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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25. 2022

이혼을 하자면서 최대 2년을 동거할 수 있다고?

이제는 넋두리가 된 도저히 이해불가인 말들

어느덧 이혼한 지 6개월이 흘렀고, 그사이 다른 꿈이 생기고 제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일상을 촘촘히 엮어가고 있어서, 이제는 이혼 사실에 저 자신이 별로 개의치 않아서 사실 기억이 많이 흐려졌습니다. 지난겨울부터 올봄까지 인생의 최악의 상황을 어떻게 견디고 지나왔는지…… 지금은 헛웃음을 띠며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지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계신 분들이 조금이나마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혼 관련해서 참고하거나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몇 편 더 올리려고 하는데요. 조만간 ‘협의이혼에서 위자료 받은 요령’을 제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사람마다 저마다 처한 상황이나 경험, 문제 해결 방안도 다 다르기에, 그 글을 정리하기에 앞서서 이혼 당시 제 상황과 상대방과의 관계를 좀 더 이해하실 수 있도록, 당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한 글입니다. 좀 길지만 이 글을 먼저 읽으시고 추후 위자료 요령을 읽으시면 제 상황에 대해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부분 없이,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참고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협의이혼에서 위자료 받아낸 노하우(1편)




저는 지금도 여전히 저를 견딜 수 없어서 이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전처럼 최대 2년씩이나 아무렇지 않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부부로 지낸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이 있는데 마음속으로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2년씩이나 품고도 나에게 우리 관계를 돌아보자는 말 한 번 없이 어떻게 이처럼 일방적일 수 있느냐. 이야기도 더 나누고 부부상담도 받으면서 관계 회복을 위해서 한 번은 노력해보자’라는 말에도 이미 입장 정리가 끝났다며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신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리라고 호언장담한 사람치고는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 감정이라면 저는 이미 상대방이 꼴도 보기 싫어서 같은 공간에 있는 상황 자체가 거북스러웠을 텐데요.


계약 결혼도 아니고 무슨 계약 이혼인가요. 차라리 위장 이혼이라는 말은 들었어도 이혼은 절대 불변이라며 일방적으로 못 박고 동거는 유지할 수도 있다니. 이혼은 하고 싶지만 저와 생활하는 게 못 견딜 만큼은 아니었나 봅니다.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 한 차례 없이 확고한 이혼 의지를 가진 사람 치고는 같이 생활하는 게 죽을 만큼 불편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럼, 같이 거주하는 건 할 만하다는 말인데 그것은 결혼생활을 유지할 만하다는 의미 아닌가요. 다시 생각해도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불가입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최대 2년까지는 한 집에 살면서 서로 말도 안 하고 밥도 같이 안 먹고 완전히 남남처럼 거주 공간만 공유하며 살 수 있다는 의미인 건지. 집이 대궐처럼 큰 것도 아니고, 서로 아예 간섭하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하며 불편한 공기를 감내하며 사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실질적으로 관계가 끝난 마당에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 말이 안 되는 말뿐입니다.


저라면 상대방이 경제력이 미흡한 상황에서 이혼을 강행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최소한 상대방의 경제력을 보전할 수 있는 비용을 지급할 각오를 했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결혼생활에 무책임한 적도 없고 충실했으며 순전히 자신의 마음이 변해서 결혼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 정도 손해는 기꺼이 감수해야지요. 저는 그것이 결혼을 약속하고 이혼을 선택한 사람이 이 상황에서 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였다면 이 같은 상황에서 이혼을 언급하지도 않았을 테고요. 상대방이 프리랜서인 게 불만이라면 솔직하게 말하고 우선은 상대방이 다시 회사에 취직하도록 요구하고,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자고 했을 것입니다. 저라면 이처럼 일방적으로 무책임하며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미 다 잘 지나간 일입니다. 아마도 상대방은 억지 이혼은 하고 싶은데 손해는 하나도 감수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저를 오갈 데 없는 돌봐야 할 사람으로 취급해서 자신이 같이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꾹 참고 저에게 안정적인 수입이 생길 때까지 선심을 베푼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에 제가 인생을 길게 보고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직장을 그만둬서 수입이 매우 불안한 상태이긴 했지만, 상대방에게 금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형편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4~5년가량 생활비를 감당할 만한 통장 잔고도 있었고,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계속 공동 생활비를 같이 부담하고 있었으며, 전세금 인상분도 한 차례 상대방이 부담해서 두 번째는 제가 전액을 부담했습니다. 무엇보다 전셋집 자체를 두 사람이 비슷한 금액을 부담해서 마련했기에, 상대방이 제 형편을 감안해서 저를 이 집에 살게 해주는 차원도 아니었습니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지도 않아서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대출금을 갚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없었고요.


