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7:1-28:2
사무엘상 27:1-28:2 다윗의 실수도 선용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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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망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망명은 그가 왕이 되는 것과 함게한 식솔들을 부양하기 위해 결국 거짓을 행해야 했고,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다윗의 실수를 처리해 주시는 은혜를 베푸시고, 이러한 여정을 통해서 후일을 도모하도록 선용케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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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우리의 묵상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갑자기 다윗은 마음에 생각을 하면서 사울의 위협과 실속들의 부양에 대한 부담을 갖고 블레셋 땅으로 망명할 것을 작정하고 실행합니다. 함께한 가족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실제로 그런 망명에 대한 소식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수색하는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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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다윗이 블레셋 망명을 결정하게 된 동기가 마음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동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았던 다윗이 이번에는 자신이 생각한대로 판단한 것입니다. 그 안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힐 것을 두려워하고 블레셋으로 가려 한 것입니다. 이미 사울에 대한 보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예비하고 지키고 보호하며 인도하신 것에 대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사울이 다윗을 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묵상한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자기의 능력과 생각들을 묵상하다 보니 결국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두려움과 염려로 망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렇듯 스스로 결정하면 문제를 더 어렵게 합니다. 인간으로서 다윗의 한계입니다. 계속된 도피 생활로 지쳤고, 혼자만이 아니라 600여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보다 더 영향력이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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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상황으로 다윗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그런 사명을 받은 이었으며, 그간의 광야 여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채우심과 지키심에 대한 실제적 경험들을 통해 많이 성숙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두려움과 경제적 궁핍이 마음의 염려로 가득차서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인간적인 생각들을 묵상하다 결국 이와 같은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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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보고 품고 묵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사건입니다. 소위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보면 만족도 희망도 없습니다. 오히려 더 결핍과 한계와 부족함만 극대화되어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그러니 광야 여정에서는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믿음의 길을 저버리고 세상의 길이 더 현실적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갔습니다. 이 길은 다윗의 길이 아닙니다. 사울이 간 자기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와 응답을 기다릴 줄 아는 믿음 가지길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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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절 거짓은 거짓을 낳게 되고 결국 그 올무에 갇히게 됩니다.
다윗은 유다 남부 광야지역에 속한 당시 블레셋 지역의 영토인 시글락에 거주하게 됩니다. 놉, 아둘람, 마온광야, 엔게디, 시글락, 헤브론 그리고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이 다윗의 여정입니다. 이곳에서 다윗은 아기스의 봉신이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곳에서 유다의 대적들을 칩니다. 그래놓고 아기스 왕에게는 자신이 유다와 갠족속을 친 것처럼 거짓으로 보고합니다. 그래서 아기스 왕이 들을 때 다윗이 유다 사람인데 유다를 친것으로 보고 오나전히 자신의 편이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거짓보고가 새어가지 않도록 포로들을 죽입니다. 그러자 아기스는 다윗을 종신토록 신하로 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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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도망자 신세로 아기스의 봉신이 되기도 했지만 다윗은 나름 동족을 괴롭히지 않고 약탈하는 세력들을 치면서 자기 백성을 보호합니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나름대로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의 처신을 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나름 지혜롭다고 지극히 현실적으로 실제적인 처신을 잘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거짓된 행보는 결국 스스로 곤란한 지경에 갇히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됩니다. 사울의 추격도 피했고, 식솔들을 먹여 살리는 일도 나름 채워가고, 이방 땅에서 거주할 땅도 있고, 봉신으로서 향후의 조건도 나름 선전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블레셋 망명은 분명 하나님께 묻고 한 행동이 아니기에 다윗 스스로의 꾀에 스스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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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뻔한 것같은 일들, 습관적인 일들이라 할지라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과 뜻이 가장 우선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으로 교만해지지 않고, 매일을 하나님이 허락하신대로 살아가는 존재를 깨달으며 겸손함과 믿음의 성숙을 갖게 되는 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부족해 보이고 모자라보이고 무모해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기다리고 인내하고 용기를 내어서라도 순종하며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더디가는 것 같고, 무모해 보이고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결국 가장 최선, 최고, 최적의 때와 곳과 역사는 카이로스의 시간과 하나님의 방법과 역사라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이 믿음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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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1-2 하나님은 다윗의 실수도 선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대대적인 전쟁이 발생합니다. 이에 아기스 왕은 다윗에게 참전을 요구합니다. 결국 동족과의 전쟁을 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 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 곤란해지게 됩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상황이 처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 스스로 자초한 결과입니다. 인간이 만든 방법이 갖는 한계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한치 앞도 제대로 모르는 우리가 기껏 생각하고 고안하여 세운 방식은 처음엔 그럴사하고 현실적이고 적절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불과 얼마안되서 우리가 얼마나 근시안적으로 부족하고 무지 무능한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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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요청에 다윗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답변을 합니다. 아기스를 따를 수도 있고, 안따를 수도 있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말합니다. 즉 아기스의 봉신으로서 전쟁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은 유다 사람이기에 어느 순간에는 유다사람의 정체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기스는 다윗의 이러한 답변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머리 지키는 자 곧 경호원으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아기스는 다윗을 신뢰합니다. 21장에서 미친 사람처럼 행동할 때 미친 사람이라고 했던 다윗은 이제는 인격적으로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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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에서의 용병생활은 1년 4개월입니다. 다윗은 이미 하나님께서 여러차례 다윗에게 확신 심어주었음에도 사울피해 블레셋으로 간 것은 분명 다윗의 실수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도 그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한계입니다. 그런 자신의 한계를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의 일생에는 여러 차례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압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다윗의 실수를 다 뒤처리 해주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다윗이 블레셋의 봉신으로 있으면서 그들의 발달한 기술과 전쟁 기술 등을 본 것입니다. 그렇게 지피지기하여 후에 블레셋과 싸우도록, 그들의 용병으로 있으면서 그들의 장단점을 알기에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의 실수까지 선용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우리는 사방이 막힌 곳에서 유일하게 뚫린 하늘을 향해 다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하늘의 응답과 인도와 보호만이 우리를 살게 하므로, 인내하며 그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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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님께 열납되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현실이 긴박하고 그럴싸해보이고
내게 있는 능력과 힘이 있다해도
여전히 우리의 묵상은 주님이어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믿음으로 이어지고
그만큼 성숙해 갈 수 있음을 알고
더욱 주님을 아는 믿음을 구합니다.
거짓이 거짓을 낳으므로
어디서든 정직하게 행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실수가지 선용하시는 하나님앞에
이를 약용하는 불신앙의 죄를 범치 않게 하옵소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주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예비하심
그리고 지키시고 세우심을 바라며
오래참음으로 이 믿음의 여정을
승리케 하옵소서.
오늘도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채우며 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