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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06. 2021

섣불리 한계를 결정짓지 말기

아쉬탕가 요가와 포인세티아

여느 때처럼 오후 7시 10분 요가 수업에 참석했다. 내가 들을 수업은 케어링 요가인데 다른 때와 달리 수련장 입구에 케어링을 준비해 놓지 않았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지만 내 멋대로 ‘새해 첫 수업이라 그런가 보다’라고 비논리적인 이유로 자기 합리화를 마치고 가볍게 몸을 푸는 데 집중했다. 모름지기 새해에는 작심삼일로 끝날지언정 운동(다이어트), 어학 공부, 금연 등 새로운 결심을 하기 마련이니까. 케어링 수업에도 변화가 생겼구나, 라고 잘못 넘겨짚었다.


마침내 수업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수강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합장한 손을 하늘 위로 뻗더니 곧 허리와 고개를 숙여 무릎에 맞닿았다. 바닥에 배를 대고 일자로 눕고는 이내 허리를 약 90도 각도로 뒤로 젖혀서 쭉 늘렸다. 그다음엔 발과 손바닥으로 바닥을 지지한 채 허리와 엉덩이를 높이 들어 올려서 옆에서 봤을 때 삼각형이 되도록 동작을 취했다. 다시 팔을 발 앞으로 가져온 뒤 두 손을 합장해 하늘로 뻗어 처음 동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다시 허리와 고개를 숙여 무릎에 맞닿고, 바닥에 배를 대고 일자로 누운 뒤 허리를 90도 각도로 뒤로 젖히고…… 일련의 동작을 몇 차례 반복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케어링 요가 수업에 들어왔는데 무슨 일이지? 올해부터는 맨손 체조로 워밍업을 하는 건가? 그런데 다른 수강생은 왜 이렇게 잘하는 거지? 라는 의구심을 안고 일단은 나도 곁눈질로 사람들을 보고 얼추 비슷하게 따라 했다. 물 흐르듯이 동작을 워낙 자연스럽고 빠르게 진행해서 숨 쉴 틈은커녕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 해보는 격렬한 요가 동작은 계속 이어졌고 수업을 마칠 때까지 케어링은 주어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내가 참여한 수업은 아쉬탕가 요가였다. 새해에 시간표가 바뀌었는데 직원의 실수로 나는 문자 안내를 받지 못해 사달이 벌어졌다. 가뜩이나 뻣뻣한 몸으로 난데없이 정통 요가 동작을 따라 하느라 한 시간 동안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모른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유연성을 보완하는 벽돌 모양 스펀지 지지대를 갖다 주셨다.


요가를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워낙 운동을 멀리한 터라 스트레칭과 근육 이완을 위주로 하는 수업을 골라 들었다. 힐링 요가, 테라피 요가, 케어링 요가, 골반 교정 등 사실, 요가를 한다고 말하기는 민망한 비교적 쉬운 초급 수업이었다. 아쉬탕가 요가, 빈야사 요가, 하타 요가, 플라잉 요가 등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수업은 ‘운동에 습관을 들이고 근육이 좀 붙었을 때 해야지’라며 일부러 기피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아쉬탕가 요가 수업을 별안간 체험했다. 착오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힘들고 어려운 수업은 미루고 미루면서 계속 초급 요가를 고집했을 것이다.


어쩌다 체험한 아쉬탕가 요가는 확실히 난이도가 높았지만, 내 운동 역량에 맞춰서 무리하지 말고 지금은 안 되는 동작을 거의 포기하더라도 초급 요가보다 운동량이 많고 나의 신체와 정신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운동 강도가 높은 만큼 확실히 더 고통스럽고, 다른 사람은 다 하는 동작을 나만 못할 때 썰물처럼 밀려오는 자괴감과 수치심을 견뎌야 했지만 말이다.




그보다 며칠 전인 크리스마스에는 포인세티아 화분을 하나 선물 받았다. 포인세티아는 녹색 잎 위로 빨간색 잎이 꽃처럼 방사형으로 자란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식물이다. 실제로 대부분 크리스마스 6주 안에 판매되고, 영어로는 크리스마스 플라워(Christmas flower)라고 부를 만큼 이 시기에는 꽃집, 카페와 음식점, 길거리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느 날 배우자와 외출을 했다가 꽃 가게에 진열된 화분을 보고 ‘나도 포인세티아 한번 키워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 몇 개 없는 식물 관리도 벅차고, 식물을 더 키우기엔 공간도 여의치 않아서 언젠가 이사 가면 키울래’라고 지나가듯이 말을 했는데, 남편은 기억하고 있다가 선물을 해주었다. 깜짝 선물이면서 그가 나와의 사소한 대화에도 귀를 기울였다는 생각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려와 달리 집에 크지 않은 화분 하나가 놓일 공간은 있었고, 포인세티아 덕분에 집안에서 제법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느껴졌다. 바닥이 막힌 화분에서는 처음 식물을 키워보는데, 물 조절을 잘하지 못해서 뿌리가 썩거나 잎이 말라서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달리 포인세티아는 잘만 자랐다. 봄에는 서로 경쟁하듯이 줄기마다 새싹이 돋아서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을 안겨주었고, 어느덧 여름에는 단출했던 처음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잎이 무성해졌다.




부족하나마 격렬한 아쉬탕가 요가 한 시간을 잘 마쳤고, 포인세티아도 별 탈 없이 잘 키우고 있다. 나는 얼마나 겁쟁이에 핑계꾼에 불과한가. 더 많이 알고 노련해진 만큼 앞장서서 더 적극적으로 해내기보다 갈수록 요령과 핑계만 느는 것 같다. 지금 주어진 조건에서도 나 자신, 가족, 지인들, 잘 모르지만 함께 국가와 지구 공동체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텐데,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라면서 먼저 할 수 없는 이유에 수세적으로 천착하는 것 같다. 힘들고 불편하고 귀찮아지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요즘처럼 이기적이고 게을러지고 싶을 때는 아쉬탕가 요가와 포인세티아를 떠올리려고 한다. 운동 한 시간을 견딘 뒤 얼마나 개운하고 성취감을 느꼈는지, 줄기가 굵어지고 새싹이 돋는 생명을 보면서 얼마나 경외감을 느꼈는지를 기억해내려고 한다. 섣불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결정짓지 말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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