무엇보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은 상대방도 동의했고, 저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회사생활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에 7~8시간은 꼬박꼬박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글 쓰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일거리도 들어오며 소기의 성과도 내고 있는 상황이었고요. 그럼에도, 가계 수입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기에 상대방이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취업을 하겠다고, 그것은 가계 공동체를 같이 꾸려가는 입장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요구라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만일에 제가 생활비를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기대야 한다면 꿈을 접고 바로 취업을 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고요. 상대방에게 지금 이대로 생활이 괜찮은 지 때때로 물으면 늘 ‘자신은 괜찮으며 저의 도전을 지지한다’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위선적이게도 사람 좋은 표정으로 저를 안심시킨 말과 달리 이혼을 앞두고 상대방이 저는 직장에 다니지 않고 자신만 회사를 다니는 일이 몹시 불만이었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가계 경제를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착각하며 가장인 자신을 제가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고 느끼고 있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상대방이 부담하는 생활비는 그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결혼 전부터 저는 누누이 경제적으로 상대방에게 의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분명히 입장을 밝혔고,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게, 상대방의 이혼 요구에 충격을 받고 밥도 못 먹고 종일 울고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집에 수건 빨래가 되어 있지 않다며, 밥솥에 밥이 없다며 그래도 자신이 가장인데 이혼할 때 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지 않느냐고 본색을 드러내는데,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도 빨래도, 설거지도, 청소도, 밥하기도, 필요한 물건을 제 때 구매하는 일 등 모두 귀찮습니다. 그래도 결혼은 공동생활이고 부부니까 귀찮은 일은 내가 조금 더 하자는 좋은 마음으로 결혼생활 내내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도록 밥 먹은 설거지는 바로 하고, 수건도 잘 빨아서 욕실에 부족하지 않도록 꼬박꼬박 채워 두고, 밥 솥에 밥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해서 남아서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밥도 늘 안쳤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티 나고 은근히 시간을 빼앗기는 집안일은 원래도 제 몫이었습니다. 원래도 집안일은 제가 더 많이 했는데, 프리랜서가 된 뒤로는 아무래도 제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더 많은 집안일을 담당했고요.


프리랜서로서 주로 재택근무를 하니까 상대방이 저를 놀고먹는 사람으로 아는 것 같길래, 마침 이혼까지 하자고 하니 오로지 상대방을 위해서 늘 신경 쓰고 챙기던 일들을 더는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만두었습니다. 어느덧 공기처럼 필수적이지만 당연해져서 제 노력은 배제되고 원래 말끔한 상태를 유지하는 듯하던 자잘한 집안일들 말입니다. 단적인 예로, 저도 혼자 살 때는 식사 뒤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고 방치해두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공동생활이니까 귀찮아도 상대방이 원하는 그릇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바로 설거지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샤워하고 수건이 없는 불편함이 없도록 욕실에 수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제 때 빨래하고 마르면 바로 개서 준비해뒀고요. 이런 여러 잡다한 집안일을 단 하루만 그만두었는데도 제가 평소에 얼마나 집안을 정돈하고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신경을 기울였는지 바로 티가 났습니다.


저는 내심 상대방이 불편함을 겪으면서 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우리 가정과 상대방을 위해서 감당하고 있는지 알기를 바랐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자신의 일방적인 이혼 요구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앓아누운 저에게 이혼할 때 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돌아왔습니다. 구박받는 콩쥐도 아니고 그나마 있던 정나미가 뚝 떨어졌습니다. 내가 대체 왜, 뭐가 부족해서 뻔뻔하고 안하무인인 새끼에게 이런 취급까지 받고 있나 저 자신이 참 한심했습니다. 결혼했으니까 귀찮고 하기 싫은 일도 감당했지, 이혼하는 마당에 눈에 띄지도 않는 온갖 잡일들을 대체 왜 해야 합니까. 억지도 이런 억지가 어딨는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차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상대방 집안사람들의 성향이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같다고 갈수록 느끼고 있었는데,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시대착오적인 몰상식하고 억압적인 환경을 하루빨리 탈출하는 것이 제 앞으로의 인생을 위한 정답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제가 만일에 경제력 없이 배우자에게 생활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업주부였다면, 배우자를 비롯한 집안 전체 사람들에게 얼마나 극심한 갑질을 당했을까 상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고 끔찍하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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