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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y 21. 2022

셀 수 없이 많은 내 열등감과 자격지심

달리 말하면 콤플렉스와 약점들

심리상담과 여러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는 점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가 엔도 슈사쿠가 쓴 짧은 에세이 <나를 사랑하는 법> 프롤로그는 ‘나는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한 가지 요소를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열등감이라고 생각한다’로 시작한다. 이 한 문장은 훗날 돌아봤을 때 내 내면이 궁극적으로 변한, 인생의 전환점을 불러온 글귀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사실 등감(또는 결핍)과 경쟁자(라이벌)가 때로는 나 스스로는 나태하고 나약해서 하지 못할 일을 하도록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성장의 동력이 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 안에도 열등감이 존재한다고 오랫동안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말로는 분명히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단점 없는 사람은 없다’라고 타인의 실수나 결핍에는 관대하면서, 오히려 나 자신은 예외적으로 완벽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 했다. 이 얼마나 솔직하지 못한 태도인가. 오만하게도 불가능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동안 나에게 열등감이란 가지면 안 될 나쁜 감정이었으니까.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열등감과 자격지심, 약점을 비로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인정하는 과정이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출발점은 달리 말하면 자신의 콤플렉스를 직시하는 순간 일어나는 듯하다. 나는 ‘엄마니까 다 이해한다’라는 엄마를 믿고 나에게 닥친 힘겨움을 토로하다가 ‘그런데 너 그거 아느냐’라고 운을 떼더니 ‘네가 예민할 때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고 기분이 비참해지는지 아느냐’라며 생뚱맞게 비난의 화살을 나에게 돌렸을 때, ‘이건 뭐지?’ 싶어서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다. 남편의 요구로 선택의 여지없이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딸에게 ‘몹쓸 놈, 찢어 죽여도 시원 찮을 놈’이라고 같이 욕하다가 갑자기 그 썩을 놈인 사위 편을 드는 격이니 말이다. 엄마의 이런 이중적인 대화 패턴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날은 어찌 된 일인지 혼자 벙쪄서 한참 넋 나간 사람처럼 있다가 이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하염없이 눈물은 흘렸다. (관련 글: “진지하게 조언하는데 너 예민한 성격 좀 고쳐야 해”)


희한하게 불현듯 ‘예민한 게 나쁜 건가? 내가 정말 예민한 사람인가? 그러고 보니 엄마야 말로 예민한 사람 같은데? 그러고 보니 내가 가시 돋치게 행동하는 대상은 가족이 거의 유일한 듯한데? 나에게 ‘지나치게 예민하다’라며 지적을 한 사람은 엄마와 아버지, 전남편이 전부이지 않나? 오히려 그들이 한 말 때문에 타인에게 예민한 사람으로 비칠까 두려워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둥글둥글한 원만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부단히 애쓰면서 살아왔는 걸. 아…… 엄마가 자신을 투영해서 나에게 말한 거구나. 엄마야 말로 예민한 사람이구나. 내 예민함은 엄마를 닮은 거구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마와 나는 장점도, 단점도 닮아 있구나’ 깨달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거부한 이 씁쓸한 진실을 자각하고 인정하려니 뭔가 내 꼴이 우습기도 하고, 작은 바늘로 콕콕콕 찌르는 듯 가슴이 따끔따끔했다. 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평생을 이 말에 매여서 그토록 자책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는지 허탈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예민하다’는 그냥 ‘예민하다’ 일뿐인데. 예민해서 섬세하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그 동력으로 글을 쓰거나 다른 예술 활동을 할 수도 있는데. 물론, 나 자신을 몰아붙여서 힘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예민함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을 만큼 나는 내 예민함을 사랑하는데. 오랫동안 내 콤플렉스라고 믿었던 성향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맥이 툭 풀리는 듯 마음이 그토록 편안하고 평온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내 약점과 직면한, 인생의 변화를 불러온 순간이었다. 나는 좀 더 단단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한 가지 요소를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열등감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절대적으로 자신이 옳고 강하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까.

우리 대부분은 이러한 자신의 열등감에 휘둘리며 살아간다. 때로는 일부러 강해 보이려 행동하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의기소침해져 주눅이 들기도 한다. 나 또한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며 경험이 풍부해진 덕분인지 나는 내 자신의 나약함에 대처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남들에게 강하게 보이려고 무리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있는 그대로 나의 연약한 점을 인정하고 되도록 그 약점을 나에게 유리하게 바꿔보자는 생각을 한 뒤에야 비로소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_엔도 슈사쿠, <나를 사랑하는 법> 프롤로그 중에서




나는 열등감 덩어리이기도 하면서 한편, 그렇지 않기도 한데, 내 열등감을 쭉 나열해서 고백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명문대를 다소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 유학을 가서 학업을 계속 이어가는 지인들에게 질투를 느낀다. 책을 안 읽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각종 고전을 탐독해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작아진다. 알코올 의존증에 자격지심이 극심한 아버지를 뒀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서 희생했기에 자식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내 마음을 읽어주는 아버지에 대한 결핍이 크다. (다소 모호하지만) 최근에는 프리랜서로든 자영업자든 자신의 사업체를 꾸려서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들이 다 대단하게 보인다. 아!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되고 싶기 때문에 주변에서 책을 출간해서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세계를 점점 공고히 하며 강연, 인터뷰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지인들을 보고 있으면 부럽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사람도 부럽고, 기가 막히게 콘셉트나 제목을 잘 짓는 재치 있는 사람은 질투가 나고, 적절한 유머를 구사해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모임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부럽고,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메이크업과 패션 센스를 갖춘 사람도 부럽고, 지능이 높아서 두뇌 회전이 팍팍 돌아가는 사람도 부럽고…… 이렇게 적다 보니 내 열등감은 도저히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런 점들이 열등감이면서 한편으로 열등감이 아닌 이유는 또 다음과 같다.


