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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y 18. 2022

(대화가 잘 통하는) 반백수와 연애할까요? 말까요?

‘대화가 잘 통하는 반백수와 연애할까요? 말까요?’ - <굿모닝FM 장성규입니다> 애청자라서 여느 때처럼 팟캐스트를 들으며 한창 설거지를 하다가 한 청취자의 사연이 귀에 들어왔다. 결혼 적령기의 여성인데 소개팅 상대가 대화는 잘 통하지만 경제 능력이 좀 아쉽다는 고민이었다. 사연을 보낸 청취자는 여성이니까,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 즈음해봤을 흔한 고민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 고민은 내 이야기이면서 내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현재 내 고민은 아니지만 과거에 나는 대화가 잘 통하는 반백수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거쳐 이혼까지 이르렀으니까. 이쯤이면 내 대답은 익히 예상을 하실 테지만, 이 고민에 대한 생각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좀 더 본질에 다가가 보려고 한다. 뉘앙스로 보건대 사연 속 여성은 20대 중후반~30대 중반 직장이 있는 자신의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추정되기에, 이를 가정하고 생각해본다.




1. 나는 이 연애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가.


 : 사연에서 드러난 내용에서 나(사연자)는 대화가 잘 통하는 대화 상대를 바라고 있다. 만날지 말지 고민하는 이유도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를 놓칠까 봐 아쉬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그런데 과연 ‘대화가 잘 통한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사실 이보다 더 애매모호한 말이 있을까 싶다. 아! 자매품으로 ‘좋은 사람이니까’, ‘사람은 좋은데……’ 를 꼽고 싶다. 이에 관해서는 <'사람은 참 착해’라는 말의 함정>에서 더 자세하게 풀어썼다.


연애 상대와는 누구보다 대화가 잘 통해야 한다. 맞는 말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말이 좀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 그러나 대화가 잘 통한다는 ‘믿음’을 연애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근거로 삼기에는 이 자체가 너무 모호하다. 왜냐하면 이런 식이라면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지천에 널렸다. 나 같은 경우 최근에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끼는(내가 그렇게 느끼는) 사람은 몇몇 절친들, 상담 선생님, 여동생, 단골 음식점 사장님인데, 그렇다고 이들과 연애를 하고 있지는 않다. 대체 ‘대화가 잘 통한다’라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자신 스스로 좀 더 깊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내가 최근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업도 그 일환이다). ‘상대방과 대화가 잘 통한다’는 연애를 하는 표면적인 이유(일종의 구실)가 될 수는 있지만, 진짜 이유는 아닐 확률이 높다. 그 밑바탕에 깔린 진짜 이유 즉, 내 본심(진짜 속내)이 무엇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2. 내 결핍을 현재 시점에서 꼭 상대방에게서만 채울 수 있는가. 다른 데서 채울 수는 없는가.


