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Jul 07. 2022

러브버그와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생생한 러브버그 습격  피해기&퇴치 방법(사진 없음. 글만 있음)

핵심만 간단히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결론: 결코 친해질 수 없음 ㅠㅠ




새로 이사 온 집의 에어컨 실외기 옆에는 흙을 가득 채운 화분이 하나 놓여있었다. 전에 살던 사람이 두고 간 모양이었다. 나중에 내가 키우던 작은 식물이 크면 분갈이할 때 사용할 요량으로 화분을 버리지 않고 그냥 놔두었다. 어느 날, 거실 창문을 열다가 화분에서 검지 손가락 한마디 반 크기만 한 둥글고 새하얀 조약돌을 하나 발견했다. ‘원래 화분에 조약돌이 놓여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티 없이 맑은 예쁜 조약돌에 영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 1동에서 ○○ 2동으로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인 같은 동네인데도 예전 살던 곳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예전 집은 번화가로 이어진 골목에 있어서 주변에 분위기 있는 음식점이나 카페가 많았는데, 이사 온 집은 좀 더 주택가가 밀집한 곳에 있고 바로 옆에 시장도 있어서 거주지답게 주변 환경이 좀 더 조용했다. 매일 아침 맑은 새소리에 눈을 뜨며 상쾌한 하루를 맞이했다. 그런데 새들 중에는 육중한 비둘기도 있었다. 낮에 거실에서 시간을 보낼 때 창문 너머로 비치는 짙은 회색 그림자는 영락없는 비둘기였다.


언제부터인가 비둘기가 비행 중에 우리집을 지나치지 않고 두 마리가 번갈아 가며 에어컨 실외기가 놓인 외부 빈 공간에 살포시 착륙해 걸어 다녔다. 창문을 열면 사람 인기척에 놀라서 푸드덕 날아갔지만 잠시뿐 이내 제멋대로 돌아와서 톡 톡 톡 톡 소리를 내며 바닥을 걸어 다녔다. 싸하고 찜찜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인터넷에 ‘비둘기 알’이라고 검색하니, 둥글고 새하얀 조약돌 사진들이 나타났다. 티 없이 맑은 예쁜 조약돌은 자그만 돌멩이가 아니라 생명의 씨앗을 품고 있는 비둘기 알이었다.


‘어떡하지?’ 전혀 생각지 않은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그냥 두고 이 참에 비둘기 부화 과정을 지켜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내 순수하고 순진한 마음과 달리 사람들은 하나 같이 알을 빨리 치우라고 조언했다. 비둘기는 귀소 본능이 있어서 태어난 곳으로 계속 돌아오며, 비둘기 똥은 냄새도 냄새지만 산성이라서 에어컨 실외기 같은 철로 된 사물을 부식시킨다고 했다. 한여름에 창문을 열 수도 없고 자칫 비둘기가 실외기에 다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비둘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한 도심 주택가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죽은 비둘기를 말끔히 처리하고 철저한 방역까지 해주는 전문 업체도 있었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알을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당장 화분을 집어 들어서 옥상 한편에 올려 두고 내려왔다. 그 뒤로 옥상에 다시는 올라가지 않았다.




