려 다윗을 배신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마 그들도 사울에 대한 두려움(놉의 제사장 85명이 죽은 소식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이러한 태도를 취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은혜를 입은 이들의 모습은 분명 신의를 저버린 행동입니다. 이런 인간의 이해를 지도자는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생명과 가족을 돌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은혜를 저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더더욱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실상 살아보면 다윗을 도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돕지 않고 오히려 전혀 다른 이들 곧 사울의 주변 인물 등이 다윗을 돕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이 도울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다른 이들이 돕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을 의지하지 말기를 깨우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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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사울의 추격에서 안전한 근본적 이유는 하나님이 다윗을 지키심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10여년 이상) 광야에서 쫓겨 다니면서도 해를 당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지키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운 다윗의 운명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됩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사람을 해하거나 죽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를 인간이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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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전에 하나님의 뜻을 거듭 묻는 다윗의 모습이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비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은 새로운 모습으로 보입니다. 다윗의 광야생활은 다윗의 영적 성장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계속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깊이가 깊어지고 그의 영적 성숙이 더 완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훈련학교를 잘 통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과 당신의 종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도 두 분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쓴 ‘내 종 다윗’이라고 친밀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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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행동하기 전에 거듭 주님의 뜻을 묻고,
어떤 결과에도 낙심치 않고 믿음으로 행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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