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Feb 20. 2022

어렸을 때 내가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고?

부모에게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고 자각하지 못한 이유

이혼을 진행하면서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에 이해할 수 없는 남편과 남편 가족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생각했고,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이는 점차 우리 가족 특히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과 행동, 부모님과 우리 삼 남매의 관계에 대한 생각으로 옮겨졌다. 내가 그래도 안다고 믿었던 엄마는 시어머니처럼(돌이켜보니 싸했던 순간들: 시어머니 편) 보수적이며 완고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이제는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생각한 아빠는 그동안 아빠가 조심하기도 했고 독립한 뒤로는 어렸을 때만큼 아빠와 부딪힐 일이 많지 않아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 잊고 나도 모르게 좋은 모습만 간직하고 있었다고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이런 점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깨닫고는 내 이혼을 두고 이제는 부모를 향한 원망감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혼의 상처를 간신히 떨치고 있었는데 다시 새롭고 더 깊은 트라우마를 경험하며 너무나 혼란스럽고 좌절했다.




트라우마가 찾아온 저간의 자세한 사정을 접어두고 핵심은 내가 성장과정에서 정신적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이처럼 정의하기 전까지 나는 우리 삼 남매가 정신적 학대를 받았다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왜 나는 계속 부모님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왜 난 엄마가 편하지만은 않고 불편하지? 내가 정이 없나? 어릴 때 아빠가 말했듯이 정말 싸가지가 없나? (이제와서 말이지만 자신이 하신 행동을 먼저 돌아보셨다면 이처럼 말씀하진 못 하셨을 거다.)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을 대하기가 편하지만은 않고 무언가 왜 이리 불안정하지? 왜 나는 부모님께서 기대하는 만큼 부모님께 살갑게 대하지도 못하고 잘하지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시부모님께 가진 감정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세세한 상황이야 다르지만 남편 가족과 우리 가족은 가정 환경이 상당히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부모에게 대처하는 방식은 나와 남편, 내 동생들 제각기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서 달랐다.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 자식 입장에서 우리들이 느낀 감정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여동생과 나는 성격은 다르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부모님을 향한 생각과 감정은 놀랍도록 같다.)





<만우절이면 생각나는 사람(우리 아빠 이야기)>와 <#심리상담 1일 차>에서도 썼지만 내가 십 대 시절 아빠는 술주정이 심했다(예전보다는 덜하지만 현재도 여전하다). 할머니 말만 따라 아빠는 성품도 좋고 성실해서 술주정 하나만 빼면 썩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도려내서 내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지만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기억은 이렇다. 어느 날 아빠가 또 만취해서 집에 들어왔고, 나는 거실에서 또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며 고함치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너무 불안해지니까, 아마도 2층 집 계단을 오르는 아빠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마자 재빨리 내 방 형광등 불을 끄고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서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을 했던 것 같다. 다만, 내 방은 현관 옆이라 식구 중 누구라도 집에 들어올 때 내 방에 불이 켜졌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어서, 아빠가 내 방 불이 갑자기 꺼진 것을 봤을까 봐 엄청 초조하고 두려웠다. 제발 자신이 투게더, 셀렉션, 엑설런트 등 슈퍼마켓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중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며 먹으라고 깨우지 않기를, 그가 제발 아이스크림을 사 오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가 아이스크림을 사 왔는지 안 사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거실로 불려 갔다. 이것도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은데, 그가 생뚱맞게 냉장고 문을 열고 나에게 냉장고를 청소하라고 했던 것 같다. 기억나는 장면은 문이 열린 냉장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염없이 울었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다. 그는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의 울분을 토했고 ‘자신을 무시하냐’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대체 이런 지옥 같은 시간은 언제 끝날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상담을 받으며 나 스스로 내면의 감정을 또렷이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서인지 그 시절의 어린 소녀를 생각하니 너무 안쓰럽고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그때 한밤중 거실에는 그 사람과 나 둘밖에 없었는데, 당시에는 ‘그래, 이젠 엄마도 할머니도 힘이 드니까. 그리고 저러다 마니까.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지는 않으니까. 오늘은 나 혼자 견디면 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중고등학생 아이가 이런 극한 상황에서 이처럼 생각을 할 정도면 대체 이와 같은 폭력이 얼마나 빈번하고 일상적이었단 말인가.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또는 같은 상황을 겪은 다른 가정의 사정을 들었다면 난 분명히 ‘그건 명백한 폭력이야. 정말 힘들었겠다. 그 고통을 겪고도 이렇게 착하고 바르게 잘 성장했단 말이야. 너 정말 대단하다. 아빠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만했네. 잘 견뎠어. 이젠 어른이니까 굳이 깊게 얽히지는 않아도 되잖아. 네 마음 편한 대로 너 자신을 잘 챙기면서 살면 돼. 그래도 부모니까 마음이 너무 불편하면 자식으로서 기본 도리만 하면 되고. 그것도 네 선택이고 선택에 따른 불편한 감정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거고.’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우리 가정이 폭력 가정이라고 인지하지 못한 데는 우선 아빠가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책임을 다 했고, 무엇보다 엄마의 말 때문이다. “어쩔 수가 없잖아. 아빠는 변하지 않아. 엄마도 결혼 전에 아빠가 술 마시고 이렇게 변하는 사람인 줄 몰랐어(음…… 내 기억에는 없지만 이미 유년시절부터 이런 막장 같은 상황이 벌어졌단 말인가?). 그런데 어쩌겠니. 우리가 이해해야지. 아빠가 현장 일이 너무 고되고. 엄마도 아빠 일하시는 거 몇 번 직접 봤는데 생각한 것 이상으로 너무 위험하고 힘든 일이더라. 그나마 술이 아빠 낙이신데 엄마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리고 아빠는 가족이 자신의 이런 행동(술주정)을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셔.”


