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Apr 07. 2022

음악 하나 마음 편하게 듣지 못한 억압적이었던 결혼생활

익숙한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나다움을 갈망한 순간들

이혼을 한 지는 한 달이 좀 넘었고,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건(법원에서) 석 달 정도, 그 사람과 따로 산 지는 넉 달 정도 지났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옥 같은 고통 속에 있었는데, 지금은 신기하리만큼 많은 기억이 뿌옇게 흐려졌습니다. 그러니까 ‘과연 ○○○(전 남편 이름)라는 사람이 내 인생에 진짜로 존재했을까? 내가 결혼을 정말로 했던가? 전부 꿈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기억을 지워버려서 ‘이런 감정은 뭐지?’ 싶어서 좀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어쩌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있었던 현실을 부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정한다기에는 그동안 충분히 아파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확신하는 제 감정은 ‘그 사람 그리고 결혼이 내 인생에서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고 살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 사람과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한 결혼생활은 중요하지도, 크게 가치가 있지도 않았구나’라는 마음입니다.


그 사람을 향한 사랑하는 제 감정도 일찍이 사그라들었는데, 제 마음도 잘 모르고 외면한 채 ‘부부가 다투기도 하고 성격이 다 제각각이지. 그걸 맞추면서 사는 게 결혼이지. 점점 나아질 거야’라는 믿음(틀린 말은 아니죠)이자 회피하는 마음과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사람과 결혼생활에 집착했던 모양입니다. 제 무의식이라고 하더라도 부부인데 제 이런 마음은 그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 테고요. 그 사람을 감싸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제가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마음이 예전과 달리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아서 아마도 그 사람도 혼자 꽤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으리라고 이제는 제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졌는지 이런 생각마저 합니다. 상담 선생님께서도 제가 이혼 과정 내내 그렇게 힘들어하고, 정신적으로 전 남편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어느 순간 상실감이 너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니, 제가 어떤 측면으로든 현재 전 남편이 부재한 상실감을 크게 느끼고 있지는 않는 건 틀림없는 사실인 듯합니다.




이혼 이야기가 오갈 때 난생처음 혼자서 서울의 한 호텔에서 며칠 머물렀습니다. 당시에는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한 사람인데도 ‘그 사람이 꼴도 보기 싫다’ 이런 생각은 아니었고, 제가 꼭 마무리해야 하는 일을 처리해야겠는데,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도저히 일이 되지는 않고, 불안증 때문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어서, 밤이고 낮이고 마음 편하게 일하다가 언제든지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캐리어에 잠옷과 생활복, 수면 도구 등을 넣고 백팩에는 노트북과 충전기, 각종 전자제품을 챙겨서 집에서 멀지 않은 상암동의 한 낯선 호텔에 갔습니다. 배정받은 방 문을 여는데 그렇게 적막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적막함이 편안하고 제 생각은 더 또렷해졌습니다.


