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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an 27. 2022

이혼을 받아들인 계기 (1)

신뢰의 붕괴와 수용 불가한 가족들

처음부터 여기까지 글을 다 읽으셨다면 ‘아니, 대체 왜 당장 이혼을 하지 않고 망설이는 건데. 이혼을 하더라도 세정 씨가 먼저 이혼하자고 해야 할 판국에 왜 쓰레기 같은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는 건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다. 좀 진부하지만 나에게는 무척 충격적이었는데 내가 결혼 생활 4년 내내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직접 당해보니 가스라이팅이 얼마나 무서운 상황이냐면, 난 심지어 이혼을 결정하고 법원에 접수를 하고 심리 상담을 5회 차를 받을 때까지도 내가 가스라이팅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물론, 상대방이 가스라이팅을 해도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관계와 상황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토록 오랫동안 인지하지 못한 것은 나의 성격, 우리 부모님과의 관계 등이 영향을 미쳤고, 이 부분은 추후에 구체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이번에는 남편의 이혼 사유가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왜 이혼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바로 법원에 이혼 접수를 했는지 그 계기를 말하려고 한다. 물론, 난 이 때도 이 사람이 가스라이팅에 능한 사람이라고 인지를 하지 못했지만, 이 글을 읽고 나면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은 어떤 사고방식을 지녔는지 조금은 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사고 체계가 너무 달라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다. 글이 길어서 두 편으로 나눠서 실었고 구체적인 대화는 2편(이혼을 받아들인 계기 (2)) 에 있다.




우선은 더는 이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2년 동안 이혼 생각을 했다면서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그래도 우리가 부부인데, 연애 3년에 결혼 4년, 7년이란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우리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자’, ‘나는 지금 이런이런 점 때문에 너무 힘들다. 서로 노력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이혼도 선택지로 생각해 보자’라든가 이런 말 한마디 없이 자신을 이혼을 결정했고, 바뀔 일은 절대 없으며, 따라서 관계 개선을 위해서 노력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혼을 완료하기 전까지 나와는 아주 기본적인 필요한 대화 외에는 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은 나를 더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껏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말이나 행동 등에서 참았던 부분을 더는 참지 않을 것이란다. 네가 받아들이지 못해서 노력을 한다면 그것은 네 선택이고 자유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바뀔 확률은 거의 없으며, 자신은 이제 참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네가 상처를 벋더라도 그건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란다.


이런저런 말을 다 떠나서 고작 이런 일로 이혼을 하자고 갑자기 폭탄을 투척하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을 어떻게 평생의 반려자라고 믿고 산다는 말인가. 언제 또 무슨 일을 벌일 줄 모르는데. 부부는 애정을 기반으로 하되 언제 어떻게 닥칠 줄 모르는 풍랑 같은 힘든 일을 함께 견디고 헤쳐가는 한 배를 탄 인생의 동반자인데, 이 사람은 조금이라도 힘든 일이 닥치면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극복하기보다 도망가거나 회피할 확률이 매우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신뢰할 수 없는 배우자, 이거 하나로도 내 이혼 사유는 충분했고, 이렇게 약한 배우자는 나도 필요 없다. 이런 결혼은 나도 굳이 감내하고 싶지 않다. 내가 정말로 사람을 잘못 본 것이다.




다음으로 이 사람이 이혼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부모님께 잘 못해서라고 하니까 내가 좀 더 이 사람 부모님께 잘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공평하지는 않지만 부부나 사람 관계가 매사 공평할 수만은 없으니까. 명절 두 번을 내 주도 아래 우리 집에서 정성껏 준비해서 시어른들과 그 가족을 모시고, 두 분 부모님께도 연락을 자주 드리고 왕래도 더 자주 하는 노력을 해볼까 했다.  내가 그렇게 노력하면 우리 관계가 달라질까? 남편이 관계의 중심을 이제는 그 사람의 부모에서 나에게로 가져올까? 내가 궁극적으로 바란 건 남편이 관계의 중심을 우리 가정, 나로 두는 것이었다.


심사숙고한 결과 내 내면의 대답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 갈수록 요구가 더 많아지고 점점 이 집안의 대소사를 내가 다 책임지고 조율하고 내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었다. 우선, 시어머니와 몇 번 통화를 하면서 왠지 느낌이 ‘이 가족이 말하는 대로 연락도 자주 하고 이 가족이 원하는 방식으로 친하게 지내면 이번에는 고부갈등이 생기겠는데?’라는 또 싸한 감이 들었다. (구체적인 근거는 <돌이켜보니 싸했던 순간들: 시어머니 편>을 참고해주세요.)


