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5:01-22
사무엘상 25:01-22 다윗의 광야 6 _ 바란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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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 떠난 뒤에라도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의 죽음에 온 이스라엘이 슬퍼합니다. 사사로 제사장으로 그리고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이스라엘의 왕정의 기초와 행정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야 할 나라의 근간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해 간 사무엘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떠났습니다. 그의 삶에 대한 평가는 많은 이들이 그를 두고 슬퍼하는 것을 통해서 그의 성품과 행동과 섬김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하루아침에 한 두 가지 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일관된 언행심사를 통해 일평생 살아온 삶의 궤적이라야 떠난 뒤에라도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억지로 한다고 될 일도 아니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이상의 성과를 내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무리수를 두는 일도 삼가해야 합니다. 오늘 목회나 여타의 일에 있어서도 자신의 역할과 분량 그리고 한계를 잘 알고 겸손하게 처신하며 분수에 맞고 적시적소에 맞게 일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명을 분명하게 알고 때를 분별하고, 시작과 마무리 할 때를 바로 아는 일도 중요합니다. 지금 주어진 그 자리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들을 최선을 다하되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고 감당해 갈 수 있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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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절 사울같은 나발과 다윗같은 아비가일의 이야기
나발(어리석다는 의미)은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불량한 사람(17절)인데 심히 부한 자입니다. 부자이기에 분별력이 없고 상황파악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불량하기에 부자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심히 부하여 아마도 자기 중심적으로 기고만장한 자로 보여집니다. 그에 반해 아내 아비가일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답고(16장에서 다윗을 묘사한 표현=준수하다) 지혜로운 여인으로 상황 감지 능력이 빠르고 현명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결국 나발과 아비가일의 이야기는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나발에게 베푼 호의에 대해서 양털을 깎는 큰 축제에 재산을 보호해준 보답을 예를 갖춰 요구했습니다. 호의 자체로 끝날수도 있었으나 다윗이 먹어야 하는 식솔들이 많기에 이러한 역할에 대한 대가를 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히 부한자이고, 무작정 갈취하는 것이 아니라 베푼 호의에 대한 응당한 대가에 대한 요구이기에 무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호의에 대하여 상응한 대가지불을 제대로 하지 않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와 헌신에 대한 것보다 갑절 이상으로 채우시고 부으시고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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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3절 나발의 망발과 배은망덕함 그리고 다윗의 분노
다윗의 요구를 들은 나발은 다윗을 무시하면서 그를 도망노예취급하고 듣보잡으로 멸시합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다윗은 분노합니다. 경박하고 배은망덕한 나발은 의례히 불의한 이요 어리석은 이이기에 그의 언행이 놀랍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에 대한 다윗의 반응은 지금 다윗이 조금 더 왕이 되는 훈련 곧 광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발의 배은망덕함에 대해서 다윗은 분노하면서 칼을 차고 무리를 이끌어 나발을 죽이려 군사를 동원합니다. 이에 대해 여호와께 묻고 고려하고 심사숙고한 말씀들이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윗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마치 다윗이 갑자기 퇴보하면서 사울처럼 되어버릴 수 있는 위험한 순간입니다.
분노가 일때 참으로 유의해야 합니다. 분을 내는 일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왕은 이러한 감정에 대한 조절과, 반대하고 무례하고 대항 하는 이들을 잘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다양한 군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서 그런 이들마저도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려면 절박한 생존만을 추구하지 않고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과 채우심과 함께하심에 대한 풍성한 경험과 믿음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야 일만달란트 빚진자가 한 달란트 빚진자를 용서할 수 있고, 원수까지도 용서할 수 있으며, 그를 위해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용서받고 사랑받고 회복되었기에 넉넉하게 사랑하며 섬기며 품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많이 경험하고 받고 알고 누리는 만큼 우리 주위에 상처받은 모든 이들을 넉넉하게 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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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2절 악을 선으로 갚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의 경거망동에 대해서 듣고서 급히 종들을 시켜 다윗의 선대함에 대한 보응을 통해서 나발로 말미암아 발생된 다윗의 분노를 막으려 합니다. 아비가일이 아니었으면 흥분한 다윗은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한 사울처럼 닮아갈 뻔 했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아비가일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양식으로 선물을 마련해 보내고 다윗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뒤따라가서 다윗앞에 엎드려 최대한 다윗의 마음을 움직여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흥분한 다윗은 진멸이라는 엄청난 맹세를 합니다. 여호와께 묻거나 여호와의 뜻이거나 여호와의 허락이나 인도하심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흥분하고 격분하고 있는 다윗의 행동은 위험한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남자를 멸하겠다고 흥분에 했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고, 선한 일에 열심이어야 하지만 악을 악으로 갚고, 선한 일보다 악한 일에 지혜롭다면 정말로 위험합니다. 무엇보다 총명하고 아름다움은 지혜로움에서 옵니다. 아비가일의 상황판단과 결단 그리고 대처함을 통해서 다윗의 실수를 막아주었습니다. 아비가일은 그렇게 화평케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절박한 상황과 도망자 신세가 된 다윗의 마음에 분주함으로 말미암아 순간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판단과 결정을 통해서 큰 실수를 범할 뻔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함께한 이들을 살리는 일에는 그만큼의 희생과 수고와 섬김에 있어야 가능합니다. 지금 우리가 경계에 서 있다면 조심스럽게 한단계 한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성찰과 회고와 성숙을 위한 훈련의 시간들을 잘 채워가야 넉넉하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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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를 일꾼으로 불러주신 하나님 아버지
일평생 주만 섬기며 주의 일구므로 평가를 받고
베풀어 주신 은혜와 호의를 배은망덕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삼가하겠습니다.
분노를 억제할 수 있는 마음도 허락해 주시옵고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잘 분별해 나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