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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02. 2021

사람들은 정말 책을 안 읽을까?

경이로운 책 낭독회 풍경

새 학기 초는 늘 긴장된다. 담임 선생님은 어떤 성향인지, 반 친구들은 어떤 아이들인지 전부 낯설다. 무엇보다 이때 친해진 친구 몇 명과 학년이 끝날 때까지 주로 어울리기 때문에 어떤 무리에 속하는 게 좋을지 탐색전을 벌인다. 그런데 보통은 처음 짝꿍이 된 아이, 앞뒤 자리에 앉은 친구와 짝짜꿍이 맞을 확률이 높다. 통성명하고 수다를 떨다가 한 친구의 부모님께서 제과점을 운영하신다고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마치 짠 듯이 ‘좋아하는 빵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라고 한목소리로 부러움을 나타낸다. 하지만 정작 그 친구는 빵이 물린 지 오래되었다며, 남은 빵이 아니라 갓 구운 신선한 빵을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제빵사인 친구의 부모님도 처음 만난 누군가가 비슷한 반응을 보이면 매번 비슷한 대답을 해왔을 것이다.


여러 토크쇼와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교사도 자신의 아이를 직접 가르치지 않고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시키고, 요리사도 집에서는 간편하게 라면을 끓여 먹거나 배달 음식을 선호하며, 건축가도 자신이 지은 집이 아니라 규격이 정해진 아파트에 산다. 단편적인 생각과 달리 직업의 세계는 훨씬 내밀하고 복잡하다. 그럼, 출판업에 종사하면 과연 책을 많이 읽을까?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업무와 관련된 글(원고)은 많이 읽지만, 정작 책 읽을 시간은 늘 부족하다. 처음 출판사에서 근무했을 때는 원고 검토가 마냥 신기하고 재밌었다. 출간 전 날 것의 원고를 읽는 행위는 작가가 숨겨놓은 지극히 사적인 보물상자를 훔쳐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보물 목록을 일일이 장부에 기록하고, 그 가치를 발견해 매일 공식적으로 보고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금이 아닌 글이 쏟아지는 화수분은 멈추는 일이 없기에, 자칫 활자에 질식하지 않도록 스스로 잘 조절해야 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만의 원칙을 세웠는데, 주말에는 무조건 읽고 싶은 책을 읽기로 했다. 업무와 관련된 글 즉, 원고와 참고용 도서는 평일에 집중해서 읽은 뒤 ‘끝내기’로 했다. 업무용과 취미용 책으로 구분하니 비로소 일과 휴식의 번듯한 경계가 생겼다.


작가 행사도 마찬가지로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날 지경이라, 출판업에 종사한 후 다른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다. 단 한 번 예외가 2019년 4월, 코엑스 오라토리움에서 열린 김영하 신간 에세이 <여행의 이유> 출간 기념 낭독회였다.




북콘서트, 북토크도 아닌 낭독회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예전에 작가는 오로지 글로만 독자와 소통하던 시절, 마케팅의 일환으로 김영하 작가님이 독자와 대면하는 낭독회를 처음 개최했고, 이후 각종 작가 행사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최초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그즈음부터 작가들이 독자를 만나 이야기하는 문화가 확산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코엑스 오라토리움은 대규모 행사장이기 때문에 이 행사의 기획, 운영, 홍보 등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 내가 준비 중인 도서 마케팅에도 많은 부분을 참고할 수 있을 듯했다.


온라인 서점 예약판매 시작에 맞춰 책을 구매하고, 구매 혜택인 낭독회 초대권을 신청했다. 직접 기획하고 실행한 도서 프로모션을 셀 수 없는데, 막상 구매자 입장으로 선착순 경쟁을 하려니 은근히 긴장되었다. 나에게는 일상 업무인 작가 행사를 누군가는 달력에 날짜를 표시하고 두근거리며 손꼽아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다.


평일 저녁 7시 30분에 시작된 낭독회는 말 그대로 작가가 책 속 문장을 낭독하는 행사였다. 김영하 작가와 오은 시인이 책에 얽힌 일화와 생각을 1시간가량 주고받은 뒤, 김영하 작가님의 긴 낭독이 이어졌다.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라디오를 듣는 듯 가만히 눈을 감고 작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를 떠올리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유학을 마치고 다시 케냐로 돌아온 마사이 족장의 아들 이야기로 시작하던 담담한 낭독과 안온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사실 이날 행사장 밖 광경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여유롭게 7시 즈음 강당에 도착하니 아직 관객 입장 전이었다. 강당 앞은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는데, 놀랍게도 일찍 도착한 100명 남짓한 이들은 대부분 손에 책을 펼쳐 읽고 있었다. 건물 기둥에 편하게 기대앉거나 입장 대기 줄에 서 있는 등 자세는 제각기 다르지만, 분명히 스마트폰이 아니라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이것은 책 판매장과 다름없는 도서 축제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점점 글을 읽지 않고 영상이 대세인 시대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짧은 순간, 책이 지배하는 경이로운 세상을 목도했다.




책을 꼭 읽어야 할까. 세상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거나 ‘책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라는 당위적인 말에 부담감을 느껴서 책 안 읽는 이들은 더욱 독서와 거리를 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말 책을 읽지 않을까. 출판계는 단군 이래 늘 불황이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좀 이상했다. 실수요자인 도서 구매자가 적다는 의미인데, 불황의 이유를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 탓을 하는 것으로 들렸다.


전반적인 불법 MP3 파일 유포에 관한 2003년 마이클 잭슨 인터뷰 중에서

“불법으로 유통하고 다운로드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보다 이 문제에서는 아티스트의 책임이 크다. 나는 지금껏 한평생 음악을 하면서 성인 솔로로서 낸 앨범이 고작 6개밖에 안 된다. 왜 그런 것 같으냐. 완벽한 앨범을 만들기 위해 한 앨범을 만들 때마다 5~6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한두 곡의 히트곡을 빼고는 앨범의 나머지 공간을 시시껄렁한 곡들로 채워 넣는다. 하지만 나는 항상 한 앨범의 모든 곡들이 최고여야 한다고 생각한다(웃음).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앨범을 만들란 말이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적어도 사람들이 차를 몰고 레코드점에 가서 앨범을 골라 들고 지갑을 열어 계산하는 수고를 생각해라. 그리고 그 수고를 감수할 가치가 있는 앨범을 만들어라.”


온라인 스트리밍이 보편화하면서 2003년과 현재는 콘텐츠를 배포하고 소비하는 행태가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터뷰에서 앨범 대신 책을 넣어도 시사점은 같다. 영상의 문법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실제로 책을 점점 멀리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코엑스에는 막간의 시간에 스마트폰이 아닌 책에 몰두하던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책도 재미있으면,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 평범한 인간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니까. ‘독자는 언제나 옳다’라는 믿음은 출판 마케터로서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나 스스로 역할을 찾고 실행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취향은 갈려도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은 비슷한 법이니까. 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면 삶은 더 담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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