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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23. 2022

“진지하게 조언하는데 너 예민한 성격 좀 고쳐야 해”

엄마와 남편의 가스라이팅, 정작 예민한 사람은 그들

그날도 불안증이 여전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내 억울한 심정을 한창 토로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내뱉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나날이었다. 내 가장 가까운 통화 상대는 엄마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 버튼을 눌렀는지 모른다. 너무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불면증 때문에 새벽 4시 정도에 깨서 한참을 울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엄마와 통화하고 싶은 마음에 아침에 언제 통화가 괜찮으신지 문자를 보내고 답이 오기만을 기다린 적도 있다. 한참 통화를 하고서 전화를 끊고 또 다른 생각이 이어져서 곧바로 전화를 건 적도 여러 번이다.


돌이켜보면 한 일주일 정도를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보내고서 다행히 약간 안정을 찾은 것 같다. 문득, 엄마도 엄마의 일과가 있는데, 그리고 나 못지않게 엄마도 믿었던 사위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억울한 심정일 텐데 나 힘든 이야기만 너무 하고 있지는 않은 지 생각이 들었다. 한창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 계속 듣고 있으면 너무 속상하고 화나지 않아? 지금 엄마도 힘든데 내가 엄마를 더 힘들 게 하고 있을까 봐 염려돼’라고 말했다. 엄마가 답변하길 ‘엄마도 너무 화나고 억울해서 밤에 잠도 잘 안 와. 그래도 엄마니까 괜찮아. 얼마든지 털어놓아도 돼’라고 했다.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는 한편, 그래도 나도 어른이니까 어쨌든 결혼이든 이혼이든 다 내가 선택한 결과니까 이제는 엄마에게 내 속마음을 전부 끄집어내서 말하기를 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엄마에게 허심탄회한 내 생각을 털어놓고 엄마는 내 이혼 초반보다도 훨씬 더 나에게 공감하고 때로는 이 상황에 분개하신다고 느끼며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데 너 그건 알아야 해. 너 이렇게 좋다가 갑자기 고집 피우며 예민하게 성질부릴 때 그거 듣는 상대방은 얼마나 기분 나쁜지 몰라. 너 그건 좀 고쳐야 해.’


라고 하는 말이 핸드폰 너머로 들렸다. 이건 대체 뭐지…… 툭 튀어나온 생뚱맞은 얘기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당혹스러웠다.


‘응, 맞아. 아주 간혹 내 그런 모습 때문에 영인 씨가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런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고.’


방패도, 갑옷도 아무것도 없는 무방비상태에서 당시에 가장 의지하고 믿던 사람에게 전혀 생각지도 않은 날쌘 화살촉을 맞아서인지 처음에는 아픈 줄도 몰랐다. 그냥 덤덤하게 전화를 끊고서 한참을 의자에 멍하니 앉아서 천장을 한없이 바라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장마철 굵은 빗줄기처럼 세차게 쏟아졌다.




예민하다라…… 그러고 보니 내가 영인 씨가 하는 몇몇 말이나 표현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때가 있었는데 그중에 ‘너 왜 그렇게 예민하니. 그렇게 예민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라는 말도 있었다


예민하다…… 예민하다…… 그런데 나에게 이처럼 말한 엄마는? 정작 엄마는 어떤데? 엄마야 말로 예민한 사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나야말로 이토록 자식들을 위하고 사랑한다는 엄마가 아주 간혹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핑계를 둘러대며 비이성적일 만큼 폭발하는 모습에서 무지하게 상처받고 고통스러운 나날이 있었다. 돌이켜 보니 내가 대학생 때 엄마와 다투다가 엄마가 가장 심하게 비이성적으로 폭발했을 때는 너무 상처를 받아서 6개월이었나 1년이었나 엄마와 말을 하지 않고 지낸 적도 있었다. 내가 집에서 식사도 거의 하지 않고 엄마를 봐도 본체만체하니까 엄마가 너무 억울하고 못 견디겠던지 ‘그래도 엄마잖아. 엄마는 너희를 9개월이나 직접 품고 낳아서 너희를 다 이해할 수 있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엄마의 말과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엄마를 별로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너 그건 알아야 해. 너 이렇게 좋다가 갑자기 고집 피우며 예민하게 성질부릴 때 그거 듣는 상대방은 얼마나 기분 나쁜지 몰라. 너 그건 좀 고쳐야 해.’


엄마가 내 단점이라며 고치는 게 좋겠다고 한 조언은 내가 아니라 엄마의 단점이자 엄마의 모습이었다. 아니, 내 단점이자 엄마의 단점이었다. 아…… 부모-자식은 이런 식으로 닮는 거구나. 그러고 보니 단점뿐만 아니라 내 장점 중 일부는 엄마, 나머지 일부는 아빠와 닮아 있었다. 이래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 그 부모도 보라고 하는 거구나. 가정환경을 보라는 의미가 부모의 직업, 재산 정도 등 외형적인 면도 있겠지만 바로 이런 성격이나 가치관, 태도 등을 잘 파악하라는 거구나. 한편, 화를 낸 이유를 떠나서 결혼생활 4년 중 두어 번 정도 걷잡을 수 없이 분노를 표출했을 때 남편이 얼마나 당혹스럽고 그 모습 자체로 상처를 받았으리라고 생각하니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서 약간 미안했다.




