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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pr 13. 2022

회피형 남편이 보낸 이혼 징후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무시했던 걸까

전남편이 회피형 애착 경향이 짙다고는 이혼 진행 중에 우연히 온라인에서 한 심리학자가 설명하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다. 다른 말로는 무시형 불안정 애착이다. 참고로 나는 집착형 불안정 애착에 가까운 듯하다. 집착형이라고 하면 연애할 때 흔히 연락에 집착하고 상대방이 연락이 잘 되지 않으면 과도하게 불안해하는 사람은 떠올리는데, 오히려 나는 연락에는 좀 무딘 편이라서 그래서 전남편과 이 부분은 심히 잘 맞았던 것 같다. 인간의 심리는 매우 복잡해서 단적으로 늘 ‘이렇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회피형과 불안형이 은근히 잘 맞는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지만. 한편, 사실 많은 인간관계 특히 연인관계에서는 그 사람의 어떤 좋은 면모 때문에 관계를 형성하다가 결국에는 그 면모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긴 하다.


이번 주제는 ‘회피형 남편이 보내는 이혼 징후’이다. 상대방의 직접적인 이혼 요구 자체는 급작스러웠지만 돌이켜보니 우리 관계는 1년 반여 전부터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상대방이 워낙 간접적으로 아주 애매한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이 떠나고 있다고 표현해서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는 나도 느꼈지만 그것이 이혼으로까지 이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아서 좀 더 빠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부부인데 어떻게 그걸 그렇게 모를 수 있냐고, 눈치가 너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약간 겁도 나지만, 눈치챌 만한 상황인지 아닌지 글을 읽으며 한번 생각해 보셔도 좋을 것 같다.


참! 그전에 흔히 회피형이라고 하면 연락 두절을 떠올리는데, 그건 아마도 자신에게 연락이 부담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부터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상대방이 ‘왜 이렇게 연락을 하지 않느냐’라며 상대방이 더 연락(구체적으로는 문자)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고, 연락 때문에 내가 불안감을 느끼거나 갈등을 겪은 적은 없다. 내가 일부러 연락을 회피하지는 않았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아날로그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고, 문자나 메시지 주고받는 행동을 여러모로 불편하다고 느꼈다. 무언가에 집중하다가 끊기는 상황도 원치 않아서 전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는 소통 방식을 선호했다.




일단 회피형은 핵심은 ‘갈등 회피’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점 때문에 세상에서 부모, 형제 아무도 없이 단 둘이서만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배우자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여전히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다. 점점 개선되어가는 추세이지만 전통적인 보수적 결혼관과 가족관이 남아 있어서, 아직도 시가에서 며느리에게 더 요구 사항이 많고 심지어 대우받기를 바라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새 식구(며느리)와 기존 식구(시가) 사이에서 크든 작든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에 하나밖에 없는 배우자로서 남편의(물론, 아내도 마찬가지이고) ‘탁월한’ 조율 능력은 필수이다.


그런데 회피형은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갈등 자체를 회피하거나 나름 노력은 하지만 조율 능력이 떨어지고 그 과정에서 먼저 나자빠지기 때문에 부부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회피형의 또 다른 핵심은 갈등을 회피하는 기저에는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예쁨 받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열등감’과 ‘자격지심’까지 합세하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다. 나는 이 심리를 깨닫고 이런 관점에서 상대방을 바라보기 전에는 상대방의 수많은 말과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수많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일관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이혼 과정에서 하도 기가 찬 많은 말을 들었지만, 그중 대표적으로 어이없는 말은 ‘나는 이혼 뒤에도 너만 원한다면 너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였다. 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니고. 나와는 결혼을 유지하려는 노력 한 번도 할 수 없을 만큼 ‘갈 데까지 간 관계’라서 이혼 의지가 확고하고, 혼자서 이혼을 생각한 지 2년은 되었다는 사람이 누구를 놀리는 것도 아니고. ‘너는 여전히 멋지고 좋은 여성이야’라는 개소리도 한 세트였다.


내가 너무 충격받아서 몇 날 며칠 밤낮으로 실신할 만큼 우는 모습을 봤고, 신경안정제 처방받고, 상담치료까지 하는 거 알면서도 한다는 말은 고작 ‘다 나아질 거야’, ‘다 지나갈 거야’가 전부였던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소시오패스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는데, 이미 자신은 나에게 최악의 쓰레기, 인간 말종인데도 자신은 끝까지 나에게 나쁜 사람이고 싶지 않고,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거다. 성인으로서 ‘머리’가 있다면 자신이 한 행동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저런 말과 행동이 가능한가 싶은데,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했고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상황의 맥락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어른이 정말로 있다. 좋게 포장하면 모든 인간관계에 미숙한 아이 같은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상대방은 결혼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 이혼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도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결혼생활 중에 자신의 부모와 나 사이에서 맥락도 모른 채 나름은 갈등을 조율하려고 노력하느라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리라고도 생각한다. 다만, 나는 조율을 시도했다는 사실도 이혼을 앞두고 알았고, 무슨 내용을 어떻게 조율했는지는 제대로 설명을 들은 적이 없어서 전혀 알지 못한다.




