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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an 25. 2022

갈 데까지 간 관계

“우리는 이미 갈 데까지 간 관계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자기가 방금 그렇게 규정한 거지.”


충격이었다. 요 며칠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많은 부부가 그렇듯 늘 있는 의견 충돌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낭만적 사랑은 옅어지더라도 실패에 묶여 있는 연처럼 부부란, 그 관계가 가까웠다가 멀었다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하기에, 곧 결혼 만 4년을 앞두고는 이제 그와 벌이는 고무줄 같은 관계에 익숙하기에 나는 그냥 그런 줄로만 생각했다.


“이제 너는 네 방식대로, 나는 내 방식대로 그렇게 살자.”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각자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면 왜 같이 살아. 그게 부부라고 생각해?”

“……”

“나도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서로 너무 존중한 나머지 지금까지도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잖아. 그런데 난 그게 편하면서도 한편으로 참 의아했어. 존중을 하는 건 좋지만 때로는 서로 타협하고 조율해야 할 때도 있잖아. 서로 존중하되 하나씩 맞춰가고 닮아가는 게 부부잖아. 모든 걸 같이 하고 똑같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닌 거 알지. 서로 너무 다르니까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니까 그래도 발맞춰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이제야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는 그런 게 너무 없었어.”

“일단 식사하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그리고 너 불편하면 그냥 가도 돼. 어머니, 아버지께는 내가 알아서 말씀드릴게.”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왜 가야 해? 나도 같이 식사하고 갈 거야. 나 심지어 어머니 오랜만에 뵙는다고 꽃다발 드리려고 자기보다 먼저 와서 꽃까지 샀는데 돌아가라고? 내가 왜 그래야 해? 그리고 우리가 과연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기는 우리 둘이서 이야기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게 가능했으면 자기가 갈 데까지 간 관계라고 규정짓지도 않았겠지.”


11월 말 토요일 낮,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코로나 때문에 거의 2년 만에 뵙는 그의 가족들이었다. 시어머니 내외께는 늘 감사한 마음이어서 따뜻한 대화가 오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얼른 화장실에 가서 내 몰골을 살폈다. 예감은 했지만 이날이 그의 가족들과 마지막 식사이자 만남이었다.



1. 갈 데까지 간 관계

2. 그거…… 이혼하자는 말이야?

3. 그가 말한 이혼 사유

4. # 심리상담 1일 차


5. 시어머니를 만나다

6. 시어머니의 본심

7. 돌이켜보니 싸했던 순간들: 시어머니 편

8. # 심리상담 2일 차


9. 이혼을 받아들인 계기 (1)

10. 이혼을 받아들인 계기 (2)

11. 이혼 가정 자녀와 결혼해서 벌어진 일 (1)

12. 이혼 가정 자녀와 결혼해서 벌어진 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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