 : 분명히 사연자가 다 밝히지 않은 상대방의 장점이나 상대에게 끌리는 이유가 더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짤막한 사연에서 ‘대화가 잘 통한다’를 내세웠다는 말은 사연자는 연애 상대로 이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일 테니, 이 부분에 큰 결핍을 느낀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대화가 잘 통한다’라는 말은 너무 모호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상대방이 마침내 오랫동안 기다린 소울메이트를 만난 듯이 가려운 등을 긁어주듯이 내 속마음에 쏙 들어왔다 나간 듯 내 마음을 읽어준다는 의미인지, 자신의 뜻을 잘 헤아리던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줄을 다 끊어버린 백아처럼 비록 처음 만난 관계이지만 지음(知音)을 만났다고 느낀 건지, 외로움이 충족된 건지, 어떤 상실감이 덜어진 건지, 그저 취미와 관심사가 통한다는 건지, 가족사나 성장배경에 공통점이 있다는 건지, 그저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도취돼 대화가 잘 통한다고 착각한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거의 무한대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고작 몇 번 만나서 소울메이트나 지음처럼 느낄 리는 감히 ‘없다’라고 추정한다. 만일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믿는다면 좀 거칠게 표현하건대 그 상대방은 나를 호구로 보거나 어쨌든 뭔가 등쳐먹을 작정을 한 사기꾼일 테다. 취미와 관심사가 통한다면 친구 정도로 지내거나 굳이 이 사람이 아니어도 동호회를 가입해서 활동할 수 있다. 외로움이나 상실감, 그 외 결핍도 친구나 일, 여행이나 음악, 책이나 운동 등 다른 활동으로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 물론, 연애 상대에게 내 결핍을 채울 수도 있지만 사연자는 자신을 ‘결혼 적령기’라고 표현했다. 상대방을 어쩌면 결혼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있기에 사연까지 보내서 고민을 토로했을 것이다. 즉, 안정적이고 오래도록 이어질 관계를 원한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상대방에게서 잠시 내 결핍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서 ‘과연 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관계일까’를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3. 그는 나와의 연애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 상대방은 나와의 연애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내 마음과 똑같이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 밥 잘 사 주는 예쁜 애인? 취업 노하우 전수 및 위로와 응원? 예술가를 꿈꾸기에 영감을 얻는 대상? 성욕 해소? 자신의 취미인 운동이나 여행을 같이 할 대상? 따뜻함과 포근함, 안정감을 주는 사람? 나는 심지어 결혼을 할지도 모를 상대로까지 여겨서 라디오에 고민 사연까지 보냈는데, 과연 상대방도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을까? 앞으로는 모르지만 최소한 현재 소개팅을 한 시점에서 반백수인 상대방은 나를 잠재적 결혼 상대로 여길 확률은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경제관념이 떨어지거나,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상대방의 바람(기대나 결핍)을 충족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그럴 의향은 있는지, 과연 내가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나에게)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보자.



4. 현재 상대방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은? (가장 말이 잘 통할 사람은?)


: ‘대화가 잘 통한다’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니 달리 말하면 ‘서로 잘 이해한다’라는 말인데, 이를 또다시 말하면 앞서서 말한 ‘지음’이다. 지음은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이라는 뜻이다. 내 경험에 비추자면 내 가장 오랜 벗은 두 명인데 초등학교 5학년인 열두 살에 만나서 20년은 족히 넘는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 친구들을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했는데, 각기 다른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갔지만 이 오랜 기간 만날 때마다 편안하면서도 배울 점이 있고,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들도록 자극을 받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친구들을 잘 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른 사람보다는 우리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하며 서로를 향한 지음이 되고자 나아가고 있다 정도로 정리하겠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전남편과 3년을 연애하고 4년 간 결혼생활을 유지했는데도 여전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다. 그저 ‘이런 사람이었겠구나’ 짐작할 뿐이다. 상대방을 안다고 착각하는 오만을 저질렀고, 그 판단 착오를 결혼 선택의 잣대로 삼아서 현재의 결과에 이르렀다. 그런데 뭐, 사람이 늘 옳은 선택을 하지만은 않으니까. 결혼은 인생에서 중요하고 큰 선택이어서 현재 내 인생에 미친 후폭풍이 만만치는 않지만, 그 당시에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내린 결정이라서 후회는 하지 않는다. 2~30년 결혼생활을 유지한 서로를 속속들이 알 것만 같은 오랜 부부에게 물어도 아마도 비슷한 대답이 돌아오리라. ‘이토록 오랜 시간을 한 집에서 부닥치며 한 이불을 덮고 살았는데도 상대방을 잘 모르겠다’라고.


이 말인 즉,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듯이 몇 번 만난 사이에서 ‘대화가 잘 통한다’라는 믿음만큼 신기루 같은 일도 없다는 의미이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대화 즉, 상대방에게 맞춘 대화를 하다 보니 몇몇 부분에서 관심사와 생각이 일치했다, 대화를 하는 기본 예의(매너)는 갖춘 사람이다, 이것이 좀 더 솔직하고 구체적인 표현이 아닐까. 질문을 좀 바꿔서 반백수인 상대방을 현재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은 누구일까. 비슷한 처지와 상황에 있는 반백수인 사람일 것이다. 냉정하게 직장에 다니며 내 밥벌이라는 제 몫을 다하며 결혼을 바라고 있는 나는, 최소한 상대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5. 현재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은? (가장 말이 잘 통할 사람은?)


