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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r 09. 2021

밸런타인데이, 생애 첫 고백 후 차인 추억

짝사랑 '케빈'에 대하여

- 저…… 혹시 오해하실까 봐 미리 문자 드려요. 선생님께는 말씀드렸는데요. 내일 쫑파티에는 가지 못할 거 같아요. 케빈 오빠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요. 동생 졸업식이라서요. 다 같이 시간을 보내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전부 사실이었다. 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린 것도, 동생 졸업식도, 겨울 내내 일주일에 세 번씩 같이 영어를 배우며 친해진 사람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진짜였다. 며칠 전 고백했다 대차게 차인 케빈 때문에 그 자리에 가지 않는 게 아니라는 말도 정말이었다. 나는 일곱 살 터울 동생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런데 만일 동생의 졸업식이라는 쫑파티에 확실하게 불참할 구실이 없었다면? 다음날 케빈의 얼굴을 마주쳐야 한다는 민망함에 종일 불편한 마음으로 ‘쫑파티에 가? 말어?’라고 스스로에게 수백 번은 되물으며 갈등했을 것이다.


나로서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에 가족들은 모두 바빴다. 이년 전 사고로 아빠는 여전히 입원 치료 중이셨고 엄마는 병간호에 매진하셨다. 동생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결국 겨울방학이라 한가한 대학생 혼자 꽃을 사 들고 모처럼 몇 년 만에 내 모교이기도 한 학교를 방문했다. 공식 행사를 마친 뒤 아직 나보다 키가 작았던 동생의 어깨를 감싸고 다른 분께 부탁을 해 교정에서 둘이 어색한 사진을 찍었다. 부모님을 대신해 참석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괜스레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케빈과의 인연도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어 학원에서 알게 된 사람이었다. 케빈은 본명이 아니라 학원에서 부르던 영어 이름이다. 학교 근처에 있는 학원이라 반에는 같은 학교 재학생들도 여럿 있었고 케빈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몇 학번 위 다른 과 선배였고 곧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자기소개에서 제대를 앞둔 말년 휴가 중에 영어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성실하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


점차 케빈의 모습은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아직 머리가 짧아서인지 매일 짙은 녹색 비니를 썼는데 덕분에 얼굴 윤곽이 더 뚜렷해 보였다. 영어 회화 수업이라 앞쪽에 선생님 좌석을 중심으로 수강생들의 책상은 왼쪽, 뒤, 오른쪽으로 빙 둘러져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보통 오른쪽에, 케빈은 왼쪽에 앉았다. 자율 좌석인데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지 보통 처음 한두 번 앉았던 자리가 고정 좌석이 되곤 한다. 케빈과는 뻥 뚫린 중앙을 맞대고 늘 마주 앉았으니 그가 눈에 잘 띄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를 향한 내 관심은 점차 커져갔다. 마주 앉은 그의 행동 하나에도 관심이 갔고 그의 목소리는 백색소음과 잡음을 뚫고 또렷이 들려왔다. 케빈과 회화 파트너가 될 때면 애써 설레는 감정을 감추고 담담한 척 행동했다. 영어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간에 학원이란 게 집에서 그곳까지 간다는 자체가 여간 번거롭지 않다. 막상 수업에 참석하면 뿌듯하지만 가는 게 귀찮아서 등록만 하고 작심삼일로 포기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해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도 학원에 가는 일이 하나도 귀찮거나 힘들지 않았다. 모두 케빈 덕분이었다.


어느 날 그가 학원에 오지 않았다. 그토록 신경이 쓰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결석을 했을 했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어디 아픈가?’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선생님께 여쭤볼까?’ 조바심을 내던 찰나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케빈은 안 오나요?” 누군지는 몰라도 내 마음을 대변하는 질문을 던졌다. 케빈은 말년 휴가를 마치고 전역을 하러 군에 복귀했다면서 며칠 뒤 다시 수업에 참석할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결석한 이유를 알고서 비로소 안도했다. 나는 확실히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이후 어떻게 친분이 생겼는지 운이 좋게도 그와 두어 번 데이트를 했다. 같이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진부하리만큼 평범했지만 내 시간은 영상을 2배속으로 재생하듯이 빠르게 흘러갔다. 식사를 하다가 때마침 밖을 지나가던 그의 친구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얼마나 놀려대던지. 케빈은 헐레벌떡 뒤쳐나가 친구를 만류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내심 나는 오해받는 상황이 즐거웠다. 그리고 며칠 뒤 밸런타인데이에 케빈에게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 하는 고백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삼단케이크 초콜릿을 선물하면서 마음을 전하기로 결정했다. 골판지 공예 솜씨를 발휘해서 직접 골판지로 삼단케이크 모양을 만들고 안을 각양각색 초콜릿으로 채울 계획이었다. 분홍색 골판지로 각기 다른 크기로 원통과 뚜껑을 세 개씩 만들었다. 뚜껑 옆면은 생크림이 흐르는 듯 하얀 골판지로 물결무늬 테두리를 둘렀고, 뚜껑 윗면 테두리는 딸기 대신 빨간 작은 구슬로 장식했다. 그가 어떤 초콜릿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페로로 로쉐, 키세스, 스니커즈, 허쉬 등 층층이 다양한 초콜릿을 가득 채웠다.


