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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an 27. 2022

# 심리상담 2일 차

이혼 가정 자녀와 결혼한 뒤 벌어진 일

“한주 동안 어떠셨어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이혼을 하기로 했어요. 집도 내놓자마자 빠졌고요. 다음 주에 법원에서 이혼 서류를 접수하기로 했어요.”

“이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만 한주 동안 태도가 너무 급격히 달라지셨는데요?”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어요. 저는 이 사람이 말하는 이혼 사유는 이혼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부모님께 잘 못한다고, 성격과 가치관이 다르다고 난데없이 이혼하자는 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나요. 변호사 상담도 했는데 변호사님도 마찬가지로 이 정도는 이혼 사유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고요.”

“세정 씨가 실제로 부모님께 잘하지 못하셨나요?”


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사람이 원하는 만큼은 하지 못했죠. 특히,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드리기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결혼하자마자 태도가 돌변했어요. 연애할 때 저는 이 사람을 ‘남자니까 이래야 해, 여자니까 이래야 해’라는 면모가 없고,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사를 존중하는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도 거의 10년이 넘어서 독립적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집안일도 그 정도면 잘하는 편이었고요. 게다가 자신은 아버지와는 성격이 맞지 않아서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자신의 성격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고 했어요. 저는 그 이야기를 아버지는 가족 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성격이라 가족들을 힘들게 하면서도 그냥 그렇게 사신 분이고, 그래서 결국 가족들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해서 이혼했고, 한편 어머니는 조용하시면서도 참을성이 있으시고 내실 있으신 분이라고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연애할 때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셨어요?”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쓰느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오래전이라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없었어요. 저는 정말 서로 잘 맞고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결혼을 했죠. 연애 때는 싸우지 않아도 결혼을 준비할 때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결혼 준비도 다 너무 수월했어요. 손발이 잘 맞았죠. 그래서 인연인가 보다 생각했죠.”

“연애를 그래도 3년이나 하셨는데 모르셨다고요?”

“네.”

“남편도 세정 씨에게 요구하는 만큼 부모님께 잘하나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쿵 맞은 듯했다. 그 사람이 짠 생각의 틀에 갇혀서 늘 내 마음속 찝찝함(일종의 죄책감)만 생각했지, 그 사람이 나에게 요구하는 대로 그 자신은 행동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깨달았다.


“아니요. 저와 비슷해요. 연락도 처음에는 양가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드린다고 하더니 회사 일이 바쁘고 고되고 하니까 갈수록 이 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그 기간이 늘어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와 있을 때는 아빠에게 얼마나 못되게 하는지 몰라요. 말씀하시는 게 막 답답하다면서 엄청 쏘아붙이고 틱틱거리거든요. 제가 다 민망할 정도로요. 결혼 전에 몇 번 같이 식사할 때는 늘 그러니까 정말로 두 사람이 사이가 별로 좋지 않구나 싶었죠.

그런데 제가 이 사람 부모님께 욕을 했나요, 가정이지만 편찮으신데 병원비를 못 드린다며 방치하기를 했나요, 때렸나요. 이혼하셨다고 뭐 기타 이유 등으로 무시를 했나요. 남편 기대만큼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또 딱히 ‘못’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아무것도 안 했다면 모를까. 그런데 제가 정말 아무것도 안 했으면 억울하지도 않죠.”