2. 나에게 이혼 요구를 하고 며칠 뒤 친정 가족 행사가 있었는데, 뻔뻔하게도 이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해서 ‘이건 또 대체 뭐지?’ 이해불가였다. 그가 이혼 요구를 한 뒤에 며칠 생각도 정리하고 의논할 겸 친정에 머물렀는데 이때 내가 이혼에 관해서 우리집에 이야기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왜냐하면 내가 우리 부모님께서 현재 상황을 다 알고 계신다고 하니까 바로 행동을 싹 바꿔서 가지 않겠다고 나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우리 부모님께서 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잘 대해주시니까 상대방은 아무 생각 없이 우리 부모님이 편하고 그저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3. 상대방 가족이 또 우리 가정에 넓게 보면 금전적으로 부담을 주는 일이 발생해서 해결을 요구하자 상대방이 직접적으로 이혼 요구하기 6개월 전 즈음 ‘네가 너무 힘들면 말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몇 날 며칠 심란하다가 내가 직접적으로 ‘지난번에 한 말 기억하느냐. 그 말은 내가 이혼을 원하면 이혼을 해주겠다는 말이냐’라고 물으니 ‘그렇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단 결혼생활 중 ‘이혼’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건 처음이라서 매우 충격받았고, 사실 상대방의 마음은 이미 이때 완전히 떠나고도 남았을 텐데…… 나는 어리석게도 결혼과 이혼의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고 착각했다. 이 얼마나 비겁한지. 자신이 이혼을 원하면 원한다고 명확하게 의사 표시를 해야지. 힘없는 목소리로 자칫 스치는 말로 오해할 만한 뉘앙스로 ‘네가 너무 힘들면 말해’라니. 나를 위하는 척하면서 자신은 나쁜 사람 되기 싫어서 내 입에서 먼저 ‘이혼하자’라는 소리가 나오길 기다렸던 거다. 그런데 나는 속마음도 모르고 어떻게든 관계를 개선해보겠다고 내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애써 상대방에게 더 신경 쓰고 맞추려고 했으니. 얼마나 싫고 힘들었을까. 정말 사람 우습게 만드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4.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사이가 좋을 때 한 번은 ‘당신에게 힘든 일이 있는데 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다가 그 사실을 나중에 내가 알게 된다면 나는 죄책감이 들 거다. 우리가 부부인데 그런 이야기도 터놓지 못할 정도로 내가 어려운 사람인가 싶어서 자괴감이 들 거다. 당신의 성격은 알지만 나를 사랑한다면 이런 배려 정도는 해달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때 전혀 생각지 않은 ‘자신은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라는 답변이 돌아온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가족이니까 힘들면 기대고 하는 거다. 그게 가족이다’라고 말했는데, 상대방에게 그 힘든 일이 나에게서 마음이 떠난 것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무슨 인간관계나 원가족의 문제, 질병, 그 외 사건사고일 줄 알았지 세상에, 그 인간관계에 내가 해당할 줄이야.




5. 우리는 겨울에 이혼을 했는데 여름부터 실질적으로 나는 안방에서, 상대방은 거실에서 생활하면서 각방 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것도 눈치를 챌 수 없었던 이유는 상대방이 워낙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이면 종종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서 혼자 잠을 자곤 했다. 나는 자는 내내 에어컨 바람을 쐬면 감기에 걸리곤 해서 방에서 잤고. ‘너무 더워서 이번 여름에는 거실에서 자겠다’라고 양해를 구한 말이 각방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래, 수면의 질은 중요하니까. 잠은 편하게 자야지’라고만 생각했다. 결혼할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리 싸우더라도 ‘무조건 잠은 같이 자기’로 한 굳은 약속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깨달은 건 여름이 지난 뒤 한참이 지나서였다. 더는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되는 가을 중반에 이르러서 ‘당신의 자리는 여기라고. 언제든지 돌아오라’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그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에둘러 말해서 사람 바보 만드는 데는 타고났나 보다.




