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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an 25. 2022

# 심리상담 1일 차

“세정(가명) 씨는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부모님, 할머니가 계시고 두 살 터울 여동생과 일곱 살 터울 남동생이 있어요. 할머니와는 태어나서 제가 독립하기 전까지 계속 같이 살았어요. 부모님께서 할머니를 모시는 거죠.”

“1남 2녀 중 장녀이시군요. 학력은요? 그리고 직업도 말씀해주세요.”

“대학교를 졸업했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예요. 사람들이 명문대라고 일컫는 학교고요.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출판사에서 근무했고요. 직종이나 고용 형태는 계속 달라져도 대체로 글을 쓰고 기획하고 홍보/마케팅하는 일을 했어요.”


“남편은요?”


남편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니 마음이 무거운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 나왔다.


“부모님이 계신데 이혼하셨어요. 어머니는 재혼하셔서 부유하게 잘 사시고, 아버지는 혼자 사시고, 여자 친구가 있으셨는데 헤어지신 뒤로 지금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어요. 이미 이혼하신 지는 10년 정도는 되었는데, 아마도 남편과 그의 여동생이 성인이 된 뒤에 하신 것 같아요. 남편은 세 살 터울인 여동생이 있는데, 저보다는 한 살 위예요. 남편은 고졸이고, 지금은 보안업체에서 일해요.”

“건물에서 시설 등을 관리하는 경비 업무인 거죠?”
 “네, 맞아요.”

“간단한 인적사항만 봐도 두 분은 많이 다르실 것 같은데 어떻게 결혼을 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그러게요.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너무 달라서 이혼을 해야겠다고요.”

“세정 씨도 이혼을 하고 싶으세요?”
 “음…… 저는 반반이에요. 이혼을 하고 싶기도 하고 결혼 생활을 좀 더 유지하고 싶기도 하고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대로 이혼을 하기에는 저희는 해보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아요. 관계 개선을 하려는 노력 말이에요. 그냥 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시면 되어요. 남편의 이혼하자는 얘기는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요.”


“세정 씨 부모님과 관계는 어떠세요?”

“음…… 오히려 아빠와 관계가 좋은 것 같아요. 연락을 하거나 그런 관계는 아니지만 오히려 연결 지점이 없고 저를 그냥 내버려 두시고 아빠는 또 아빠 인생을 잘 살아가시고. 돌이켜보면 그러면서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결국은 다 아빠가 아낌없이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지원을 해주셨더라고요. 그야말로 희생이죠. 저도 제가 아빠의 희생으로 이만큼 살고 있다고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아빠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군요.”

“엄마는 어떠세요?”

“엄마는 좀 애매한데요. 엄마가 저와 제 동생을 조건 없이, 무한히 사랑하고 저희가 잘 되길 바라신다고 알고, 또 잘 챙겨주시는데, 뭔가 좀…… 너무 다 해주려고 하셔서 제가 혼자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데 방해가 된다고 한달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엄마가 고마우면서도 뭔가 계속 벗어나고 싶은, 뭔가 좀 불편하고, 그리고 정말 드물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완고하거나 화를 내고 그런 적도 있네요.

“뭔가 짚이는 부분이 나올 듯 말 듯한데 아직은 제가 잡아내지는 못하겠어요. 이 부분은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부모님은 어떠셨어요?”

“아빠는 술을 많이 드셨어요. 건설현장에서 근무하셨거든요. 아파트 짓는 일을 하셨는데, 아빠가 일하시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현장일이 무척 거칠고 고되잖아요. 그런 걸 술로 해소하신 것 같아요. 술을 드시고 온 날에는 가족 모두가 괴로웠어요. 막 소리를 치셨거든요. 그렇다고 누군가를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거나 한 건 아니고요. 자신의 직업이나 인생을 비관하거나, 특히 할머니께 원망하는 말을 쏟아내셨던 것 같아요.”

“그때 세정 씨 마음은 어떠셨어요?”

“무서웠죠. 대체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할까 싶었고요. 거실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오면 방에서 가만히 숨 죽이고 있었어요. 어느 날은 한창 시험 기간이었거든요. 외울 것도 많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또 술을 드시고 오신 거예요. 아니, 다른 부모는 자식이 공부를 안 해서 난리인데, 대체 우리 부모님은 뭔가 싶은 거죠. 나한테 관심은 있는 걸까, 내 미래를 염려하긴 할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너무 서러워서 펑펑 울었어요.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외울 것들을 외우고…… 어쩌면 공부는 제 도피처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때 엄마는 어떡하셨나요?”

“음…… 잘 기억나지는 않는데요. 보통 그다음 날에는 방에 드러누워서 나오지 않으셨어요. 그럼 할머니께서 저희 식사를 챙겨주셨고요. 이해해요. 제가 엄마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럼 또 아빠는 엄마 마음을 풀어주려고 살랑거리고요..”

“그때 세정 씨에게 괜찮은지, 지금 마음은 어떠한지 물어본 사람이 있나요?”

“……”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없어요. 엄마는 다시 평소대로 가족들 식사와 집안일을 챙기고, 저는 저대로 공부하고 학교 가고. 그랬네요.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제가 볼 때 지금 세정 씨는 너무 차분하시거든요. 세정 씨는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잘 인정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아픔, 불안, 외로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잘 인정하지 않고 그냥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죠. 아빠가 술 드시고 오셨을 때 분명히 불안했는데, 아무도 세정 씨의 감정을 읽어주지 않고 세정 씨는 곧바로 다시 평소처럼 생활하신 거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도 세정 씨를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으니까 생존전략이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타인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어요. 아마도 어머니께서 그런 데 익숙하지 않은 성향이셨던 것 같고요. 그래서 어쩌면 남편이 여러 신호를 보내도 마음을 잘 읽으려고 노력을 안 하거나 못한 걸 수도 있고요.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남편의 이야기는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자신의 생각에 너무 사로잡혀서요.”


‘내가 불안하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는 긍정적인 성격인데? 지인들도 나를 그렇게 평가하는데? 지금도 굉장히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는데?’


한 번도 나 자신이 불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 마음속에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고, 그리고 거의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받다시피 한 이 상황이 전혀 괜찮지 않다고 내 마음을 계속 들여다보고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술로 상처 주신 20여 년 전의 일은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다시 튀어나와서 여전히 내 발목을 부여잡고 놓지 않았다. 경계심 없이 자유로운 줄 알고 길을 걷다가 난데없이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1. 갈 데까지 간 관계

2. 그거…… 이혼하자는 말이야?

3. 그가 말한 이혼 사유

4. # 심리상담 1일 차


5. 시어머니를 만나다

6. 시어머니의 본심

7. 돌이켜보니 싸했던 순간들: 시어머니 편

8. # 심리상담 2일 차


9. 이혼을 받아들인 계기 (1)

10. 이혼을 받아들인 계기 (2)

11. 이혼 가정 자녀와 결혼해서 벌어진 일 (1)

12. 이혼 가정 자녀와 결혼해서 벌어진 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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