유학을 갈 형편은 되지 않았지만 4년 간의 자유로운 대학 생활에서 훌륭한 교수님과 좋은 친구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었으며, 내 인생에서 견문이 트이고 넓어진 시기였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은 평생을 두고 하나씩 읽으면 되고, 또 은근히 읽은 책이 많아서 어디 가서 어지간한 책을 아는 체할 정도는 된다. 어쨌든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아도 궁핍하게 살지는 않았으며, 자식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할 형편은 아니시며, 노후 준비도 잘 갖추셨기 때문에 이제는 아버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면 된다. 다행스러운 점은 성실한 편이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2년 전보다 글 쓰는 실력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재밌다고 느끼고 있어서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작가가 되지 못해도 이미 심심찮게 작가라고 불러주는 사람들도 있고, 내 결핍을 채우는 방법이 아버지처럼 술이나 어머니처럼 자식에 대한 집착(난 자식이 없기도 하지만)이 아닌 글쓰기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영어를 지금은 전혀 연습하거나 공부하고 있기 않기 때문에 못하는 게 당연하고. 그런 재치 있는 사람들이 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 내 부족함을 채울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인생을 대하는 진지함을 줄이고 조금만 가볍게 살다 보면 농담도 자연히 늘어나지 않을까 싶고, 메이크업이나 패션에는 들이는 시간 자체가 적기 때문에 잘 못하는 게 당연하고, 지능이 멘사에 가입할 만큼 높지는 않지만 지능이 나쁜 편은 아니니까(굳이 꼽자면 좋은 편일 거다) 늘 그렇게 살았듯이 인내심과 노력으로 보완할 수 있다.


콤플렉스일 것 같은데 의외로 열등감을 느끼지 않거나 적은 부분은 다음과 같다.


아주 예쁜 외모는 아닌데 외모에는 별로 콤플렉스를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유전이라서 심한 곱슬머리라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데도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지만) 그냥 타고나길 이렇게 타고났는데 어찌할까 싶고, 현재 월세로 살고 있는 빌라 생활에도 나름 만족하고 있으며 (물론, 노후 대비를 위해 내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소망을 늘 갖고 있지만), 현재 수입이 없는 백수생활이지만 하고 싶은 일과 미래 계획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만 또 크게 불안하지는 않고(직장을 다녀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니까), 이혼을 했더니 합리화나 자기 위안이 아니라 요새는 때때로 ‘어떻게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만큼 내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이 높아져서 종종 이혼했다는 사실을 망각할 만큼 개의치 않게 되었다. 불행한 가정사는 이미 지난 일이고 나는 내 인생을 내 의지대로, 마음먹은 대로 끌고 갈 만한 힘을 지닌 사람이고,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나 지인에게 때때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이번 이혼을 계기로 심각한 고민에 직면하면 찾아가서 답을 얻을 수 있는 심리상담사라는 믿을 만한 선생님이자 든든한 조언자를 만났기에(얻어기에) 이제는 괜찮다.




과연 어떤 사람이 정말로 착한 사람(좋은 사람, 선한 사람)인지 궁리하다 보니 솔직한 사람 즉, 자신의 약한 점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글을 쓰기에 앞서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나부터 솔직한 사람이 돼야겠다 싶어서 이번 글을 쓰게 되었다. 자신의 약한 점, 열등감, 콤플렉스를 인정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쾌하고 아프고 심지어 ‘기분 더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한 고비를 넘기니 위를 꾹꾹 눌러 압박하던 불편한 체기가 확 가신 듯이 마음이 이토록 편하고 세상이 아름답고 평온하게 보일 수가 없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서도 용기를 내서 부디 자신의 열등감을 직면하며 좀 더 자유로워지시길 간절히 바라며, 부끄럽지만 나부터 용기를 내서 내 열등감을 먼저 내보이니, 하실 수 있는 분들은 각자 스스로 동참하시길! 막상 툭 인정하고 나면 '왜 그리 오랜 시간 놓지 못하고  나 자신을 괴롭혔을까' 허무할 만큼 의외로 별것 아니니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내가 무엇을 잘하든지 못하든지, 잘 나가든지 못 나가든지 다 제 살기 바빠서 별로 나에게 관심도 없다.



*이 내용을 토대로 '열등감은 나쁜 감정일까? 열등감에서 자유로워지려면?'라는 주제로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열등감과 나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고 싶으신 분께서 보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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