이 사람들이 원하는 며느리는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들이 하는 말에 ‘네’, ‘네’하는 한마디로 순종적인 사람인데, 관계가 가까워진다는 건 서로의 본색을 점차 드러내고 갈등하고 조율할 일이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내가 분란을 원치 않아서 이들의 요구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며느리처럼 연기를 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말하는 게 뭐가 어려우랴. 전화가 와서 뭐라고 하시면 ‘네, 알겠어요’라고 말하고 그냥 안 하면 되지. 이 경우, 분명히 말은 그렇게 하고 왜 행동은 달리하는지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실 거고, 이런 불만 또는 서운함을 아들에게 털어놓으면 그분들의 아들이자 내 남편은 성격상 ‘그게 뭐 어렵다고 그냥 좀 해 드려’라고 말하겠지.


반대로 그분들의 말씀에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죄송하지만 제가 그것까지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하면, 그때도 또 말로는 이해하고 조율해가자면서 깊은 내면에는 ‘며느리 주제에 감히’, ‘며느리는 며느리의 도리가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있으신 분들이라서 이번에는 또 ‘애가 참 독특하네’ ‘기가 세네’ ‘자기주장이 강하네’ 이런 말씀을 하셨으리라. (실제로 애가 글을 써서 그런지 좀 특이하고 너무 구분 짓고 성격이 너무 깔끔하다나? 그리 부정적으로 평가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당시에는 좀 뜨끔하고 성격을 고쳐야 하나 싶었는데, 뭐,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니 당연히 계속 구분을 지어왔고, 특이하다는 건 사람에 따라 그리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이제는 개의치 않는다) 남편은 또 위 상황과 마찬가지로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네가 좀 맞춰드려. 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너희 부모님(장인, 장모님)께서 그러시면 나도 너에게 요구했듯이 똑같이 했을 거야’라고 말했을 것이다.




미안한데…… 우리 부모님은 너에게 부담되거나 염치없는 요구를 하지 않으실 거야.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결혼생활 4년 동안 경험했잖아. 우리 부모님이 네 직업, 학력, 가정환경, 기타 등등 어떤 조건이라도 하나 걸고넘어지신 적 있니. 지금 생각하니 그랬으면 우리 결혼이 이토록 수월하게 성사되지 않았겠지. 네가 나와 상의 없이 몇 천만 원을 네 멋대로 처리한 걸 알고도 이혼 전까지 거의 2년 동안 내색 없이 한결 같이 너 자체로 인정하고 대해 주신 분들이야. 네가 예뻐서? 물론, 사위니까 그러시기도 했겠지. 내 딸 결혼 깨질까 봐. 자신들이 나섰다가 괜히 집안싸움될까 봐. 무엇보다 내가 결혼을 유지하기를 원하니까. 자신들이 너를 다그치고 미워하면 사랑하는 딸이 힘들어하고 마음에 상처가 생길까 봐. 그래서 애끓는 마음을 참고 또 참으신 거야. 그리고 네가 그래도 성품이 착하다고 생각하셔서 앞으로는 제대로 처신하리라고 믿으셔서. 한편으로는 네 성장 과정을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기셔서. 그래서 정말로 조건 없이 베풀어 주신 거야. 그런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이렇게 사람 뒤통수를 쳐? 이 썩을 놈의 XX야. 내가 할 수 있는 욕이란 게 고직 이 정도여서 한스러울 따름이다.


만일에 막상 우리 집 사정 때문에 지금 나와 같은 상황이 너에게 닥친다면? 지금 네가 나에게 요구한 대로 똑같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나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거다. 손해보고 피해 보는 거 죽도록 싫어하는 □□야. 이 개XX아.



1. 갈 데까지 간 관계

2. 그거…… 이혼하자는 말이야?

3. 그가 말한 이혼 사유

4. # 심리상담 1일 차


5. 시어머니를 만나다

6. 시어머니의 본심

7. 돌이켜보니 싸했던 순간들: 시어머니 편

8. # 심리상담 2일 차


9. 이혼을 받아들인 계기 (1)

10. 이혼을 받아들인 계기 (2)

11. 이혼 가정 자녀와 결혼해서 벌어진 일 (1)

12. 이혼 가정 자녀와 결혼해서 벌어진 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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