그럼, 나는 왜 그리 엄마나 남편의 ‘너는 예민한 사람이야’라는 말에 맥을 못 추고 무너졌을까. 일단, 나는 정말 예민한 사람인가. 나 스스로 예민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현상이나 인간관계 등에서 때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감수성도 풍부하고 예민한 감각 때문에 이렇게 글도 쓰고 내 삶은 계속 창작을 하거나 예술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나에게 ‘예민해서 싫으냐’라고 물으셨는데, 나는 단번에 ‘아니요. 물론,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꾸 저는 보이니까 생각도 많고 그래서 때로는 좀 피곤하기도 하지만 저는 제 예민함을 사랑하는데요. 예민하지 않다면 어떻게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겠어요. 그리고 또 장점도 많아요. 사람들을 잘 배려하고 섬세하게 대할 수 있거든요. 전 그게 참 좋아요’라고 말했다.


예민하다 [형용사]
1.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2.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3. 어떤 문제의 성격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 있다.


그럼, 나는 왜 상대방의 ‘너는 예민한 사람이야’라는 말에 과도하게 반응했을까. 여기에는 엄마의 영향이 크다고 깨달았다. 십 대 시절 엄마는 종종 나에게 ‘너는 너무 예민해. 성질 좀 죽여야 해’라는 식으로 예민함을 부정적이라는 뉘앙스로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을 나는 ‘네 예민한 성격 때문에 친구들을 사귀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있을까 봐 염려돼. 예민함을 버리고 좀 더 둥글둥글 살도록 노력해야 해’라고 받아들였다. 즉, 나에게 예민함이란 감춰야 할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나에게는 아킬레스건이나 마찬가지라서 남편이 이 점을 지적했을 때도 그토록 안절부절 못하고 순간 화가 치밀었던 거다.


아빠도 자신이 술주정을 벌이거나 식사할 때 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을 이야기하면 시끄럽다며 쫑알거리지 말라고 다그친 행동은 생각하지 않았다. 좋지 않은 표정으로 부루퉁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땡삐('땅벌'의 경상도 방언)라거나 성격이 모났다는 투로 말하곤 했다. 사실 이건 잊힌 기억인데 동생과 이야기하다가 '어릴 때 식사할 때 아빠가 언니에게 좀 너무한다고 생각했다'라는 말을 듣고 하나씩 생각이 났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데 그래서 난 부모님을 제외한 타인을 대할 때 대체로 매우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잘 맞추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었다. 아마도 지인들은 그럼에도 내가 예민한 성향이라고 알았을 텐데도 무던한 사람처럼 비치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살고 있었다. '살고 있었다'라는 건 내가 이처럼 무던하게 보이려고 늘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고 이번에 인지했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고, 사실 이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익어서 성격으로 고착했다고 할 수도 있다.


덕분에 일찍이 사람 간의 개인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는데, 오히려 이 점이 배타적인 가족 관계인 우리 부모님과 시부모님과 관계에서는 관계의 단절을 지향하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게다가 때로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지나쳐서,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개별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별다른 편견 없이 좋게 말하면 순수하거나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바보 같이 사람을 받아들이는 실수를 했다. 그 최대 실수가 바로 배우자 선택과 결혼이라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 사실 남편과 엄마는 나보다 더 예민한 사람들인데, 나는 내가 매우 예민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기에 나보다 더 예민한 사람은 없으리라고 착각했다. 특히, 남편이 나보다 예민하다고는 결혼생활을 거의 마무리할 때까지도 인지를 못했다. 그저 예민한 아내와 살아줘서 고맙다고 생각했고, 나보다 더 예민해서 힘들었을 그 사람 마음을 헤아릴 생각을 전혀 못했다.




자신이 너무 예민한 줄은 모르고 자신의 불편한 감정이 상대방의 예민함 때문이라고 탓했을 때, 특히 탓한 대상이 실제로 예민한 성향인 친밀한 관계의 자식이거나 부부, 연인일 때 벌어지는 일을 내가 이토록 생생하게 경험하고 살고 있는 줄은 정말로 몰랐다. 독서 모임에서 가스라이팅을 주제로 한 책을 읽으면서 ‘대체 왜 똑똑하고 유능한 여성(사람)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못 벗어나는 거야’라고 생각할 때, 정작 나 자신이 가스라이팅의 올가미에 매여 있었다. 가스라이팅은 보통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기에 인지가 잘 안 돼서 이처럼 정말로 무섭다고밖에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예민함을 까탈스러움과 동의어로 생각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브런치북 <부모님과 관계를 끊기로 했습니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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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 서점을 확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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