 : 그럼, 현재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은 누구일까. 최소한 비슷한 처지와 상황, 환경에 처해있거나 이 경험을 지나온 사람일 것이다. 회사원이라면 회사원, 자영업자라면 자영업자, 프리랜서라면 프리랜서, 결혼 적령기라고 생각하며 결혼을 희망하는 사람, 굳이 ‘결혼 적령기’라고 표현을 한 점을 미루어 볼 때 인생에는 어떤 정해진 단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비교적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닌,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게 가장 안전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짐작되는데(남들 사는 대로 산다는 것처럼 실체가 없는 것도 없지만서도 일단은), 상대방의 매력도나 내 마음이 얼마나 끌리는지를 떠나서, 바로 이런 사람이 현재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이다. 가치관과 경험이 비슷해서 어떤 부분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그나마 ‘비슷한 사람’이라는 부류에 속할 사람이다. 물론, 직업이나 가치관도 어떤 사람을 이루는 한 요소요소에 지나지 않지만, 최소한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 반백수인 사람이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세상 사람은 모두 저마다 다르기에 ‘비슷한 사람’이라는 표현도 애매하기 그지없는데, 그나마 정의 내린다면 각기 다른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비슷한 경험(학교 생활, 사회생활)을 거쳐서 그나마 다른 사람보다는 비슷한 생각과 의견을 지닌, 가치관과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앞에서 말한 열두 살부터 우정을 쌓아온 오랜 친구들이나 최근 절친으로 사귀고 있는 친구들이 그나마 나와 비슷한 사람 이리라. 연애 상대로 나와 비슷한 사람이 누구인지 헷갈린다면 연애 감정에 휩싸여 눈에 콩깍지가 쓰이기 전에 이처럼 오랜 친구나 최근 마음을 나누고 있는 친구들을 떠올려보면 좋을 듯하다. 이처럼 비슷한 부류에 속한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다른 사람이라 매사 의견이 다른데, 비슷한 경험이 적어서 비슷한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결국 공감하는 폭이 좁을 것이고, 너무 많은 설명이 필요하고 서로 맞추는 데 노력과 에너지도 그만큼 많이 필요할 것이다.




이 고민을 두고 여러 청취자들이 한 조언은 다음과 같다. 우선은 ‘이 연애를 말리고 싶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또 맞는 사람이 나타날 거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많다. 또 나타날 거다’, ‘상대방 경제력이 자신과 비슷하다면 고우, 아니면 노우’, ‘나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고우, 아니면 스탑’, ‘내가 상대방 경제력을 커버할 수 있으면 고우, 아니면 스탑’, ‘결혼 전에는 다 대화가 통한다’, ‘결혼하면 어차피 뭔 얘기든 안 통한다’, ‘아기 안 낳을 생각으로 결혼을 생각한다면 연애하듯 만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기를 낳아서 가정을 꾸릴 생각이라면 결혼은 지극히 현실이다. 경제력이 중요하다’, ‘돈이 곧 행복은 아니지만 행복의 필수 요소 중 하나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많은 불행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돈과 관련된 것이 많다. 돈은 중요하다’ 등이었다. 전부 타당한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모든 조언에는 이 연애에 대한 나의 생각(본심)과 상대방의 생각이 빠졌기에 현재 연애를 할지 말지가 고민이라면 그에 앞서서 이 타당한 조언들을 참고해서 나와 상대방의 솔직한 본심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 경험에서 무엇이든지 배우게 될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만큼 개인의 성장의 밑거름이 있을까. 나는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 어떤 경험은 그 비용이 너무 크다는 의미도 체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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