최근에야 이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아이에게 죄책감을 자극하고 아이를 보호해야 할 엄마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그 책임을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가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냥 한마디로 ‘나도 너무 힘드니까 너희가 이해해라’라는 것인데, 아이들은 무슨 죄로 이런 지옥을 그냥 받아들어야하지? 가족이라면 아빠가 술주정하며 고함치는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라...... 이런 말이 무의식에 영향을 미쳐서 내가 그토록 가족을 벗어나고 싶어하고 일찍이 개인주의를 지향했나 보다. 엄마가 착하시기도 하고 얼마나 힘든지를 자식으로서 보고 있으니까 뭐가 이상하긴 한데 정확한 감정을 모르겠고 ‘그래도 때리지는 않으니까’를 위안 삼으며 주양육자이자 가까운 관계인 엄마 말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삼 남매는 엄마 말을 참 잘 듣는 착한 아이들이었다.


더군다나 거실에서 냉장고 앞에 혼자 꿇어앉아 울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며, ‘과연 내 자식이 이런 상황을 당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를 생각하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우리 집안의 트러블메이커는 두말할 나위 없이 아빠이지만, 아이가 거실에서 저런 말도 안 되는 험한 꼴을 겪고 있는데 집안에 있는 어른인 할머니와 엄마는 대체 뭘 한 거지. 어떻게 자신들도 힘들다고 각자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잠적할 수가 있지. 내가 엄마였다면 당연히 거실로 나와서 ‘당신 지금 애한테 뭐 하는 거냐고. 제정신이냐고. 얼른 잠이나 주무시라고’하며 ‘아빠는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얼른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 두 분이 내가 보는 앞에서 크게 다투셨으면 그건 또 그것 대로 아이이기에 죄책감을 느꼈을 것도 같다. 하아......) 다음날 아이가 그 험한 꼴을 당하고도 괜찮은지, 아침에 학교 가느라 대화를 못 나눴다면 하교 후에 괜찮은지, 혹시나 친구들과 교류할 때 위축되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어떤 지를 꼭 물어봤을 것이다.


부모의 이혼, 가정의 해체라는 이런 엄청난 위기상황에서 아이가 간절히 찾는 건 ‘조난당한 나를 구해줄’ 믿음직스럽고 품이 커다란 엄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엄마! 엄마! 소리치는 아이에게 ‘왜 나한테 그러냐, 내 잘못이 아니다, 제일 힘든 사람은 나다, 지금 내가 너까지 어떻게 해줄 여력이 없다, 그러니 지금은 나 힘들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엄마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혹은 (더 기가 막히게도) ‘니가 나를 좀 구해줘’ 하는 식으로 아이 붙들고 울고 하소연하면서 불쌍한 사람이 돼버리면 아이는 더 이상 엄마를 어른으로 여길 수가 없다. 그냥 저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어린애로 보이고, 그러니 애가 옆의 애한테 하듯 그렇게 대하게 된다. 아이 눈에 이미 이렇게 된 상태에서 버릇이 없다느니, 혼이 나야겠다느니 하면 할수록 아이의 분노는 점점 더 거칠고 과감해진다. _<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김경림, 마리네 삼층집, 2015)> 59쪽 중에서




아빠도 아빠지만 엄마는 분명히 우리에게 잘해주는데 왜 자꾸 어긋나는 기분인지, 왜 늘 뭔가 불편한지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추고 있다. 요약하면 엄마의 일관적이지 않은 양육 태도(때로는 말과 행동이 같지 않음. 자식들을 보호해야 할 때 (자신도 방관하는 줄은 모르고) 방관함.)이고, 이 때문에 나는 불안정 애착을 형성하며 성장했다고 알게 되었다. 엄마의 일관적이지 않은 양육 태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추후 다루려고 한다. 또한 현재 이 문제를 나의 내면과 엄마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도 쓰려고 한다.



브런치북 <부모님과 관계를 끊기로 했습니다>를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책으로 출간습니다.


현재 온라인 서점(교보문고 온라인,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도서)에서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책은 6월 22일(목) 발송 예정으로 예정일 이후 1~2일 이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 서점을 확인해주세요.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