침대에 대자로 뻗어서 잠시 누워있다가 스마트폰을 집어서 옥상달빛의 ‘정말 고마워서 만든 노래’를 틀었습니다. 이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둘이 사는 집에서 4년 동안 제가 듣고 싶은 음악을 한 번도 마음 편하게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거의 이어폰으로 들었고 간혹 같이 식사할 때 음악을 틀어 놓을 때면 그 사람 취향인 음악이 아닐까 봐 매번 눈치를 살피고 조마조마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이 있을 때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거나 같이 들으며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두 번?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저에게 네가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스피커로 흘러나오게 들으라고,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고는 본인도 게임 방송을 이어폰으로 듣다가 왕왕 스피커로 흘러나와서 두 사운드가 겹치는 일도 잦았습니다. ‘나는 다른 감각보다도 소리에 민감한 사람이다. 이렇게 사운드가 겹치면 너무 괴롭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라고 말하면 그제야 다시 이어폰을 귀에 가져갔습니다. 이런 상황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저도 마음이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식사를 하든, 그 사람이 괜찮다고 말하든 간에 저희 집에서 둘이 같이 있는 동안 음악이 흘러나오는 일은 거의 없는 부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어느덧 이런 환경에 익숙해져서 그동안 제 감정을 억눌러왔는지도 몰랐는데, 혼자 있는 공간에서 스마트폰에서 제가 듣고 싶은 인디음악이 흘러나오는 게 뭐라고…… 눈물이 나고 그 순간이 그토록 감격스럽고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과 떨어져서야 비로소 제가 얼마나 억압받고 그 사람에게 애쓰고 애써서 맞추고 살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질릴 만큼 옥상달빛, 루시드폴, 정재형, 제이레빗, 에피톤 프로젝트, 장윤주, 루싸이트 토끼, 박지윤, 요조, 제주소년, 커피소년, 브로콜리너마저, 우쿠렐레 피크닉, 스텔라 장…… 등의 음악을 듣고 듣고 또 들었는데도 도저히 질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글로 정리를 하니 제 전 남편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제 자신밖에 모르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네요. 사실 표현만 다른 다 같은 말이네요.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 사람은 마음속 깊이에서 어떡해서든 사랑해야 할 아내인 저를 이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불만이 있으면 말로 표현해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러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그래서 떼쟁이 어린아이처럼 제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하고, 제가 좋아하고 행복한 일을 하는 게 싫고 그저 방해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그 사람을 향해서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마음이라서 이렇게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호텔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이제는 그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게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전적으로 믿고 아낌없는 사랑을 퍼준 하지만 내 마음에도 아랑곳없이 무참하게 배신한 ‘남편’과 더는 한 공간에서 지내는 생활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다행이라고 할까요. 이런 제 마음을 밝히고 당신이 하루빨리 나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급한 대로 내가 나가겠다고 말하자, 그 사람이 자신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떠나기 전날과 떠나기 직전까지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법원에도 가야 하고, 집도 처분하고, 아직 만날 일은 남았지만, ‘우리가 별거를 하는 순간 이제 이 결혼은 정말로 끝이다. 절대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몇 날 며칠 발품 팔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겨우겨우 같이 장만한 우리의 첫 번째 집, 이 빈 집에 가구를 들이고 블라인드도 달고 식물도 들이고 하나씩 살림을 채워 넣으며 밉든 곱든 우리의 지난한 추억이 서린 곳,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었던 그 마음, 이 모든 게 끝이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놀랐던 건 그 사람이 떠나면 공허하고 힘들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집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이제 자유구나!’ 싶은 해방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절로 미소 지어지고 콧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직전까지 그 사람을 붙들고 눈물콧물 빼며 엉엉 울던 게 무색하게 밝아진 모습에 제 스스로도 이중인격인가 싶을 만큼 당혹스러웠습니다. 게다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우리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고 있는 대형 결혼사진 액자를 신문지로 가리는 일이었습니다. 다시금 ‘아, 만날 그 사람이 자신은 나를 위해서 참고 포기한다고 말해서 그 말에 사로잡혀 살았는데, 나야말로 정말 많이 참고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았구나. 나야말로 이 결혼 생활이 정말로 힘들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 결혼생활 4년 중에 행복한 순간은 손에 꼽을 만큼이고,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지에 도착하면서부터 짙은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연애할 때와 달리 그 사람의 행동도 돌변했고요. 그런데도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그저 ‘이상하네? 그럴 리 없을 거야’라고 믿으며 오랫동안 문제를 외면했던 건, 그 사람이 성격적으로 저희 엄마와 비슷한 면모가 많기 때문이었다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저희 엄마의 아주 간혹 심각한 수준의 온갖 가스 라이팅(관련 글: 엄마의 이해할 수 없는 말들) 등에서 ‘나를 사랑하는 엄마가 그럴 리 없어’라고 오랫동안 믿으며 혼란스러워했듯이, 그 상대가 엄마에서 남편으로 바뀐 같은 상황에서 제가 경험하고 익숙한 대로 행동했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 특히 엄마(주양육자)와의 애착이 인간관계에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이야기를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전 09화 고정 수입이 불안한데도 이혼을 결심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