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비교와 현실 왜곡의 시대
바야흐로 ‘좋아요’의 시대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각종 블로그에 콘텐츠를 발행하면 몇 명이 내 글과 영상에 관심을 보였는지 확인하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들 플랫폼을 들락날락한다. 얼마나 하트를 많이 받았는지 좋아요 숫자를 체크하고 또 체크한다. 상위 1% 이내에 드는 수익을 목적으로 한 상업용 채널이 아니라면 수십, 수백의 좋아요가 딱히 돈을 벌어오는 구조도 아니다. 오히려 접속 빈도와 시간이 늘어날수록 플랫폼사들의 배만 불어나는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곁에 두고 있는 한 수시로 반복하는 이 무의미한 행위를 도저히 멈출 수 없다.
그깟 좋아요가 뭐라고. 이처럼 강력한 집착을 멈출 수는 없을까. 이미 다들 알고 있듯이 SNS의 좋아요는 단순한 하트 표시가 아니다. 자신을 향한 타인의 관심과 애정, 나아가 인정을 반영한다. SNS의 좋아요 숫자는 관심과 인기의 척도이기도 하지만, 사실 뚜렷한 실체도 없는 이 숫자에 이처럼 집착하고 열광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 그만큼 타인의 관심과 사랑, 인정에 목마른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지독하게 외로운 거다. 아니면, ‘나 이렇게 잘났다’라고 과시하며 타인 위에 군림하고 싶은 욕구를 사진 몇 장, 태그 하나를 올리는 행위로 표출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든가.
직업 특성상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하고,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사는 것을 본질로 삼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에게 SNS는 중요한 돈벌이 즉, 사업의 일환이지만, 나처럼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에게 사실 SNS는 냉정하게 따져보면 시간 낭비이고, 좀 더 거칠게 표현하면 플랫폼사의 영향력 강화에 일조하며, SNS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제대로 활용하는 유명인의 들러리를 자처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또는 거의 만나지도 않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른다고, 또는 누르지 않는다고 내 진짜 현실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그럼에도, SNS는 이미 일상 속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더 이상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신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SNS를 아예 끊으면 모를까. SNS 사용자라면 아마도 평생 좋아요와 하트에 일희일비하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물론, SNS도 장점이 많다. 친구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지인과 다시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고,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나 고민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실용적인 정보나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모든 단점보다 더욱 강력한 부작용이 있는데, 바로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칫 왜곡된 SNS 속 세상을 현실로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꼭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인스타그램 속 친구와 지인들은 하나 같이 대단하고 멋지기만 하다.
전문직 배우자와 결혼을 해서 예쁜 아이들을 낳고, 이런저런 고민들은 있지만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고, 해외에 갈 시간이 안돼 국내 최고급 호텔에서 온 가족이 행복하게 수영을 즐긴다.
대기업 퇴사 뒤 설립한 회사가 승승장구하며 분야 매출 1위를 기록하자 고생한 직원들과 다 같이 고급 식당에서 꽃등심 파티를 연다. 대표 입장에서 무리한 지출이지만 오늘만큼은 괜찮다.
공부하라는 말도 안 하고 별로 잘해준 것도 없어서 미안한 마음인데, 고3인 아이가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과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회의와 강연 등 바쁜 일과를 마치고 평일 저녁에는 고급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주말에는 근교에서 골프를 즐긴다.
해외에 거주하며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한국 음식점에서 사 온 재료로 요리를 해 특별한 만찬을 즐기고, 자기 전에 강아지와 놀아주며 시간을 보낸다.
출간한 책이 운이 좋게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유명 TV 프로그램에도 섭외돼 출연 예정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장소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등등…… SNS 속 멋진 사람들 이야기를 하자면 며칠 밤을 꼬박 지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이처럼 SNS에는 수많은 일상 가운데 고르고 골라서 좋고 좋은 것, 특별한 물건이나 사건 또는 자랑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공간이라고 익히 알고 있더라도, 이 세계에 접속을 하면 세상에! 이토록 행복하고 평온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다. 타인의 특별한 사건과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비교하며,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될까. 나는 언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까’라며 갑자기 초라한 자신의 인생을 자책하고 우울한 감정에 빠져든다. 자신도 모르게 왜곡된 SNS 속 세상을 현실이라고 착각하고 실제 현실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만다.
‘비교는 모든 불행의 씨앗’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 비교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했다고 생각해서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SNS 속 멋진 사람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듯이, 나보다 잘난 사람,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위축되고 긴장되고 질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것 같다.
타인과 비교해서 위축되고 우울한 기분이 들 때 무너진 자존감을 빠르게 회복하는 방법을 하나 터득했는데,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A와 지금 당장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바꿀래?’라고 나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그럼, 대체로는 ‘아니, 바꾸지 않을래. A의 이런 점은 부럽지만 저런 점은 내가 더 낫잖아. 부럽지 않아’라며 질투심을 느끼던 A와 부족하고 하찮게만 느껴지던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
타인과의 비교로 무너진 자존감을 다른 차원의 비교로 회복하는 전략인데, 지금 당장 부러운 마음을 애써 자기합리화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 네 인생을 통째로 바꿀래?’라고 자신에게 물으면 의외로 ‘아니, 그건 싫어. 내 인생을 다른 이가 대신할 수는 없어. 내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데’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 모래알 한 줌만큼의 작은 애정이라도 남아 있다면 말이다.
SNS 속 행복한 지인들을 보며 우울감을 느끼거나, TV 속 화려하고 완벽하게 보이는 연예인의 모습을 부러워하거나, 돈이 많거나 예쁘거나 좋은 직업과 학벌을 갖는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초라해지는 이 모든 심리는 똑같다. 실제 면면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상대의 면모를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는 것. 상대는 갖고 있으나 내가 갖지 못한 결핍이 크면 클수록 더욱 그 특정 면모에만 사로잡혀서 상대의 실제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것,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것을 보겠다는 생각조차 못한다는 것. 그런데 나는 갖지 못했지만 상대는 갖고 있는 그 한 가지의 결핍을 걷어내는 순간, 그토록 커 보이던 상대도 별스럽지 않게, 그저 평범한 인간 대 인간으로 보이게 된다.
어떤 계기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작성한 글들을 최근 1~2년 정도만 남기고 정리할 마음을 먹었는데, 예전 글들을 보고 있자니 누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겼는지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 오직 몇 년도, 몇 월, 며칠에 내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졌는지에만 눈길이 갔다. 남들에게 좋아요를 하나라도 더 받고자 얼마나 많은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는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타인이 나에게 하트와 좋아요로 관심과 애정을 표시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 자신과 인생에 아낌없이 하트와 좋아요를 꾹꾹꾹꾹꾹꾹꾹꾹꾹꾹 눌러서 선사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