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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pr 06. 2022

엄마의 이해할 수 없는 말들

저희 엄마는 매우 선량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초등학생 때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께서 ‘진주야, 너희 어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시다’라고 말씀하실 정도이고, 명절을 같이 보냈던 오촌 당숙모께서도 ‘형님(우리 엄마를 지칭함), 저는 형님이 정말 좋아요’라고 말씀하셨고, 엄마는 성격이 유순하고 말수가 적고 사람들에게 잘 맞추는 편이라서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자식으로서 아주 가끔 엄마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뜬금포를 날려서 적잖게 당황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말을 강하게 하고 권위적인 사람이 어떤 차별적인 발언을 한다면 기분은 나쁠지언정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고 생각할 텐데요. 일관성이 있는 거죠. 그런데 엄마는 제가 알던 엄마가 할 만하지 않은 말이 엄마의 입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니까 ‘이건 뭐지? 내가 알던 엄마가 맞나?’ 싶은 상황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이라서 빈도가 잦지는 않고, 제가 서른이 넘은 뒤로는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을 때 그 발언의 부적절함을 조곤조곤 설명을 드리면 그 당시에는 납득을 하셔서 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의 이러한 태도가 저와 동생들이 성장하는 동안 일관적이지 않은 양육 태도로 나타나서 저희 삼 남매가 성격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매우 큰 혼란을 겪었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도 지대하게 미치고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다음 각 상황에서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이 부모라면 혹은 여러분의 부모님이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고 말을 할지, 저희 엄마는 어떤 사람일지 생각하면서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사위가 자신의 딸에게 시가에 잘하지 못한다며 이혼을 요구한 상황에서 딸이 호소하는 부당함에 공감하고 한참 잘 듣다가, 그래도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다’라는 말에 이어서 오랫동안 부부관계도 없었다는 딸의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한 말

- 그래도 남자는 정기적으로 풀어줘야 하는데. 영인이는 어떻게 참았다니.


2. 딸에게 결혼할 때 영인이가 어떤 남편이길 기대했는지 묻는 말에 딸이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그래도 아빠가 먼저 엄마에게 좀 지고 능글맞게 행동하면서 화해를 청하듯이 영인 씨도 연애할 때 따뜻하고 나에게도 잘 맞춰주니까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대답하나 또 뜬금없이

- 그런데 그건 알아야 한다. 엄마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계속 할머니를 모시고 있잖아. 엄마가 하는 게 있으니까 아빠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거야.


3. 딸이 전화로 한참 이혼하는 고통에 대해서 말하자 계속 공감하는 말을 하다가 또 난데없이

- 그래도 너 그건 알아야 돼. 네가 갑자기 성질부리고 할 때 상대방이 얼마나 상처받고 사람 미치게 하는지. 이건 꼭 말해줘야겠어. 너 그 예민한 성격은 정말로 좀 고쳐야 해. (관련 글: “진지하게 조언하는데 너 예민한 성격 좀 고쳐야 해”)조언

하는데 너 예민한 성격 좀 고쳐야 해

4. 이혼을 진행하면서 가족의 위로가 필요한데 일 때문에 한 달 반 만에 엄마 생신을 맞이해서 겨우 집을 찾은 딸이 아빠와 말다툼하자 ‘나는 그래도 가족에게 위로받고 싶어서 왔는데. 고작 내가 하는 말 듣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아빠는 술 먹고 끊임없이 아빠 말만 해야 하느냐’라고 절규하는 딸에게

- 너 그래도 아빠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5. 자식들이 10대 시절, 아빠가 과음한 날이면 어김없이 집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신세한탄을 늘어놓으며 가족들을 괴롭게 해서 아빠가 무섭고 싫다는 아이들에게

- 엄마도 결혼 전에 아빠가 술주정이 이렇게 심한 분인 줄 몰랐어. 엄마도 결혼 뒤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런데 어쩌겠니. 아빠잖아. 아빠가 현장 일이 너무 힘드셔서 그래. 술이 유일한 낙이 신 걸 어쩌니. 아빠는 자신이 이러는 걸 가족들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셔. (관련 글: 어렸을 때 내가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고?)


6. 10대 때 ‘엄마가 아빠와 이혼했으면 좋겠다고. 그럼 우리 삼 남매는 당연히 엄마 따라갈 거라고. 그냥 아빠 재산 절반 차지하고 더는 할머니며 아빠며 신경 안 쓰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물론, 꼭 이혼하시라는 말씀은 아니지만 그 정도 심정이라고’ 토로했을 때

- 엄마는 아빠랑 살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어떡하니. (이렇게 흐지부지)


7. 딸에게 남자 친구 없느냐고 묻더니

- 네가 남자 친구가 생기면 엄마가 참 잘해줄 텐데


8. 딸이 20대 중반에 첫 월급을 탔을 때

- 앞으로 월급을 받으면 엄마에게 맡기고 필요한 만큼 타서 쓰는 게 어때? 너는 이렇게 큰돈을 굴려본 적이 없고 낭비할 수도 있으니까 엄마가 잘 관리해 줄게.


9. 전 남편과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 전화로 또 뜬금없이 딸에게 남자 친구 학력을 묻고는 고졸자라는 말에

- 그건 말도 안 된다. 엄마는 무조건 반대한다. 결혼해서 살면서 그게 분명히 큰 걸림돌이 될 거다.


10. 동생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여자 레지던트가 배정되자

- 입원을 잘했는데 새파랗게 젊은 여의사가 배정되었지 뭐니.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별로 믿음이 안 가.


11. 딸이 결혼 2개월 뒤 첫 명절에 시가에서 시아버지, 시누이를 비롯해서 시할아버지, 시작은아버지와 시조카까지 신혼집에 오신다고 해서 '내가 왜 굳이 이런 걸 감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하는 딸에게

- 어지간한 일은 영인이가 하자는 대로 따르렴. 그냥 남편이 하자는 대로 좀 져주고. 우리 진주, 엄마 하는 거 보고 자라서 알아서 잘할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엄마의 간헐적인 발언을 한 번에 모아서 강하게 느끼실 수도 있는데요. 거의 30년에 걸친 그러나 간혹 저에게 충격을 주고 ‘이건 뭐지? 뭔가 이상한데?’ 싶었던 엄마의 말들입니다. 이런 의견을 엄마는 큰소리를 내거나 강하게 말하지 않고 조곤조곤 때로는 부드럽게 말씀하곤 하셔서 제가 더 엄마의 가치관이나 성격을 오랫동안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뭔가 좀 이상하고 찜찜한데? 이건 뭐지? 우리 엄마가 그럴 리가 없어. 이런 생각으로 제가 믿고 싶은 엄마의 모습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옛날 사고방식을 갖고 계시고 무지하게 보수적이고 남성을 더 우위에 두시고 심지어는 가스 라이팅도 서슴지 않는 분이신데 말이죠. 저희 엄마는 1960년 생이신데요. 맞습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에서 흔한 모습이기도 한데요. 다만, 엄마의 여러 특성 때문에 제가 아주 긴 시간 엄마를 잘못 파악하고 최근에야 엄마가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게 되어서 제 안의 이 간극을 메우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엄마의 이 각각의 발언이 어떤 심리와 배경을 내포하는지, 그리고 때때로 제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이어서 쓰려고 합니다.



브런치북 <부모님과 관계를 끊기로 했습니다>를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책으로 출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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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 서점을 확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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