6월 말, 작년에 보이던 새카만 벌레가 다시 집안에서 한두 마리 보이기 시작했다. 두 마리가 붙어서 꼼지락거리는 모습에 지네인 줄 알고 기겁했던 작년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흉측한 비주얼은 여전했다. 여름이라서 나타난 건지, 집에 먼지가 많아서 등장한 건지 알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에게 메신저로 물어보니, 우리 동네에서만 서식하는 벌레인 모양이었다. 작년에도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위가 찾아오자 언제 이 세상에 존재했냐는 듯이 신기할 만큼 단번에 사라져서 올해도 조만간 자취를 감추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니 스트레스가 심해서 이름이라도 알자는 생각에 ‘여름 쌍으로 붙어있는 새카만 벌레’라고 검색했다. 국내에는 생소한 벌레인지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 생김새나 특징이 ‘러브버그’인 듯했다. 두 마리가 왜 계속 붙어있나 했더니 이들은 며칠씩 교미를 하는, 교미 기간이 긴 희소한 특징이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내가 본 모습은 짝짓기 현장이었고, 그래서 이름이 러브버그인 모양이었다. 이때만 해도 러브버그 피해 상황을 알려달라는 취재 요청이 오고, 전 언론이 주목하고 인터넷에 이 이름 넉자가 도배되는 크나큰 이슈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살다 살다 시골에서도 보지 못한 이런 기막힌 광경은 처음이었다. 거실 창밖을 내다보니 새카만 러브 버그 떼가 잽싸게 위 아래 오른쪽 왼쪽 대각선으로 비행하며 각종 묘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음악과 플로어만 없었지 화려한 무도회가 따로 없었다. 원치 않는 방구석 1열 무료 에어쇼를 관람하는 웃픈 상황이었다. 신나게 온몸을 흔들다가 지쳤는지 한 무리가 방충망에서 쉬어 가며 자신들의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데, 원치 않게 집을 내준 비자발적 관객 입장에서는 이보다 미칠 노릇이 없었다. 침대가 놓인 안방에서는 주인인 나도 모르게 몇십 마리가 천장이며 벽에서 끔찍한 리셉션 파티를 열고 있었다. ‘어제도 저녁 내내 잡았는데…… 생김새와 다르게 파리류라고 해서 거실과 방에 홈매트도 켜고, 종일 창문도 한번 연 적이 없는데…… 대체 이 많은 벌레가 어떻게 집안에 들어온 거지? 잠을 편안히 잘 수 있는 걸까?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점점 더 심해지면 어쩌지? 희망이 있기는 할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극도의 불안감이 엄습하고, 과연 끝이 있는 건가 싶은 생각에 우울감이 찾아왔다. 그날 밤, 눈물을 머금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다시 저녁 내내 벌레를 몇십 마리를 잡았는지 모르겠다.




수많은 벌레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흡사 재난 상황에서 하루가 다르게 벌레 퇴치법과 대처법을 터득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조심스레 거실 창문을 서서히 열어서 방충망과 창밖을 확인한다. 집안 창문이란 창문의 방충망에 스프레이 약을 듬뿍 뿌리며 일과를 시작한다. 한 번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어서 한 시간 간격으로 확인하며 약을 지속적으로 뿌린다. 창틀의 물구멍은 여름이 오기 전 방충망으로 막았지만, 대규모 벌레 군단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 창문과 창문 사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틈은 휴지를 말아서 원천 봉쇄한다. 거실과 방에 홈매트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언제 끝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불빛을 유인해 벌레를 태워 죽이는 전기 해충퇴치기도 장만한다.


구청과 보건소의 방역 효과인지, 무더위에 약해서인지 신기하게도 그 많은 무리가 오전 10시가 좀 지나면 씻은 듯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인간을 공격하려 집 주위를 에워싼 좀비 떼 같은 존재들이 사라지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날씨가 선선해지는 오후 5~6시 즈음에는 다시 떼로 나타나리라고 ‘이제는’ 알기에 몇 시간 주어진 자유 시간을 틈타서 잠깐 창문을 열고 창틀 아래 새카맣게 깔린 벌레 사체를 치우고, 잠시 긴장을 내려놓는다. 똑딱 똑딱 똑딱 똑딱 시간은 잘만 흘러가서 햇살이 약해지고 바람이 솔솔 부는 저녁이 찾아오면 다시 불안해진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하나 둘 다시 모여들면 아침에 했던 한 시간마다 스프레이 약을 뿌리는 과정을 똑같이 반복한다. 환하게 불빛을 비추면 전날처럼 대규모로 침입하는 참사를 마주할까 두려워서 작은 스탠드 하나만 켜 놓고 어둠이 드리운 집안을 서성인다. 뉴스를 보니 온 동네가 낯선 벌레 떼의 습격을 받아서 주민들이 혐오감과 불안감, 불편함을 호소하며 난리가 났다. 우리집과 동네는 그나마 양호한 상황으로 보였다.


<내가 터득한 러브버그 퇴치법>


1. 파리류에게 위협적인 홈매트를 거실과 방에 켜놓는다.

2. 선선한 아침, 저녁에 1시간 간격으로 방충망에 스프레이 약을 뿌린다.

   (러브버그가 활동이 뜸한 낮에 창틀에 새카만 사체를 청소한다. 진공청소기로 흡수...... ㅠㅠ)

3. 불빛을 좋아하므로 저녁에 형광등을 켜지 않는다.

4. 밝은 색을 좋아하므로 야외 활동할 때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는다.