일단 준비는 했는데 만들면서도 계속 고민이었다. ‘케빈이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만들기만 하고 주지는 말고 내가 다 먹어버릴까? 에이, 모르겠다. 일이 커졌지만 생각보다 괜찮게 잘 만들고 있으니까 우선은 완성하고 생각하자.’라며 이미 난장판이 된 방에서 밤새도록 꼬박 글루건과 씨름하면서 골판지 삼단케이크 만들기에 집중했다. 초콜릿을 채우고 뚜껑을 닫은 뒤 큰 상자부터 층층이 쌓아 올리고 굵은 붉은 리본으로 동서남북을 묶어 꼭대기에 예쁘게 매듭을 짓자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밤새도록 몰두하느라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들인 정성이 아까워서라도 꼭 케빈에게 전달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결국 삼단케이크 초콜릿이 든 큰 쇼핑백을 들고 학원길에 나서고야 말았다.




긴장으로 머리가 하얘질 만큼 두근거리는 생애 첫 고백을 앞두고 수업 따위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할까? 하지 말까?’라고 천사와 악마가 양극단에서 끝나지 않는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케빈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학원이 끝난 뒤 학교에 들를 예정이라는 정보를 얻어냈다. 이때다 싶어서 마침 나도 학교에 들를 일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넸고 그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남은 수업시간 동안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을 쳤다. 수업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리는 없었다.


수업은 끝이 났고 우리는 나란히 거리를 걸었다. 정문을 지나쳐 그의 과가 있는 건물에 다다랐다. 2월의 캠퍼스는 개강 전이지만 졸업식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그 외 개강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점차 활기를 띠고 있었다. 꽃과 나무들도 겨우내 웅크렸던 몸을 풀고 싹이 움틀 생명의 기운을 뿜어냈다. 멍한 정신 상태로 싱그러운 분위기에 취한 탓인지 갑자기 용기가 났다.


“저…… 이거 드리려고 만들었어요. 오늘 밸런타인데이잖아요.”


망했다. 그는 당황하고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오히려 말을 뱉으니까 뭔가 속이 후련했다. 민망했지만 쪽팔리진 않았다. 케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일단은 삼단케이크 초콜릿을 받아 들었다. 나와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건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의사는 확실했다. 분명한 ‘거절’이었다. 맥이 탁 풀렸다. 별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고민하고 긴장했나 싶었다. 생애 첫 고백에서 차인 기분은 뭔가 허탈하면서도 스스로가 한 뼘 정도 성숙한 것 같았다. 아직 공기는 차갑지만 캠퍼스에 깃든 봄기운은 홀로 남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이제 더 이상 혼자서 끙끙 앓으며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의미 부여해서 고민을 하거나 ‘연락을 해볼까 말까’ 갈등하지 않아도 되었다. 삼단케이크 초콜릿에 정성을 다 쏟은 모양인지 미련도 별로 남지도 않았다.


두어 달을 그토록 설레어 놓고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내가 정말 그를 좋아했던 걸까?’, ‘그냥 고백을 한다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라는 합리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쳇, 자기가 아쉽지 내가 아쉽나?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데. 평생 후회해라. 나는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살 거다.’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려 저주로 무장한 정신승리 주문을 속으로 되뇌었다. 고백을 하면 결과는 두 가지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거나. 이처럼 단순한 원리를 머리로 이해는 하지만 차였을 때 씁쓸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은 나는 쫑파티에 참석하지 못할 터였고 그와는 학부도 아예 달라 연락해서 약속을 잡지 않는 한 앞으로 만날 일은 없었다.




케빈을 다시 만날 일이 없으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개강 며칠 뒤 웬일인지 그가 먼저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밥을 한 끼 사고 싶다는 용건이었다. 이건 무슨 의미지? 싶으면서도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했다. 나는 내심, 차였어도 고작 그런 일에 연연하지 않고 멋지게 잘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다시 만난 케빈은 그대로였다. 몇 주 만에 사람이 달라지는 게 더 이상하긴 하다. 우리는 독특하게 새벽, 해돋이, 노을, 꿈 등 하루 일상을 메뉴명으로 정한 학교 앞 작은 돈가스 가게에서 식사를 했다.


대화 중에 삼단케이크 초콜릿 이야기도 등장했는데 케빈은 가보로 간직하며 대대손손 물려주겠다는 농담을 건넸다. 그가 내 선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고마움을 식사로 보답하고 있다는 따뜻한 마음도 느껴졌다. 우리가 연인이 될 인연은 아니었지만 내가 고백을 한 상대는 생각보다도 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다. 나를 찬 사람과 마주 앉아 같이 식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의외로 좋은 시간이었고, 내 인생에서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예상대로 이후 학교에서 그와 스치듯이라도 마주친 적은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매년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가 되면 케빈이 생각난다. 그도 나처럼 잘 살고 있는지. 삼단케이크 초콜릿은 이미 버려졌겠지만 혹시나 정말 농담처럼 아직 가보로 간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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