“딱 한 번이었지만 명절에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시누이, 시작은아버지, 사촌 동생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도 했고요. 참! 작은아버지께서도 이혼하셨더라고요. 식사는 저희 집 근처에서 하고 집에 오셔서는 커피와 다과를 드셨는데, 식사 대접만큼 수고롭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준비도 다 제가 했어요. 원래도 제가 한다고 했더니 그 사람이 자기가 하겠다더라고요. 그런데 야간 근무하면 아무래도 피곤하니까 못 일어나는 거예요. 저희는 부부잖아요.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요. 그 사람 더 자게 두고 제가 나가서 빵도 사고 그릇도 다 꺼내 놓고 했죠. 어쨌든 손님이 집에 오시는 거니까, 또 집에 오신 손님은 불편함이 없도록 대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부담스럽지만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았어요. 시가에 대해서 몰랐던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었고 무엇보다 연로하신 할아버지께서 너무 잘 잡수시고, 시누이와 사촌 동생들도 다 즐거워하고 맛있게 먹으니까 뿌듯했고요. 그때 알았죠. 아! 이 가족들이 원하는 건 그저 명절에 다 같이 집에 모여서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는 거였구나. 그동안 명절마다 외식을 했다는 건 생각이 트여서 그런 게 아니라 모일 집이 없거나 어쨌든 여건이 안 되어서 그런 거였구나. 여기까지는 좋았어요. 그런데 손님들이 돌아가시고 저도 뭔가 배우자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거든요. 인정받고 싶은 거죠. 그래서 남편에게 ‘오늘 몸은 고돼도 마음도 훈훈하고 참 좋다. 나한테 고맙지는 않아?’라고 물었는데 그 사람이 말하길 ‘고맙지. 고맙긴 한데 난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해’라고 말해서 경악했죠.”


말을 계속 이어갔다.


“결혼하자마자였나. 그 직전이었나. 시점은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갑자기 나중에 자기 아버지와 같이 살아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너무 혼란스러웠죠. 아버지와 친하지 않고 심지어 좋아하지도 않는다면서 대체 이 말은 뭐지 싶었어요. 그래서 이미 저는 경계심이 생긴 상태였는데, 거기다 대고 부모님께 일주일에 무조건 한 번씩 연락을 드려야 하고, 이건 너무 중요한 일이라서 의논하거나 조율할 일이 아니고 제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일이라며, 따르지 않으면 ‘벌’을 준다더라고요. 너무 황당했고 특히 벌을 준다는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바로 지적했고, 그 사람도 바로 사과는 했지만, 단어 선택이 좀…… 대체 이게 뭔가 싶었죠.

일 년에 명절 두 번, 아버지/어머니 생신, 어버이날 이렇게 뵙는 게 적다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어버이날은 시아버지 가족, 시어머니 가족 이렇게 시가 가족을 두 번 뵙는 게 당연하다고, 상황이 이러니까 그냥 받아 들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도요. 그리고 시어머니 가족을 명절에 두 번 다 찾아 뵐 수는 없고, 연말이든 뭐 중간에 언제라도 한 번 정도는 더 뵈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물론 이게 기본이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하는 거죠. 중간에 무슨 일 있거나 하면 교류하는 거고요. 그런데 이 기본이 너무 적다며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했었나. 아무튼 더 자주 찾아뵙는 게 또 ‘당연’한 거라고요.

이 사람의 정확한 심정은 모르지만, 혼자 사시는 아버지가 안쓰러우면 본인이 퇴근할 때나 주말이나 가서 같이 시간을 보내드리면 되잖아요. 어머니도 뵙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면 되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런 일은 거의 없네요. 심지어 시할아버지 사시는 환경도 늘 안타까워했는데, 마음만 자주 가서 찾아뵙고자 하고 제게 그런 말도 한 적이 있어요. ‘마음은 할아버지께 자주 가고 싶은데, 일이 많고 몸이 고되니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고요.’ 이 사람아, 지금 나도 그러고 있는 거야. 그게 현실이라고. 그런데 대체 왜 나에게는 강요하고 그러지 못한다고 이혼까지 하자고 하는 건데. 이 머저리 같은 XX야.”



1. 갈 데까지 간 관계

2. 그거…… 이혼하자는 말이야?

3. 그가 말한 이혼 사유

4. # 심리상담 1일 차


5. 시어머니를 만나다

6. 시어머니의 본심

7. 돌이켜보니 싸했던 순간들: 시어머니 편

8. # 심리상담 2일 차


9. 이혼을 받아들인 계기 (1)

10. 이혼을 받아들인 계기 (2)

11. 이혼 가정 자녀와 결혼해서 벌어진 일 (1)

12. 이혼 가정 자녀와 결혼해서 벌어진 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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