5.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홈매트, 스프레이 약 등을 충분히 구비하고, 전기 벌레퇴치기도 장만한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언제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될지 모르는 뜻하지 않은 불안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러브버그와 만일 때때로 공존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이를 어떻게 견뎌야 할지 가슴이 답답하고 생각이 많아진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막상 흉측한 시커먼 벌레 떼를 마주하면 이성은 마비되고 당장 다 때려잡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지만, 혐오스러움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하지만, 온통 벌레 생각으로 피폐해진 마음을 요가로 다스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러그버그를 왜 보이는 대로 말살하다시피 다 죽여야 하지? 생김새가 혐오스러워서? 그러니까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고 싫어서? 만일 자고 일어났는데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새끼 호랑이나 새끼 판다가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보자마자 죽자고 달려들어 나가라며 공격할까? 귀엽다며 쓰다듬고 먹이를 주고 안전하게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데 기꺼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며 정성을 쏟지 않을까? 러브버그도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굼뜨고 연약해서 휴지 한 장이면 ‘픽’하고 쉽게 잡히는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다. 심지어 독성도 없고 전염병을 옮기지도 않는다는데 왜 이리 한두 마리조차 집안에 머무는 행태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을까? 성충이 된 러브버그는 최대 7일 정도밖에 살지 못하기에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이라고 아는데도 말이다. 인간이 시각 정보에 얼마나 예민하고 민감한지, 보이는 것 즉, 비주얼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고 심지어 지배받는 위선적인 존재인지 돌아보게 된다.


이번에 기를 쓰고 박멸에 애를 쓰는 이유는 비단 생김새 때문만은 아니다(생김새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개체 수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서 일상생활을 위협하고, 끊임없이 집안으로 잠입해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 낯선 벌레에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은 사람은 누구나 진절머리를 치리라고 확신한다. 집안에서는 벌레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고 형광등을 켜거나 잘 때조차 두려운 마음이고, 집 밖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 불편함에 익숙해진, 집 안팎 모두 불안해서 어디 한 곳 마음을 편히 둘 곳이 없다. 이쯤 되니 지구 종말을 암시하는 디스토피아 예고편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면서, ‘신이시여, 제발, 이 벌레들을 하루빨리 처치해주세요. 그럼, 탐욕을 덜 부리고(안 부린다고는 차마 못함), 플라스틱 사용도 덜 하고, 전기도 덜 사용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착하게 살겠습니다’라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하찮고 나약한 존재인가. 내 작은 손톱 크기만큼도 되지 않는 언제 사라질지 모를 벌레 떼 앞에서 불안에 벌벌 떨며 도저히 못 살겠다고 (무교인데) 숙연한 기도를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벌레 덕분에(?) 밤에 형광등을 켜지 않으려고 요 며칠간 자연의 시계에 맞춰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햇빛이 비추는 아침부터 낮 동안에 활발하게 활동하니 밤이 되면 피곤해서 잠이 스르르 쏟아진다. 굳이 밤에 인위적인 형광등의 도움을 받아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지 않는다. 환한 대낮에 집중해서 활동하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서서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자연의 시간에 맞춰 순리대로 몸을 움직이고 정신을 깨우니 며칠이지만 건강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나도 모르게 조금의 불편함도 감내하려 하지 않는 너무 편한 세상에 살며, 인위적인 문명의 과한 혜택을 받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구나 싶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벌레 떼에서 가속 페달을 멈추고 브레이크를 밟아서 저속 주행을 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라며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작년처럼 러브버그는 거짓말처럼 다행히도 한번에 싹 사라졌다. 성충의 생존 기간이 7일 남짓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시 찾아온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슴 벅찬 지 모르겠다. 그만큼 너무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우울한 일주일 남짓이었다. 사실 인간만큼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무서운 존재가 어디 있을까. ‘싫어서 처리해야겠다’라고 마음만 먹으면 벌레 떼 즈음은 순식간에 박멸하고, 비둘기 알도 너무 쉽게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창밖을 향해 뿌린 약이 러브버그 외에 다른 생물에도 해로운 영향을 미치진 않았는지, 생태계가 파괴될 만큼 위협적인 행동은 아니었는지, 그 피해가 언젠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지는 않을지 염려된다. 우리가 인간에게 이롭다고 행하는 많은 행동들이 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다가 소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지 두려운 마음이다. 비둘기들은 과연 내가 옥상에 올려 둔 알을 찾아갔을까. 어차피 모든 알이 부화하지는 않고, 도시인은 너무 많은 비둘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지만, 마음 한편이 걸리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러브버그야, 비둘기야, 우리 각자 잘 살아가면 안 될까? 제발, 다시는 집안에서 만나지는 말자구나, 응?



러브버그 퇴치법(출처: 은평구 공식 블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