그 외에 퇴근 후 식사할 때 스마트폰만 쳐다보기, 모처럼 같이 자겠다고 거실로 나가서 옆에 누웠는데도 나는 투명인간 취급하고 스마트폰에만 집착하기, 운동 나갔다가 소나기에 비를 흠뻑 맞고 집에 돌아왔는데 닦으라고 수건을 건네주기는커녕 ‘어차피 바로 샤워하지 않느냐’라며 멀뚱히 쳐다만 본 일, 마지막 명절에 대중교통을 타고 같이 우리집에 가는데 처음으로 손을 한 번도 잡지 않은 일, 심지어 내 생일에 같이 케이크 자르기도 싫었는지 네 조각으로 나뉜 조각 케이크를 사 들고 온 일, 그것도 전날에 친구 집에 갔다가 정오 즈음 와서 내가 직접 미역국 끓여서 내 생일상 차리는데 자신은 식사를 이미 했다면서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한 일 등 돌이켜보면 수많은 이별 징후가 있었는데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도 있었고, 나도 자존심이 상해서 애써 서운한 마음을 감추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운한 마음을 내비쳤는데도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기도 했고, 내비치지 못하도록 철벽을 쳐서 더 표현을 못하기도 했었다. 그냥 상대방이 회사일이 힘들고, 오늘은 다른 데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어떻게 사람 관계가 게다가 부부인데 관계가 늘 좋을 수만 있느냐고 애써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하나씩 열거하니 ‘내가 뭐가 부족해서 왜 저런 취급까지 받으면서까지 모지리 같은 인간에게 애정을 갈구했나’ 싶어서 마음이 참 쓰라리고, 내가 참 안 됐었네…… 나 심지어 상대방에게 ‘자신이 처음부터 나에게 너무 잘해줘서 내가 자신에게 고마워할 줄 모른다’라는 막말까지 들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내 가치와 고마움을 모르는 게 누군데. ‘참 고생했다, 진주야. 그리고 정말 잘했다, 진주야’라고 나 자신을 다독여주고 싶은 밤이다.




한편, 저런 상황에서도 서운한 감정을 알아서 추스르고 나 또한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을 애써 무시한 채 또 묵묵히 내 할일을 해낸 나는 자존감이 높은 걸까. 나를 막대하는데도 참고 상황을 감내한 나는 자존김이 낮은 걸까. 이유를 불문하고 당시에는 헤어짐이 나에게는 너무 두려웠다는 것, 내 감정을 이성으로 제어해서 직시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나답지 않게 나도 문제의 본질에 직면하기을 회피했다는 건 알겠는데, 내 자존감도 바닥이었던 걸까. 그 반대인 걸까. 나도 잘 모르겠는 내 안의 모순성이 너무 많다.




'극과 극은 통한다'라던데. 내 결혼생활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이해심이 너무 많아서 상대방이 행동 하는 대로 거의 다 그냥 두고, 예를 들면, 상대방이 금요일 퇴근 후부터 일요일 잠들기 전까지 컴퓨터 게임, 게임 방송 등에 몰입해도 '컴퓨터 너무 오래 한다'라고 4년 동안 한번도 말한 적이 없다. 그저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 거겠지, 연애할 때도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하는 줄 알고 있었으니까, 골프나 낚시처럼 비싼 취미보다 낫잖아 라고 생각했고, 속으로는 너무 꼴보기 싫었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인정해주었다. 그러면서 내 자존감은 내가 다 알아서 챙기고. 나중에는 어느 정도였느냐면 이 상황이 너무 익숙해지니까 상대방이 이불 정리만해도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이가 없지만. 그랬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4년이나 끌고왔다고 확신한다. 그랬는데도 고맙다는 소리는커녕 자신의 부모에게 잘 못한다고 이혼하자는 소리를 듣는 결혼이었다. 나는 상대방이 결혼 전부터도 심한 무기력증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긍정적인 사람도 이런 환경에서 4년을 지내니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은 더 빠르게 전염이 되어서인지 나도 점차 무기력증이 찾아왔던 것도 같다.


지금 이런 깨달음도 다 이 결혼생활을 했기에 알게된 것들이지만 우리 각자의 인생은 더없이 소중하니까. 내 이런 구체적인 경험이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이런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살 필요는 없으니까 세상에는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 많으니까, 또 이런 극단적인 경험이 아니더라도 각자 감당해야 할 몫의 슬픔과 아픔도 많으니까, 이런 상황이 우려되는 현실에 처한 분들께 간접적으로나마 반면교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2020년 브런치에 연재한 결혼 관련 글 중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던 글을 모아서 <드디어 며느라기 해방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크몽 전자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상징적인 의미였지 ‘진짜로’ 며느리에서 해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크몽 전자책에는 2년 동안 달라지고 깊어진 생각을 덧붙여 결혼에 대한 좀 더 예리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글을 기반으로 발전시키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결혼/부부/가족 나아가 이혼과 비혼에 관한 생각을 크몽 전자책으로 만나보세요!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 <드디어 며느라기 해방입니다> PDF 전자책 살펴보기: https://kmong.com/gig/394554


<전자책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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