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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야 Sep 30. 2024

다시 반한 날

운전하는 남자가 이렇게 치명적입니다.

# 스포츠카 타는 남자


운전면허를 30대 중반에 땄다.

운전을 배우기 전까지 나는 운전을 할 줄 아는 모든 이들이 참으로 멋있어 보였다.


대학생 시절,

일찍 면허를 딴 남자친구(지금의 남편)가 차를 몰고 온 적이 있었다.

차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던 때이니 차의 기종이나 모양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던 때였다.

무지는 기준을 만들지 못하니 내 눈에 모든 차는 비슷해 보였다.


그가 몰고 온 차는 문이 두 개뿐이었다.

"오빠 스포츠카 탄다~"라고 말하며 차에서 내리던 그.

차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던 나였지만 스포츠카의 문이 두 개라는 건 알고 있지!

스포츠카를 실제로 본 적이 없던 나는 문짝이 두 개인 차를 보며 

"우와~ 스포츠카다~!!" 놀라워했다.

나도 스포츠카라는 걸 타보는 건가 하며 감격에 겨워하는 찰나 그가 나를 보며 신나게 웃어대었다.


그가 스포츠카라 말했던 그것은 사실 스포츠카가 아니고 오래된 구형 프라이드였다.

구형 프라이드는 스포츠카처럼 문짝이 두 개다.

'불편해도 멋있으니까 봐주는 문짝 두 개!'가 아니라

'차가 작으니 필요한 만큼만 달아놓은 문짝 두 개'인 것이다.

딱 봐도 날렵한 스포츠카와 전혀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그저 문짝이 두 개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말을 홀딱 믿어버리다니.

능글맞게 "나 스포츠카 타는 남자다!"라고 말하는 그의 개그가 재미있어서 순간 믿어버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의 능글맞은 유머가 좋아 그에게 반했던 것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어리숙하게 속아 넘어가는 나를 보는 게 그에게도 행복이며 사랑이었을 것이다.


어이없게 속아 넘어가고도 오래된 작은 차를 운전하는 그가 참 멋있어 보였다.

내가 하지 못하는 걸 손쉽게 해내는 이에 대한 존경과 동경이었다.

차의 외관은 나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운전대에 올려놓은 손도 섹시했고, 기어에 올려놓은 한쪽 팔도 섹시했고, 주의 깊게 앞을 보며 운전하다가 한 번씩 옆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슬쩍 바라보는 것도 정말 섹시했다.


남자친구뿐 아니라 운전을 하는 사람 옆에만 앉으면 나는 항상 조금씩 반하곤 했다.

남자건 여자건.


# 벗겨진 콩깍지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잘 놀라는 편이라 길에서 들리는 클락션 소리에도 경기를 일으키듯 화들짝 놀라는 일이 많았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운전을 배우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도로에 수많은 소리들이 존재하는데, 운전하다가 깜짝 놀라서 핸들을 틀어버릴 것 같다나.

나도 그런 내가 못 미더워 운전은 나의 세상에 들어올 수 없는 것처럼 여겼다.


화려한 대중교통 덕분에 도시에 살 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외곽으로 이사하니 대중교통은 더 이상 화려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건 너무 힘든 일이 되었다.

내가 불편하여 어찌할 수 없으니 결국 운전면허에 도전을 하고 드디어 면허증을 따냈다.


면허증을 딴 후, 아이들을 데리고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해진 것은 참 좋았으나 생각지 못했던 부작용이 발생했다.

더 이상 운전하는 남편이 멋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그 멋있던 운전자들이 모두 멋짐을 잃었다.

반한다는 마음은 팝핑캔디 하나를 입에 넣는 것 같은 기분이다.

톡~하고 터지며 살짝 설레는 기분.

운전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팝핑캔디 한알을 입에 넣는 기분이었는데

운전은 더 이상 신기하고 멋있는 팝핑캔디가 아니었다.

나도 할 줄 아니까.


# 용달차 나가신다.


시골에서는 운전을 하지 못하면 살기가 매우 힘들다.

마트에 한번 가려해도 20분가량 운전을 하고 나가야 한다.

시골에 살면서 운전할 일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운전이 능숙해졌다.

운전하는 남편을 보며 반하던 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마당에 짐을 날라야 할 일이 있어 남편이 용달차를 빌려왔다.

마당에 용달차를 세우고는 높은 차체에서 훌쩍 내려오는 그.


내가 용달차를 신기하게 바라보자 그가 이런저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용달은 기어도 영 다르게 생겼고, 클러치는 뭔지도 모르겠고.

양발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데 그것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나에게는 알 수 없는 세계인데, 그는 그런 것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었다.

그 순간.

어머나! 팝핑캔디가 터진다.


오래되어 녹슨 자국이 가득인 그 용달차에서 부스스한 머리로 목장갑을 끼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에게 다시 한번 반해버린 것이다.

역시 내가 부족할수록 상대가 빛이 나는 법이다.


용달을 운전하는 그의 옆에 앉아 오랜만에 팝핑캔디가 입안에서 팡팡 터지듯 설레었다.

그리고 나의 팝핑캔디를 지키기 위해 나는 1종 면허를 따지 않기로 다짐한다.

이 험한 세상, 조금이나마 재미있게 살려면 그에게 반할만한 구석은 남겨두어야지.

내가 나의 능력치를 올리지 않는 건, 배우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에게 계속 반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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