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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y 21. 2021

애도의 계절

죽은 이를 추모하며

올해 어버이날에는 부모님께 대형 꽃바구니를 깜짝 선물해 드렸다. 생각해보니 예순 살이 넘도록 엄마는 드라마에서 흔히 보셨을 꽃 배달 서비스 한 번 누려보지 못하셨다. 물론, 내가 꽃가게에서 픽업해 전해드려도 되지만, 배달원이 ‘꽃 배달 왔어요’라며 뜬금없이 꽃을 한아름 안기는 감동과는 결코 같지 않다. 지금도 늦었는데 더 늦기 전에 깨닫고 깜짝 꽃바구니를 선물해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매년 5월이면 어린이날을 축하하고,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감사한 스승을 떠올린다. 그런데 나에게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이젠 애도(哀悼)의 달이고 아마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 같다. 4월과 5월에 우리나라에 두 가지 큰 사건이 벌어진 뒤, 화창한 기쁨의 계절에 마음 한편에는 슬픔의 골짜기가 자리 잡았다. 봄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가슴이 먹먹하고, 슬픔의 골짜기는 점점 깊어진다. 어제 먹은 점심도 생각이 나지 않는데, 어느 해 4월 16일과 5월 23일에 내가 무엇을 하다가 각 소식을 접했는지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기억과 어릴 적 가슴에 남은 역사적인 사건을 한 번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 2014년 4월 16일: 파주 회사에서 오전에 도서 주문을 확인하고 정신없이 발주를 처리하고 있었다. 드넓은 사무실에 회계를 담당하는 선배와 나, 둘뿐이라 선배가 편하게 말을 걸어왔다. ‘수학여행 가는 학생을 태운 여객선이 바다에서 침몰했다. 다행히 탑승객이 전원 구조되었다’라고. 탑승 인원이 최소 몇백 명이라고 짐작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으나, 모두 구조되었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선배는 잠시 뒤, ‘사람들은 구조되지 않았고, 배 안에 갇혀 있다’라고 다시 소식을 전했다. ‘네? 다 구조되었다면서요? 오보였던 거예요? 그럼 학생들은요? 아직 갇혀 있다는 말인가요? 이미 시간이 꽤 흘렀어요. 그동안 구조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요.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실시간 뉴스 속 배는 이미 거의 가라앉아 선미 일부만 바다 위로 드러났다. 관련 기관에 사고가 신고된 지 몇 시간은 지났을 텐데, 구조 인력은 몇 명에 불과해 보였다. 제대로 구조가 이뤄지고 있는지, 과연 구조할 의지는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대체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 매일 저녁 뉴스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허망함, 무기력감에 눈물로 옷깃을 적셨다.



▶ 2009년 5월 23일: 기분 좋은 토요일 오전이었다. 유난히 날씨가 맑은 날이었다. 봄 햇볕은 따뜻했고 열어놓은 거실 창문 사이로 향긋한 봄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손에 꼽는 평화로운 아침에 여유롭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철컥’ 우유를 사러 슈퍼에 갔던 동생이 현관문을 여는 소리였다. 동생은 난데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대’라고 소식을 전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분이 갑자기 왜?’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런데 슈퍼에서 TV로 봤어’ 곧바로 TV를 켜니 부엉이 바위 어쩌고 하면서 동생이 말한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뉴스로 보도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벌어지지만, 2년 전만 해도 국가의 최고 권력자였던 사람이 갑자기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극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늦은 밤 몇몇 친구들과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조촐한 분향소에 조문하러 갔다.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별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으며,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줄을 서서 서너 시간을 기다렸다. 나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 어떤 정치인도 지지한 적이 없고, 노무현 대통령이 극적으로 당선된 제16대 대선 때는 투표권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안타까웠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채감을 느꼈다. 발인 날, A 언니와 함께 광화문 사거리 어느 건물의 화단 위에 올라서 있었다. 운구차를 향해 마지막 배웅을 하고자 그 일대를 가득 메운 노란 물결은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다.



▶ 2004년 5월 14일: 고3 시절, 평소 짓궂은 장난을 일삼던 남학우 몇 명이 ‘이건 꼭 봐야 해’라며 갑자기 TV를 켰다. 어쩐 일인지 담임 선생님도 복도에서 교실을 한번 쓱 둘러보고는 별말씀 없이 다시 교무실로 향하셨다. 텔레비전에는 헌법재판관 9인이 등장했다. 20여 분간 대통령 발언이 헌법에 명시한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목조목 따졌다. 긴장되는 순간, 마침내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탄핵 결정에 필요한 재판관의 정족수(定足數)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주문, 이 사건 심판 청구를 기각한다’ 2004년 5월 14일은 헌법재판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선고를 내린 날이다. ‘대통령 탄핵 기각’이라고 큰 글씨로 자막이 흘러나왔다. TV 시청을 주도하던 친구들을 중심으로 ‘와!!!!!’ 하고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과연 우리가 이 판결의 의미를 알고서 환희에 가득 찬 소리를 질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고 의견을 표출한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 2003년 3월 21일: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다음 날이다. ‘美, 바그다드 4차례 공습’ 신문 1면에서 그렇게 크고 굵은 헤드라인은 처음 보았다. 뉴스에서 미국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북한, 이란을 악의 축(an axis of evil)으로 규정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연설을 하더니, 평화를 염원하던 21세기에 전쟁이 정말로 일어났다.


밤늦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자막이나 내레이션 없는 생중계 화면에서 멈췄다. 칠흑 같은 어둠을 작은 도시의 불빛이 점처럼 밝히고 있었다. 갑자기 슈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핵폭발이 일어난 듯이 거대한 불빛이 번쩍 일었다가 사라졌다. 내가 뭘 본 거지? 이라크 전쟁이었다. 전쟁을 전 세계에 생중계한다고? 포근한 잠자리에 들려던 참인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미사일 공습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멀리서 촬영한 실제 전쟁은 의외로 적막했고, 긴박하거나 끔찍해 보이지 않았다. 펑 소리를 내며 산발적으로 미사일이 터질 때를 제외하면 무척 고요했다. 영화를 감상하듯이 동요 없이 영상 속 전쟁을 평가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섬찟했다. 비현실적인 현실 전쟁 장면을 응시하다가 잠이 쏟아져 눈이 스르륵 감겼다.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5년 6월 29일, 나는 10살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인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했는데, 이 비극적인 사건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사건은 나중에 어른들의 말씀이나 수업 시간, 여러 매체에서 들어서 알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분홍색 건물이 무너져서 철근콘크리트 잔해가 그대로 노출된 상품백화점 붕괴 사고는 확실히 기억난다. 방송 뉴스에서 매일같이 사고 현장을 비추고 생존자 구조에 진전이 있는지 보도했다. 극적으로 생존자를 발견했을 때, 무사히 구출하기를 다른 국민들처럼 나도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바람과 달리 너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생을 달리했고, 구출한 생존자는 최종적으로 몇 명에 불과했다.




세상은 아름답고 때로는 잔인하다. 선의로 물들여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데, 예기치 않은 잔인한 비극이 들이닥치고는 한다. 전혀 상상조차 못 한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도저히 말이 안 된다고 현실을 부정한다. 역설적으로 무고한 죽음은 세상에 늘 변화를 불러왔다. 선의로는 진척이 더디던 일들이 억울한 죽음 뒤에는 단번에 야속한 꽃을 피운다. 말이 없는 죽은 자가 세상에 좋은 씨앗을 흩뿌린다. 때때로 그 희생과 아픔을 애도해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나에게는 5월이 애도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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